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그 서문〕
심봉섭 회고전
‘대칭 속 비대칭’과 ‘결’의 추상미학 (3편)
김성호(미술평론가)
(2편에서 이어)!!!
VI. 에필로그
우리는 여기서 고 심봉섭의 독자적인 추상조각의 세계를 가늠해볼 수 있는 한 에세이를 다시 펼쳐보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그는 이 글에서 로댕의 청동시대가 실제 인체로부터 캐스팅되었다는 비판과 루머를 잠식시키기 위해서 작품의 실제 모델을 사람들 앞에 제시했던 사건을 예로 들면서 다음처럼 언급한다.
“로댕은 이 작품에서 인간의 내적인 진실, 즉 약동하는 생명력을 표현하려 했고, 이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하여 필요에 따라 근육 등 양감을 과장하는 새로운 수법을 시도했던 것이다. / 진실과 과장! 매우 상반된 얘기 같이 들린다. 진실이란 반드시 정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그는 내적인 생명력을 더욱 강조하기 위하여 과장되고 변형된 표현형식을 썼다. 이리하여 이것은 조각의 새로운 표현양식이 되기도 하였다.” [27]
이러한 그의 에세이는 다음처럼 축약될 수 있겠다. : 로댕에게서, ‘실제 인물의 캐스팅’이라는 오해를 받을만큼, 실제모델보다 더 리얼한 작품이 가능했던 까닭은 과장이란 방법론 때문이었다. 예술작품의 내적 진실(약동하는 생명력)을 위해서는 외적 진실(실제모델의 외양)에 대한 이러한 ‘과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그것은 결국 ‘내적 진실’과 상통한다.
로댕의 인상주의 조각이 훗날 브랑쿠시의 추상 조각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쳤듯이, 오늘날 그의 작품세계를 유업으로 추상조각의 내적 진실을 갈망하고 그것을 위해 헌신했던 고 심봉섭의 작품세계를 다시금 진지하게 검토하고 성찰해본다.
필자가 고 심봉섭의 작품세계로 파악한 “대칭 속 비대칭과 결의 추상미학”은 그가 작고할 당시에도 왕성하게 지속되어온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로서는 그가 생전에 남긴 글과 작품들을 통해서, 그의 추상미학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진폭으로 확장하려 했던 미래적 비전을 다만 유추하고 가늠해 볼 뿐이다.
일견, 그의 추상조각이 이항대립적 요소를 화해시키고 상호작용하게 하는 공간의 문제나 형식적 조형언어의 문제에만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겠다. 더욱이 후기에 올수록 수직지향의 모뉴먼트에 골몰함으로써[28] 그가 애초에 추구하려던 ‘대칭 속 비대칭’ 또는 ‘결의 추상미학’이 너무 형식의 내면으로 숨어버리지 않았는지에 대한 비판적 관점 역시 가능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적 문제의식은, 필자가 보기에 불교라는 종교적 아이콘의 세계에 그가 흠뻑 잠입함으로써 예술의 문제를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하려는 데서 야기된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으로서는 그 진의를 명쾌하게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추상의 형식에 종교적 주제의식을 사뿐히 담아내기 위해서 결의 추상미학이라는 주제의식을 형식 아래 깊숙이 은닉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쉽게도, ‘서로 같으면서 다른’ 예술과 종교의 문제를 추상조각을 통해서 깊이 풀어보려는 그의 시도는 미완으로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남겨둔 작품을 바라보고 그 미완의 시도를 가늠해야 할 역할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뤽 페리(Luc Ferry)의 언급을 빌면, ‘미적 체험은 주관적이며 순순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어떤 공통감의 양태 즉, 선험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어떤 나눔의 양태로 타인에게도 문을 열어주는 그런 체험’[29]이기 때문이다. 즉 미적 체험이란 이미 소통행위를 전제로 한다. 그것은 ‘발신자(작가)와 수용자(관객)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상호작용’[30]이자 커뮤니케이션 행위이다. 이미지를 소통하는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이란 직관이 작동하는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으로 어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언어이다. [31]
관건은 심봉섭이 남긴 유산에 우리가 ‘자유로운 소통’으로 참여하면서 자족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양한 언어적 커뮤니케이션(verbal communication)으로 매개할 역할이 우리 미술인들에게 남겨져 있다는 것이다. 감상자라는 ‘독자는 (예술작품이라는) 텍스트를 완성하는 유일한 목적지’[32]이자 늘 예술작품이라는 ‘텍스트를 다시 읽고 쓰는 무한한 가능성의 생산자’[33]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을 총체적으로 검토한 필자의 입장에서, 그의 작품 앞에 선 우리의 개인적 미적 체험이 이번 회고전에서 서로 나누어지고 공유되길 기대한다. 그런 차원에서 그의 작품세계에 대한 여러 평자들의 진지하고도 다양한 비평들이 이번 회고전을 계기로 다시 촉발되기를 기대해본다. ●
(끝)
출전 /
김성호, '대칭 속 비대칭과 결의 추상미학', 카탈로그 서문, 『한국추상조각의 원류-석리 심봉섭 1929-2001』, 화집, 2012. 3. pp.20-29. (심봉섭회고전, 2012. 3.7-13, 인사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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