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느 일간지에 노무현 정권의 싹쓸이 문화권력을 씻어내야 한다는 요지의 사설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그 사설에 본인이 수년 전 “인민군이 남한을 무력 점령해도 이처럼 무모하고 안하무인식의 인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뱉었던 말이 무단 인용되었는데, 그야말로 노무현 정권의 코드 인사는 게걸스러운 잔치판이었다.

1987년 직선제 이후 노태우 정권을 거쳐 김영삼, 김대중 정권에 이르러 이 땅에 민주화가 정착되었고 과거 군사독재에 항거한 민주인사들 가운데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들은 정부 요직과 각계에 두루 포진하였다. 뒤늦게 노무현 정권이 뜬금없는 민주개혁의 구호를 뒷북치듯 외치면서 바톤을 이어받았을 때는 민주정부가 수립된 지 어언 10년이 지나서였으며, 아직도 민주화 투쟁 경력 보상을 채 못받은 빚쟁이들이 있었다면 그네들의 명세서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사자가 먹잇감을 포식하고 나면 찌꺼기를 노리고 게걸스럽게 달려드는 무리들이 있다. 이들을 밀림의 청소부라고 하던가? 그나마 그 찌꺼기가 남겨진 분야 중 하나가 문화예술 쪽이다. 정부 부처 가운데 산하 기관 단체가 가장 많은 문화관광부는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삽시간에 말끔히 ‘청소’되고 말았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었다. 허수아비 원장 밑에 문화부 퇴직 관료를 실세 사무총장으로 앉혀놓고 안기부 비자금 조달처로까지 활용하던 진흥원을 정부 간섭으로부터 떼어내 민간 예술인 원장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게 했다.

그러나 민예총 계열의 인사를 원장과 사무총장으로 위장취업시킨 후 요식적인 공청회를 거쳐 문화예술위원회로 하루아침에 탈바꿈시켰다. 예술인이 주인이 되는 예술행정이라는 미명 아래 예술인이 예술인 위에 군림하는 초유의 체제가 탄생한 것이다. 이로부터 ‘문화권력’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일제 치하나 군부 독재에서나 가능했을 법한 망령이 민주화의 탈을 쓰고 되살아났다. 거의 모든 문화예술 기관들이 소위 코드 일색으로 채워졌다. 그리고 5년간 이 땅의 예술계를 떡 주무르듯 주물렀으나 예술이 나아졌다는 징조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제 정권이 바뀌었다. 또다시 문화예술계에도 인사 태풍이 불어닥치고 물갈이가 시작될 터인데 예술인이 예술인 위에 군림하는 체제만큼은 부디 청산되기를 손모아 빈다. 예술단(극단, 악단, 무용단 등) 같은 창작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라면 이전부터 정착돼온 예술감독제를 당연히 유지·발전시켜야겠지만 예술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이라면 해박한 경륜을 갖춘 전문인을 기용해서 공평무사하게 집행하도록 할 일이지 친정부 인사를 시혜적 차원에서 발탁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고언을 드리고 싶다.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 특별히 기대하는 것은 없다. 애당초 문화예술에 대한 공약 또한 참신성도 없지만 갓 출범한 인수위의 면모를 살펴보아도 문화예술에 대한 각별한 배려는 보이지 않아 오히려 안도케 한다. 제발 문화예술은 내버려 두고 국가 선진화의 로드맵에 발맞춘 지원을 아끼지 말아주기만을 바란다. 제발 우리 좀 신경 쓰지 말고 내버려 두세요. 시간 나면 구경이나 좀 오시고. 표 사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