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반전의 드라마는 일어나지 않았고 권력은 예측대로 더욱 더 센 시장주의, 신자유주의, 개발주의자들에게 넘어갔거나 넘어가고 있다.
이번 대선 기간 동안 문화의 '문'자도 들어보지 못했다. 정책 대결이 실종된 선거였고 경제가 모든 다른 이슈를 압도한 선거였던 탓이라지만 '문화의 시대'니 '21세기의 경쟁력은 문화'라느니 하는 소리를 귀 따갑게 들었던 터에 미래를 결정할 대선에서 문화를 둘러싼 그 어떤 논쟁이나 담론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문화는 여전히 경제의 종속 변수이고 권력자들의 립 서비스 속에서나 의미 있는 대상이라는 점이 입증된 셈이랄까.

■ 문화 상업주의 기승 부릴 듯

선거 기간 동안 드러난 바가 없으니 앞으로 새로운 권력이 지향할 문화정책이 어떤 것일지 구체적으로 알 수야 없다. 하지만 당선자와 그가 딛고 있는 세력의 성향으로 볼 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문화 전반에서 시장주의와 상업주의, 경쟁 논리가 더욱 기승을 부리리라는 사실이다. 문화를 그저 돈벌이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산업중심의 경제논리가 대중문화 전반을 더욱 더 강하게 지배할 것이고 문화적 공공성은 더욱 축소될 전망이다.

문화 영역에서 산업과 경제 논리가 득세한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다. 90년대 초에 이미 "영화 <쥬라기 공원> 한 편이 벌어들인 돈이 현대자동차 3년 수출해 번 돈보다 많다"는 식의 이야기가 회자하기 시작했고, 대기업 자본의 문화산업 진출이 이루어졌다.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는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21세기 전략 산업이라는 문화산업에 적지 않은 투자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난 지금 문화산업은 황금알을 쏟아내고 대중문화는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는가? 대답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한때 한국 대중문화의 국제적인 경쟁력을 과시하는 듯 보였던 한류 현상도 어느 틈엔가 잦아들었고 급성장을 보였던 영화도 위기의 징후가 역력하다. 무엇보다도 문화적 다양성이란 점에서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극히 취약하며 당연히 대중의 문화적 삶의 질이 높아졌다는 증거도 찾기 어렵다.

문화는 대단한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경제적 자원이다. 그러나 문화는 단기적인 자본 축적의 대상으로서 상품이기 이전에, 대중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과정이며 장기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정신적 환경이다.

대중이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 환경 속에서 살 수 있을 때 문화의 경쟁력이니 문화산업의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고 문화산업의 이윤 창출 가능성도 커진다.

단기적인 시장 성과에 급급한 경제논리와 시장주의는 오히려 결과적으로 문화의 상품적 가능성을 약화시킨다. 경제주의와 시장논리에서 벗어나 문화적 공공성의 가치가 살아날 때 문화의 경제적 가치와 시장 경쟁력은 생겨난다. 10여 년의 과정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은 역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이나 기업의 전략 모두가 단기적인 시장 성과에 초점을 맞추었을 뿐, 사람을 키우고 문화적 공공성을 확보해 가는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았다.

■ 산업중심서 문화로 사고 변해야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문화를 보는 시각과 정책 전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는 '왜' 문화산업을 걱정하고 문화정책을 고민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의 문화적 삶을 좀 더 풍요롭고 창조적으로 만드는 것, 대중의 문화적 환경을 좀 더 다양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 문화산업을 키우고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그러한 목표를 위한 수단이자 과정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산업 중심에서 문화 중심으로, 생산자 중심에서 수용자 대중 중심으로 사고의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비로소 문화의 산업적 경쟁력도, 상품적 가능성도 생기는 것이다. 글쎄, 당선자와 그 주변 사람들의 날선 시장주의 성향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도저히 먹힐 것 같지 않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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