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그 서문〕

(박지영전, 2012. 8. 8~8. 13, 가나아트스페이스)


타자로부터 -타아(他我)의 아포리즘




김성호(미술평론가)





표현주의의 조형언어와 심리

박지영의 작품은 자신의 심층에 내재된 표현 욕구와 의지를 드러내고 분출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표현주의의 경향을 드러낸다. 그것은 20세기 모더니티가 추앙했던 ‘가장 예술다운 예술’이며 21세기 포스트모더니티가 자리 잡은 ‘가장 보편적인 예술’의 유형이다. 관점에 따라 현대미술의 핵심은 표현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술에서 이러한 표현주의는 미술가라고 하는 창작 주체의 주체성을 가감 없이 확인해낼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성의 통제 없는 감성의 자유 표현 의지는 곧 미술이란 정체성을 대면하는 ‘창작자의 꾸밈없는 솔직함’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에는 이러한 ‘자신의 내면의지에 충실한 채 꾸미지 않은 진솔함’이라는 표현주의적 조형언어가 전면에 포진해 있다. 그녀만의 가장 내밀한 자아의식이 날 것으로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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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lational, 162.2x130.3 mixed media on canvas



박지영의 표현주의적 언어는 혼재한 여러 의미들 속에서 단어와 어절을 구분해내고 하나의 의미망으로 건져 올리는 것 자체를 그녀 자신조차 버겁게 만드는 ‘하나의 이미지 덩어리'로 존재한다. 그녀의 표현주의가 재현(representation)과 같은 설명의 언어를 거부하고 심상 속에 자유롭게 유영하는 이미지들을 그저 캔버스 천을 씌운 패널 위에 투영시켜내는 표현(expression)이라고 하는 ‘비설명적 언어’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용 미디엄이 두텁게 입혀진 바탕면 위에 올라선 물감은 붓질에 의해 순식간에 겹쳐지거나 뭉개지고 이내 또 다른 붓질에 의해 다시 벗겨지고 상처를 입으면서 그 표현의 깊이로 잠입한다. 이렇듯 즉발적 시간과 사투하며 만들어낸 그녀의 표현 언어들은, 최종적으로 작가의 창작 당시의 스트로크를 기억하는 흔적들이 두터운 마티에르로 고착화됨으로써, 우리에게 물질감 가득한 화면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거친 표현’과 ‘설명하지 않는 언어들’은 우리의 지각에 호소하는 어떠한 분위기로 떠돈다. 그것은 어두운 회갈색조가 주를 이루는 가운데 보이는 고독, 우수, 상처, 암울, 피폐함, 불안함, 낙망, 좌절, 공포와 같은 심연의 깊이를 떠도는 극단의 부정적인 심리 상태들이다.


카오스의 심연을 유영하는 이러한 극단의 심리상태는 나아가 ‘그로테스크(grotesque) 분위기’마저 배태한다. 동굴(grote)이라는 이탈리어에서 유래한 그로테스크는 애초에 식물, 동물 그리고 기괴한 형태로 어우러져있는 일종의 장식을 지칭했다. 이것은 오늘날 극도의 부자연스러운 것, 괴기한 그 무엇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전유(轉游)된다. 이것은 종종 ‘공포와 친밀함’, ‘성(聖)과 성(性)’, ‘기쁨과 슬픔’과 같은 극단의 대비적 분위기가 합체하고 있는 가운데 발생한다. 예를 들어, 박지영의 작품에서 두 사람이 부둥켜안고 있는 〈Dancing〉이란 작품은 그 화기애애한 형상 뒤로 깊은 슬픔과 절망의 분위기가 휩싸고 있다. 쇼핑을 나선 듯 핸드백을 들고 나선 한 여인의 초상을 표현한 작품 〈After that day〉에서는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파국과 같은 불안한 분위기가 배태해있다. 


한편 이목구비가 사라진 유령 같은 분위기의 여인 초상이 곧〈비너스〉였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기괴함’이라는 의미로만 단정되어 온 그로테스크의 본질이란 이처럼 ‘이성’으로 접근할 경우 결코 합치할 수 없는 두 개념의 언저리에서 발생되는 ‘감성’의 양면성이다. 이런 차원에서, 그로테스크는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 인식된 것과 인식되지 않은 것 사이, 곧 의식의 가장자리에 위치한다.”에 위치한다는 미학자 하르팜(Harpham)의 언급은 ‘감성으로 대면하는 표현주의적 언어’를 구사하는 박지영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있어 일정부분 유효하다. 그러니까 그녀의 작품은 공포와 친밀, 슬픔과 기쁨, 아픔과 즐거움과 같은 극단의 정서가 부딪히는 그 언저리 어디에서 스멀스멀 자라나서 우리 인식의 과정 사이(interval)에 끊임없이 개입함으로써 우리의 정서를 다독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After that day, 116.8x91.0 mixed mieda on panel



The relational, 162.2x130.3 mixed media on panel







타자로부터 -또 다른 나

그러나 박지영의 작업을 ‘표현’과 ‘감성’의 차원으로만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유효해진다. ‘박지영의 작업에서, 대립하는 감정의 언저리에서 발생하는 극단의 정서들은 궁극적으로 무엇으로부터 기원하고 있는가?’


그녀의 작품에서,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아라고 하는 주체로 드러나지만, 실상 그것은 타자라는 동인(動因)이다. 그녀의 작품을 대면하는 우리에게 가능한 상상들은 주체가 바로 타자로부터 영향 받아 구체화된다는 것이다.


모든 나의 정체성은 타자(들)와 맺고 있는 관계의 차원에서 발생한다. 그녀의 일련의 작품들〈After that day〉나 〈relations〉은 이러한 관계의 사건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근원에는 자아가 아닌 타자들이 있다. 그것은 자아의 주체적 시선마저 결국 타자로부터 기인한 것임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주체성이란 타자의 출현과 개입을 통해 비로소 발생한다”는 들뢰즈의 견해처럼 타자와 타자와의 관계는 나라는 주체를 인식하게 하는 조건이자 동인이 된다.


그녀의 작품 안에 등장하는 인물은 둘이거나 때로 하나이지만 대개 그 하나인 인물 속에서조차 우리는 또 다른 인물이 오버랩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또 다른 나’라는 화두를 만나게 된다. 이것은 일견, 프로이트의 자아(ego)가 끊임없이 중재하는 ‘또 다른 나’인 ‘본능(id)’과 ‘초자아(superego)’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것은 프로이트의 견해대로 자아 스스로가 분열한 주체의 여러 형상으로 해석되기 보다는 들뢰즈의 견해처럼 타자로부터 형성된 주체의 모습으로 파악된다. 이것은 마치 작가 ‘박지영’이라는 주체가 큐레이터나 평론가로부터 명명되는 주체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 여성, 아내, 엄마, 며느리, 선배, 후배, 동료’ 등 타자로부터 명명되면서 여러 정체성으로 분열되는 주체를 동반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주체란 언제나 ‘또 다른 나’와 동행하는 존재이다.


‘또 다른 나’를 우리는 타아(他我, other self)는 말로 부른다. 이것은 ‘타자가 지닌 자아’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즉 타아는 나의 분신을 한 타자의 자아로 이해된다. 결국 너, 그, 그녀, 그들이라는 타자들은 나의 투영에 다름 아닌 것이다. 거꾸로 나는 타자들의 투영이다. 타자들의 시선으로 매개되는 나 말이다.



Dancing 90.0x72.7 mixed mieda on panel


The relational,140x140 mixed media on canvas


Stare 140x140 mixed media on panel



The relational 140x140 mixed media on panel


결국 박지영의 작품들에 나타난 자아라는 주체의 초상에는 ‘타자들로부터’라고 하는 타아의 아포리즘(aphorism)으로 가득하다. 히포크라테스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처럼 널리 알려진 유명인사의 짧은 격언, 경구 등을 우리가 아포리즘이라 통칭할 때, 우리는 거기에 ‘체험적인 진술에 바탕하고 있는 독창적 사유’가 전제됨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표현주의적이고도 비설명적인 이미지 덩어리’로 주체의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는 박지영의 작품이 화두처럼 던지는 아포리즘을 우리는 ‘타자들로부터’라고 받아 적을 수 있겠다. 작가들이 선호하는 일정한 트렌드가 암묵적 동의 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오늘날의 세련된 현대미술의 장에 하나의 돌멩이처럼 던져진 그녀의 투박한 표현주의적 조형언어는 진솔함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신선함 그 자체이다. 우리가 ‘어떤 차원에서 무모하기조차 한 그녀의 이미지 덩어리’ 안에서 인간 존재론의 깊은 메시지를 만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아울러 덧붙일 것은, ‘특별한 것을 별반 설명하지 않는 그녀의 투박한 조형언어’가 그녀의 작업을 대면하는 관람객들에게 ‘그림 읽기의 독특하고도 미묘한 즐거움’을 배가시켜준다는 사실이다. ■



출전 /

김성호, "타자로부터 -타아(他我)의 아포리즘“, 카탈로그 서문, (박지영전, 2012. 8. 8~8. 13, 가나아트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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