당신이 원하는대로

2021.07.21-08.15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Space Willing N Dealing


'원하는 것을 다루어보고자' 한다는 의미의 윌링앤딜링은, 이태원 경리단길에서 2012년 개관 후 방배동을 거쳐 서초동으로 자리를 옮긴 공간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공간의 이름과 동음 이의어 같다.

권순영 〈눈물의 여정〉, 2019

작가 권순영의 작품은, 피에로, 마차, 비눗방울(이 아니라 물방울 같지만), 미키 마우스와 구피, 이런 것들이 언뜻 놀이공원을 연상시켰다. 오는 봄을 막지 못하고 여정을 떠나는 마차들은 눈사람과 겨울이다. 눈사람의 눈물인지 눈 녹은 물인지 모를 물방울을 흩날리며 긴 열차는 어디론가 떠난다.
작가의 주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통증'이라고 한다. '삶이 계속되는 한 그림자처럼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비롯된 통증과의 불안한 여정에 관한 이야기'라는 설명에서 열차의 탑승객을 유추해본다.


이제 〈dusty mirror〉, 2021
이제 〈예배가 끝나거든〉, 2009


써니킴 〈모든시간〉, 2021
써니킴 〈흔들리다〉, 2021


작가 써니킴은 힘들었던 2020년을 보내고 2021년 다시 작업을 시작하며 변화한 그의 과정 중 일부를 걸었다. '두렵고 슬프고 외로운 시간을 지나 꿈틀거리는 변화의 기운을 느끼는' 길목에서 여전히 확실치는 않지만 조금은 움직이거나 움직일 수 있다는 의지 같은 것일까.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수 있었다는 고백은, 다시 먹고 자고 숨 쉴 수 있게 되었다는 말로 들렸다. 그건 그만의 일만은 아니고, 여전히 상처투성이로 오늘을 그래도 살아내겠다고 바둥대는, 지금의 전 지구적 인류의 일이다. 너무나 공상과학적 대사지만, 어쩜 우리는 지금 종의 위기를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수영 〈work No.68〉〈work No.64〉〈work No.66〉〈work No.65〉, 2021

김수영 〈work No.67〉, 2021


작가 김수영의 작품은 언젠가 어디선가 본 고층 건물의 면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명륜동, 안국동, 을지로, 충무로, 강남역 등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건물 입면을 화면에 표현했다고. 이들의 조각조각 붙여진 이미지들은 '건물이라는 소재가 작동적으로 소환하는 ' '개인의 노력, 사회적 관계, 관력의 작동방식'과 같은 흔적들을 연상하게 했다. 구상적 표현으로 추상의 화면을 만들고, 형식적 틀 안에서 심리적 형상을 구현해 낸다 랄까.. 뜬금없게도, 가장 재미있는 픽션은 논픽션이란 말이 떠올랐다.



이제 〈wet book in freezer 1-5〉, 2021


작가 이제의 작품 〈wet book in freezer 1-5〉 제목을 읽고, 대번에 "아, 물을 쏟았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냉장고에 들어가는 젖은 책의 절실함은 내 직업과도 연관이 깊다. 그것의 포기와 미련은, 내게는, 꽤 자주 있을법한 일이다. 몇 해 전 연말에 있었다는 작업실 수해로, 작가는 많은 것을 잃었을 것이다. 냉동실에 넣은 지 3년이 흘렀는데도 몇 권의 책이 아직 미라처럼 남아있는 걸 보며, 질긴 인연, 미련과 상실로 인한 아픔이나 상처, 허망함 같은 많은 감정이 또 다른 수해처럼 밀려들었을 것이다. 개중에 롤랑 바르트 책 『사랑의 단상』이 있었거나, 그의 글이 편집된 책자가 있었거나.


(중략)

그리하여 살자(Vivons!)라는 훈련을 하자.

(중략)

"나는 젖어들지 않을 미망(迷妄)의 여신 부족한 어머니"

(중략)

불행 고통 불행 일치 불행 그를 느낀다.

통증에 대해 말한다.


내 눈에 들어온 네 줄. 실수의 여신이 인간에게로 온 이후(그리스로마 신화는 이래서 좋아할 수 없다) 실수는 인간으로부터 땔 수 없는 것이 되었고, 수해는 작가의 실수는 아니었지만 (민가의 수해는 보통 인재로, 막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후폭풍은 그의 것이 되었다. 자연재해와 같은 생의 통증들이 밀려들 때의 허망함 같은 게 여기서 느껴졌다고 한다면 과한 것일까. 다른 두 작품에 비해 최근의 나는 이쪽에서 더 여운을 느낀다.


김정욱, 무제, 2021


꽤 오래전, 갤러리 스케이프 개인전에서 처음 만났던 작가 김정욱의 작품은 여전히 강렬하고 여운이 있다. 조금씩 변화해 온 작품들만 기억에 있다가, 처음 보게 된 2021년 신작의 느낌은 비슷한 듯 다르다. 어쩐지 그리스 로마 조각상의 모습과 중첩되고 석고상이나 석불이 떠오르는.. 눈에 담긴 세상과 세상 끝의 죽음이, 흡사 종교적 분위기로 어울려 흐른다고 해야 하나. 제목은 없으나 한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김정욱, 무제, 2013

시작과 비슷한 방향을 고수하며 이어가는 일은 힘들다. 외부의 빠른 변화에도 자신의 방향성을 오래 고수하며, 그 안에서 가능한 변화를 또 추구해 온 이들 작가의 길은 그래서 힘들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래선지 내 눈엔 이들의 작품들에서 통증 아픔 이라는 서사가 비슷하게 읽혔다. 지금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지도. 어쨌든, 이 힘든 시국에 그들의 삶도 나의 삶 만큼 응원한다.


(참고)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홈페이지

https://www.willingndealing.org/


사진.글.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