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감정협회 세미나 전문가들 충격 고백 청나라 건륭제(1711~1799)는 서화에 관심 많은 호사가였던 모양이다. 자신의 안목을 과신한 나머지 숱한 미술품을 망쳐놓은 자칭 감정가이기도 했다. 조맹부 글씨(行書煙江疊장圖詩)를 보고는 “참 잘 쓴 가짜”(雙鉤안作佳作)라며 글씨 앞 부분에 이렇게 써넣었을 정도였다. 60년 보위를 지킨 황제에게 누가 이를 탓하겠는가. 미술품의 기운만으로 “척 보면 안다”며 진위를 판정하는 건륭제 같은 이들을 서화감정에서는 ‘망기파(望氣派)’라 부른다. 책만 끼고 사는 ‘저록파(著錄派)’도 있다. 책의 기록을 인용해 진위판별에 목을 매는 게 특징이다. 책이라고 틀린 것이 없겠는가. 명나라의 장타이지에(張泰階)는 자기가 만든 가짜작품으로 책까지 쓴 인물이다.
“책을 너무 믿는 것보다 아예 책을 안보는 것이 낫다”는 말은 그런 점에서 명언이다. 인장만 챙기는 ‘관인파(款印派)’ 역시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낙관만으로 진위를 판별하니 문제가 많을 수밖에. 우창숴(吳昌碩·1844~1927)의 제자들은 스승이 낮잠 잘 때 그림을 바꿔치기해 엉뚱한 가짜그림에 스승이 낙관·제발토록 해 위작을 만들었다고 한다. 런보녠(任伯年·1840~1895)의 인장은 그의 사후 생활에 쪼들린 아들이 모두 팔아버렸다고 하니 도장이 만능은 아닐 터 이다.



이동천 명지대 교수가 지난주 미술품감정협회 세미나(출판문화회관)에서 밝힌, 과학적 서화감정이 등장하기 이전의 중국 감정가들 이야기다. 알량한 지식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드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중국의 옛 얘기라고만 하기엔 어쩐지 친숙한 사례들이다.
이교수는 “서화감정에는 자수성가가 없다”고 말한다. 독학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좋은 스승 밑에서 과학적인 트레이닝을 거친 뒤 많은 실전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품은 진짜로서의 법칙이 있고, 위조품은 가짜로서 의 법칙이 있다”. 서화감정가는 미술품을 수집·감상하는 애호가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만큼 과학적인 사고와 감정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이날 최병식 경희대 교수의 고백은 ‘충격적’이었다. 최교수는 1995년부터 한국 화랑협회에서 감정업무를 보아온 베테랑 감정위원이다. 하지만 “하루 15시 간씩 20년간 미술공부를 했어도 처음 5년간은 (진위문제에 대해) 입도 벙긋 못했다”며 “지금도 가끔은 확신을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그 이유를 최교수는 ‘학문과 현장의 차이’에서 찾는다. 우리나라의 학문연구가 추상적인데다 현장 경험도 없으니 미술품 감정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큰 돈을 지불하면서 미술품을 거래해보지 않고는 진위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단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이는 미술품 감정에 관한 한 “현장이 학문보다 앞선다” 는 말로도 받아들여진다. 학계의 안목과 능력을 현장 종사자들 보다 앞세우 는 이제까지의 인식과는 정반대이다. 그는 제대로 된 미술품 감정을 위해선 감정학을 공부하고도 7~8년 현장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감정학 공부에 대해 이동천 교수는 위조를 전문적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가짜를 알아야 진짜와 가짜를 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감정가를 범인을 쫓는 탐정·형사에 비유한다. 최·이 교수의 공통적인 지적은 미술사와 감정학은 완전 별개의 학문이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 월간 아트인컬처의 이규일 대표가 발표한 ‘취재현장에서 본 미술품진위문제’는 단연 눈길을 끌었다. 안견의 ‘청산백운도’, 신윤복의 ‘속화첩’, 김홍도 등의 ‘고산구곡시화병’, 변관식의 ‘외금강 옥류천’ 등…. 1990년대의 미술품 진위 논쟁·시비에는 내노라하는 미술사학자들도 많이 연루되어 있다. 주장의 옳고 그름은 언젠가 밝혀질 일. 하지만 대부분 논점이 핵심을 명쾌하게 찌르지 못하는 허점을 드러낸다. 서화감정학의 정립과 인식 확대의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날 세미나장은 청중들로 앉을 자리가 없었다. 감정학 대중화의 싹이 트기 시 작한 것이다. 지난 3월 한국미술품감정협회 창립 이후 부쩍 눈에 띄는 새로 운 현상들이다. 그래서 희망도 보인다.

- <경향신문> 2003.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