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한 관객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는 미술전문해설사가 작품에 대한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어서 미술관 나들이가 무척 즐거웠다는 덕담을 건넨다. 새해 들어 이런 인사말을 전하는 관객이 부쩍 늘었다. 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미술전문해설사라는 단어가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미술전문해설사란, 말 그대로 미술관을 찾는 관객들에게 전시의 기획 의도와 작품의 의미 및 감상법 등을 설명해주는 사람을 뜻한다. 즉, 미술품과 관객이 소통할 수 있도록 중매하는 사람이 바로 미술전문해설사인 것이다.
현재 전국의 사립 미술관에는 30명의 미술전문해설사가 배치되어 관객의 눈높이를 배려한 다양한 감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미술전문해설사라는 이색적인 직종이 국내 사립 미술관에 첫선을 보인 시기는 지난해 12월이다. 그런데 불과 한 달 남짓 만에 미술전문해설사가 미술관의 꽃으로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니 가슴이 벅차오를 수밖에. 내가 그토록 뿌듯함을 느낀 것에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미술전문해설사의 필요성을 정부에 제안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자, 독자에게 미술전문해설사가 사립 미술관에 배치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겠다.
지난해 한 대기업 간부들을 대상으로 미술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강의 주제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창의성을 기르는 것. 강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평소 미술과 담을 쌓고 사는 중견 직장인들이 과연 미술 이야기를 흥미롭게 받아들일지 내심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교육생들은 큰 관심을 보이면서 강의에 푹 빠져드는 기색이 역력했다.
관중의 열광적인 반응은 고스란히 내게 전염되었던가. 신바람이 나서 “여러분 이런 기발한 발상은 예전에 살바도르 달리가 즐겨 구사하던 방법이에요”하면서 목청을 높였다.
“달리의 특허인 축 늘어진 시계를 머릿속에 떠올리려 보세요~” 하고 말을 이어가는데 관중의 반응은 의외로 썰렁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하~하 웃으면서 적극적으로 호응하던 교육생들인데, 대체 왜 갑자기 조용해진 것일까? 당황해서 “자, 여러분, 그 유명한 달리표 시계, 미술 교과서에도 나오잖아요. 설마 지성인인 여러분들이 그의 대표 작품인 ‘기억의 고집’을 모르실 리는 없을 터이고”하면서 일부러 교육생들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내 눈길과 마주친 교육생들이 난처하다는 듯 눈길을 피했다. 그때 문득 교육생들이 달리를 모른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에 “혹 달리를 아는 분이 있으면 손을 들어주실래요”하고 요청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200명이 넘는 교육생 가운데 겨우 6명만이 손을 드는 것이다. 강의를 계속하는 도중에도 과연 교육생들은 달리를 알지 못해서 손을 들지 않았을까, 아니면 어린 학생들처럼 손을 드는 것이 쑥스러워서였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당시 내가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대다수의 미술인들처럼 나 또한 미술이라는 특수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눈만 뜨면 미술을 접하고 살아가는 내게 달리의 이름과 그림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어야 했다. 설령 미술을 모르는 사람들일지라도 세계적인 미술가인 달리와 그의 특별한 그림은 알고 있어야 마땅하다. 더구나 교육생들은 입사하기가 그토록 어렵다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간부들이 아닌가. 나는 사람들이 달리를 모른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데 며칠 후 내 옹졸한 생각을 여지없이 깨는 일이 벌어졌다. 고정관념을 깨는 망치 역할은 미술관을 찾은 한 케이블 TV의 PD가 맡았다.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또 다시 달리의 사례를 들었다(아마 내 무의식 깊이 자리잡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PD도 달리의 그림을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교과서에 나온 그림이잖아요” 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PD는 학창 시절 미술 시간을 너무 싫어한 결과라고 잘라 말했다. 물감, 붓, 물통 등이 거추장스러운 짐처럼 여겨져서, 그 무엇보다 그림을 억지로 그리도록 강요한 선생님이 미워서 미술에 염증을 느끼게 됐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학교를 졸업한 지금도 그는 미술이라면 손사래를 친다고 한다. PD의 적나라한 고백에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첫째는 미술 감상은 뒷전이고 실기에만 치중하는 학교 미술교육의 폐해에, 둘째는 미술의 잣대로 사람들의 교양 수준을 평가하는 나의 편협함에, 셋째는 관객의 감상교육을 책임져야 할 미술관이 본연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아울러 내 강의를 듣던 교육생들이 왜 달리를 모르는지 깨닫게 되었다. 바로 학교에서도, 미술관에서도 감상교육을 받지 못한 서글픈 결과라는 것을. 그날 이후 선진 문화국의 미술관들처럼 국내 미술관들도 관객을 위한 감상교육에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특히 국내 미술관 수의 76%나 차지하는 사립 미술관들이 적극적으로 관객의 눈높이를 겨냥한 감상교육을 개발하고 실시해야 한다고.
내친 김에 관객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의 희망 사항을 물었다. 대다수의 관객은 난해한 현대미술을 일반인의 언어로 번역해주는 작품해설 도우미를 원했다. 그러나 문제는 돈이다. 과연 재정이 열악한 사립 미술관들이 미술전문해설사를 채용할 여력이 있을까? 재원을 마련할 방도가 없어 발을 동동 구르던 중 행운의 여신이 손길을 내밀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정책과의 오주현 주문관의 도움으로 노동부와 연계한 사립 미술관 미술전문해설사 프로그램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정말이지,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루어지더라.
- 문화일보 2008.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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