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미술관 15주년 기념 심포지엄 <미술관 수집의 새로운 표준 불러오기>가 2021년 11월 23일 오전 11시부터 진행되었다. 행사는 경기도미술관 강당에 조성한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으며,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 되었다. 

심포지움은 진행을 맡은 구정화 경기도미술관 학예운영실장의 인사에 이어 안미희 경기도미술관장의 인사말로 문을 열었다. 안미희 관장은 15주년을 맞은 경기도미술관이 발전적인 청년기를 보낼 시기임을 강조하며 오늘 행사를 비롯해 3단계로 이루어질 미술관 연구에 대한 간단한 계획을 밝혔다.   

행사는 양지연, 김종길, 현시원, 안소연, 김정현, 유원준의 발제에 이어 구정화의 사회로 진행될 김계원 김재리의 질의와 토론으로 구성되었다. 대학 교수, 큐레이터, 미술비평가 등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소장품 수집과 보존의 기준, 미래 방향에 대한 시선을 공유하고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미술관 운영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발제를 준비, 진행하였다. 







기조발제를 맡은 양지연 동덕여대 큐레이터학과 교수는 “미술관 소장품 수집과 보존의 기준과 미래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미술관의 소장품 수집의 중요성과 그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총 5가지의 키워드를 가지는데, 1. 지속가능한 컬렉션으로서의 미술관 2. 소장품 정책 수립의 체계화 3. 소장품의 활용가치 확대 4. 연구-수집-문서화-보존의 유기적 선순환 5. 5. 소장품의 디지털화 이다. 다소 원론적일 수 있으나 경기도미술관을 포함한 우리나라 미술관의 현실을 짚고, 세계적인 방향성을 자세히 알아봄으로써 소장품을 수집하고 활용하고 전시하는 데 있어 미술관이 가져야 할 태도를 제시하였다.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수석큐레이터는 전시실에 아카이브 공간을 만들었던 2008년 《언니가 돌아왔다》 전시에서부터, 8명의 역사적 개념미술가를 소개한 2010년 《팔방미인》, 《경기도의 힘전》에 이르면서 전시에 있어서 아카이브의 중요성에 대해 통감하게 된 경험을 말했다. 이에 이어 그는 한국 미술관과 미술사의 역사가 길지 않음을 지적하며 기초연구의 중요성과 미술관이 연구자와의 협업을 통해 자료를 활용한 미술사 다시쓰기가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현시원 독립큐레이터는 경기도미술관의 669점의 소장품을 살피고, 이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그는 먼저 경기도미술관의 소장품이 거시적, 국가적이라기보다는 지역적이고 소수자에 대한 작품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과 지난 15년간 경기도미술관이 진행해온 소장품 전시의 종류에 대해 파악하였다. 그가 제시하는 경기도미술관 소장품을 활용한 전시는 총 4가지이다. 1. 2000년대 이후 동시대 한국의 다이내믹을 살필 수 있는 작업을 조명하는 전시. 2. 동시대 실경 작업 전시(전통과 미래의 네트워크 사이에서 여전히 중심을 현실에 있음을 의미). 3. 새로운 미디엄(medium)의 출현을 보여주는 전시. 4. 소장하고 있는 퍼포먼스 작업 전시. 그는 이러한 전시들을 제시하면서 소장품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읽어 전시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안소연 미술비평가는 경기도미술관 야외조각에 집중하여 야외조각을 어떻게 전시하고 향유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그는 한국의 야외 조각 작품이 그린버그가 벗어나고자 했던 “단일체 조각”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또한 해외와 달리 한국의 조각 공원 출현 배경은 국가주도의, 장식적이고 보조적인 수단이었음을 강조하며 그는 크라우스의 이론을 가져와 조각을 ‘경험’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김정현 미술비평가는 퍼포먼스 아트 수집에 있어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해 논하였다. 퍼포먼스 미술은 소장의 맥락에서 어ᄄᅠᇂ게 정의될 수 있는지, 과연 퍼포먼스 미술은 소장가능한 것인지, 퍼포먼스 미술의 소장이 문제가 되는 점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이다. 이때 테이트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퍼포먼스들과 그 정보를 중심으로 하였다. 그는 퍼포먼스의 소장에 있어서 ‘라이브성’과 ‘영원성’을 동시에 가져가는 것이 어려우며, 이는 큐레이터와 프로듀서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는 테이트미술관 큐레이터의 말에 동감한다. 
 






유원준 영남대학교 교수는 미디어아트의 소장과 보존을 '이주(migration)'와 '대행(emulation)'을 중심으로 논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디어아트 작품이 전제하고 있는 매개체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고, 이를 현재의 기술로 만들어진 매개체로 옮기는 것이 ‘이주’이고, 한 시스템에서 구동되는 것을 다른 시스템에서도 구동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대행’이다. 비디오아트를 현재의 기기에서 사용되도록 옮기는는 것이 ‘이주’, 플래시를 사용하는 초기 인터넷 아트를 복원, 소장하는 방법이 ‘대행’의 예가 된다. 이에 이어 NFT, 메타버스 등 현재 부상하고 있는 개념들을 제시하며 뉴미디어 아트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일에 있어 인지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였다.   







이어서 진행된 지정질의 및 토론은 구정화 실장의 사회 아래 김계원, 김재리의 질의로 진행되었다. 다음은 질의 및 토론 내용의 일부이다. 

Q. 김계원
미술사 전공자로서 이론을 사용하는 것에 굉장히 조심스러운데, 발표의 많은 부분이 크라우스의 이론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이론은 1970년대 이론이고 경기도미술관은 2006년에 개관을 했다. 크라우스의 개념이 아닌 또 다른 것들로 논의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또한 (경기도미술관은)한국 조각사나 공공 기념조형물의 역사도 있는 곳인데, 그것들과 함께 조각공원을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면서 크라우스의 방법을 가져오되 이를 갱신하는 방법은 없을까?  

A. 안소연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논의를 가져온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야외조각공원의 형성에 있어서 시대의 맥락들을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서구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야외조각과 그 프로젝트들이 모두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지목했던 60-70년대의 조각과 궤를 같이 하고 있고 그것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글에서 동시대성을 논할 때 한국의 60년대 실험미술, 80년대 탈모던과 함께 동시대적 감각을 가졌던 조각가들을 짧게 언급하기도 하였으나, 그와 또 다른 축에서 문화 정책에 의해 조성된 것이 더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 두가지에서 보여지는 야외조각에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조각의 비전들이, 실제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야외조각의 장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허용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를 해보기 위함이다. 또한 로잘린드 크라우스의 이론이 90년대 이후에 매체에 대한 여러 가지 재인식, 재창안의 문제를 언급했고, 조각을 ‘인식한다’는 표현을 크라우스가 많이 사용했다. 조각을 본다, 경험한다, 인식한다 라고 할 때 조각의 특이성에 대한 것을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용한 것이라 여겨져서 방법론을 가져오게 되었다.    

Q. 김재리
수집하고 보관하는 미술관이 퍼포먼스 아트를 재상연하는 과정에서 관객과 만나고 실제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구현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연극이나 무용에서는 레파토리 작업이나 아카이브 작업을 통해서 기존의 공연을 재상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레파토리 공연도 원본과는 다른 시간대, 다른 공간, 다른 몸들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굉장히 다른 작품을 볼 수 밖에 없으므로 똑같은 작품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전제가 된다. 이러한 부분에서 미술관에서 수집하고 보관하고 재상연할 때 현장성(liveness)를 어떻게 가질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듣고싶다.
 
A. 김정현
일단 답변을 하자면 작가와 작업마다 다르다. 그러나 재상연을 해도 되는가, 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먼저다. 작업의 즉흥성과 현장성에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가능성이 일시성과 필연적으로 결부되는 작업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고 반복을 통해서 새로운 창의성을 창출해낼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이는 작가의 해석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미술관은 일차적으로 작가의 해석을 수용하게 되고 작가와의 협업이 중요하다. 화이트큐브 공간에서 극장의 시간성을 갖는 재상연 퍼포먼스를 기획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서 미술관 공간에서 재상연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특히 극장의 관습에 기댄 작업인 경우에는 쉬운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모마(MoMA)에서 아브라모비치의 역사적 퍼포먼스를 재상연하였는데, 지나치게 엔터테인먼트에 치중한 스펙터클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물론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보는 사람도 그것이 작가의 해석이 충분히 이루어진 상태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트렌드에 따른 것인지 보고 비평해줄 의무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와 작품마다 다르고 미술관과 작가가 협업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으나, 언제까지나 작가의 의견만을 듣고 있을 수는 없고, 학예팀의 창의성도 발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협업 경험이 쌓이고, 협업의 결과물에 대한 외부 평자들의 코멘트가 축적되고, 개인의 실천이나 자기해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지식이 일종의 미학적 방법으로 성립되었을 때, 미술관도 큐레토리얼의 차원에서 개입할 수 있을 것이다.
 
 황수현 vmflxlzhzh1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