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김연아가 피겨스케이팅 파이널 그랑프리에서 2연패를 하는 쾌거에 온 국민이 환호하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피겨스케이팅이라 하면 명절 낮 시간에나 공중파로 보여주는 딴 나라 스포츠였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 꿈의 무대에서 우리의 딸이 우승, 그것도 두 해 연속 우승을 했다니 놀랍고 장하기만 하다. 요정이 따로 없었다.

■ 작품 평가의 들쭉날쭉한 결과

김연아가 바로 요정이었다. 아무튼 김연아 덕분에 이제 몇몇 전문용어들이 익숙하게 입에 오르내리며, 심사규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익히게 되었다. 김연아 개인이 열심히 한 결과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우리 문화 환경과 토양이 그만큼 성숙해가면서 만들어낸 결과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피겨스케이팅에 동작과 기술별로 채점 규정이 엄격하고 정밀하게 마련되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 우리의 예술작품 평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모든 선수가 수긍하는 룰과 진행의 공정성, 선수들의 열정, 이 삼박자가 어우러지면서 시합이 저절로 흥행이 되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다.

오늘날 우리의 예술작품 공모전들은 왜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일까. 예술작품을 평가할 때 평가자에 따라 들쭉날쭉한 결과들을 자주 목격한 필자의 입장에서는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얼마 전 미술대전 최종심을 위해 심사장을 들어서는데, 마침 낙선작으로 보이는 커다란 그림을 반출해가는 어떤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한 사람과 마주쳤다.

시선을 피하는 태도나, 자못 비장하고 오기어린 표정으로 보아 그 그림의 주인인 듯 보였다. 언뜻 눈에 들어온 작품을 보고서 느낀 인상은 '어? 괜찮은 그림인데…'였다.

저 정도가 낙선이면 입상작들은 어느 정도일까 생각하며 심사장을 들어섰다. (사실 내게는 최종심의 역할만 주어졌을 뿐이었다.) 막상 대상을 선정하는 최종심에 올라온 후보작들을 보았을 때 약간은 기대 밖이었다. 방금 전에 보았던 낙선작과 별 차이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미술대전이 비판을 받아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부정과 비리가 자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번만큼은 미술대전 심사가 그런 비리의 여지를 봉쇄하기 위해 나름대로 고심을 많이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정성 확립에만 몰두했을 뿐, 공모전 존립의 의미를 잊고 있는 것 같았다. 이해관계가 어느 정도 걸려 있는 작가들이 같은 작가를 심사한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모순으로 보인다.

■ 다양한 사람이 평가에 참여해야

유수의 국제 예술행사들이 마치 올림픽과 유사한 흥행을 거두고 있는 현실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공모전은 나름대로 필요하다. 아직도 많은 작가들에게 등용문으로서 말이다.

이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그에 걸맞은 전향적 쇄신이 시급함 또한 인정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관심을 반영하고 또한 유발하기 위해 다양한 층의 사람들이 평가에 참여하여야 한다.

일반 대중들이 뽑은 상, 비평가들이 뽑은 상, 또 같은 작가들이 뽑은 상들이 오히려 대상부터 입선작까지 우열을 매기는 방식보다 더 의미 있고 상식적인 것으로 보인다.

관객이 참여하고 재미를 얻는 축제로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대단히 중요하다. 일반 대중이 그렇게 우매하지도 않거니와, 저급한 취미의 소비자만도 아님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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