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그 서문〕

서성근전

 

 

소우주에서 찾아가는 생의 환희



 

 

 

김성호(미술평론가)

 

 

 

 

 

 

하나의 꽃으로부터

서성근의 작품들은 ‘꽃’으로부터 시작해서 꽃으로 환원하는 서클을 그린다. 이 과정은 그에게 있어 하나의 소우주이다. 이 안에서 세상의 질서가 화가 서성근에 의해서 재편성된다. 달리 말하면 주체가 대면하고 있는 대상, 타자, 세계의 문제들이 화가가 대면하고 있는 생명체와 삶, 가족이라는 일상의 관심사로 구체화되면서 그의 작품 세계가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만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의 정수(精髓)인 꽃은 그의 작품세계를 여는 출발점이자 하나의 화두이다.

 

꽃이 가지고 있는 화두는 그에게 무엇일까? 미적 쾌(快)를 유발시키는 조형성일까, 아니면 감성적 쾌를 자극하는 향기일까? 그의 작품에 나타난 꽃은 대개 대상의 전체상을 드러내기 위해서 건축의 평면도에 나타나는 부감(俯瞰)적 시각으로 그려진다. 아울러 그것은 여타의 불필요한 요소들을 탈각시키고 꽃이라는 하나의 화두에 집중하기 위해서 클로즈업된 채 그려진다. 그곳에는 대칭이 만들어내는 대립과 비대칭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그곳에는 꽃잎 하나하나가 만들어내는 반복의 구조와 더불어 그 속에서 파국을 만들어내는 수술과 암술의 비반복의 구조 역시 함께 맞물려 있다.

 

그의 작품에 드러나고 있는 암술과 수술, 그리고 프랙탈(fractal) 구조처럼 반복 생산되는 미묘한 꽃잎들의 대칭적 형태와 유선형의 폼(form)은 미적 조형성을 지향한다. 암술과 수술 그리고 그것을 품고 있는 꽃잎이나 꽃받침과 같은 '화피(花被)'가 서로 만나는 요철(凹凸)의 조형성 역시 그에게 시각적 쾌를 불러일으키는 주요한 조형 전략이다. 생각해보자. 대칭, 비대칭, 반복과 비반복이 겹쳐지는 그의 조형미학은 대립과 조화와 같은 존재의 질서를 표상한다. 나아가 이것은 부귀, 사랑, 유희, 환희, 재생, 모태(母胎)의 생명과 같은 꽃에 담긴 수많은 상징들을 삶의 내러티브 안에 이끌어냄으로써 그의 꽃을 궁극에 그가 그려내고자 하는 소우주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 만들어낸다. 즉 화가라는 주체가 만나는 대상, 타자, 세계를 꽃을 통해서 은유하는 것 말이다. 그는 이러한 정교한 조형언어를 통해서 하나의 꽃으로부터 출발해서 다시 그것으로 귀결되는 소우주를 그려내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그의 작품은 궁극적으로 생명과 삶의 체험적 문제의식에 관한 공통적 함의의 보편적 내러티브를 드러냄으로써 관객들에게 저마다의 내밀하고 특수한 내러티브를 반영, 유추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서성근 작

 




대우주의 질서를 담아내는 미시적 소우주

여기 꽃의 다른 원형(原型)인 ‘멜론(melon)’이 있다. 이것 역시 꽃의 형상처럼 화면의 중앙을 잠식하며 클로즈업된 채 우리에게 자신의 표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거기에는 멜론 특유의 미로(迷路)와 같은 그물망 무늬가 가득하다. 그것은 마치 지구 혹은 금성처럼 우주의 행성과도 같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주위로는 더러는 또렷한 더러는 흐릿한 형상의 한 무리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흐릿한 이미지의 그것은 어찌 보면 구름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별자리 같아 보이기도 한다. 특유의 도상(Icon)인 원형(圓形)이 유발시키는 이러한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멜론으로부터 정물로 보는 시선을 거두게 하고 그것을 하나의 ‘은유체’로 바라보게 한다. 우주의 ‘행성’ 나아가 대우주의 신비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하나의 ‘소우주’로 표상하게끔 하는 것이다.

 

꽃의 다른 원형(原型)인 ‘선인장’ 역시 클로즈업된 화면 주위로 새들이 비상하고 있다. 그것은 커다란 소우주를 날고 있는 천상의 새처럼 보인다. 여기에 별자리로 유추케 하는 일견의 띠고리들이 화면 안에 침투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이 선인장을 정물로 보게 하는 시선을 떨쳐내게 한다. 그것은 이미 하나의 소우주로 변환된다.

 

우리는 꽃, 멜론, 선인장, 사과 등으로 대표되는 원형(圓形)적 도상의 정물들이 대상화된 틀을 벗고 하나의 소우주에 대한 원형(原型)적 은유로 표상되는 계기라는 것이 병합, 배치, 대조, 조화를 함께 꾀하는 다양한 방식의 그의 조형언어로부터 비롯되었음을 간파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의 화면에는 꽃, 멜론, 선인장, 사과가 화면 안에 자리하는 가운데 그것과 대립하는 요소들이 부가적으로 가세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나란히 줄 위 혹은 창 안에 모여 앉아있거나 화면 전체를 돌듯이 비상하는 새들은 대표적인 부가적 요소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원형(圓形)의 도상 안에 있기도 하지만, 이중 분할된 화면 반대편에 존재하면서 그의 작품을 매우 분석적이고 구조적이게 만든다. 그것은 화면 좌측의 소우주로 대변되는 도상적 이미지를 우측의 구조적인 격자무늬 속 파랑색들을 통해서 부연v설명하는 기제가 된다. 이러한 보조적 조형언어는 이뿐만이 아니다. 멜론, 사과 등 도상의 바탕을 이루는 화면에 가득 채워져 있는 텍스트들은 때로는 자음과 모음이 분리되거나 조형적으로 얽혀 있는 상태로 때로는 온전한 글자의 형상으로 은은히 배경 위로 떠오른다. 그것은 독해될 수 있는 메시지로서의 의미이기 보다는 이미지로 전환된 조형언어로서 그의 작품에서 도상의 의미를 배가시키는 보조적이지만 매우 주요한 조형언어이다.

 

그의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대립의 구조가 복잡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도상/바탕, 구상/추상, 이미지/텍스트, 꽃(식물)/새(동물), 자연/인공, 소우주/대우주 단수/복수, 미시(微視)/거시(巨視), 상세/단순, 중심/주변, 좌측/우측,

 

이러한 복잡한 대립의 구조는, 그의 풍부한 화면을 정확하게 재단, 분할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니지만, 대개 중심/주변 혹은 좌측/우측이라는 축으로 전개됨으로써 비교적 선명하게 나타나는 것들이다. 이러한 선명성은 이미지의 상호침투로 인해서 대립의 선명함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그것들이 서로의 영향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서 보다 풍부한 의미들을 함축하면서 전개된다. 예를 들어 산의 형상이 인체의 엉덩이와 오버랩되거나, 딸기 잎이 새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식의 회화적 전략은 이러한 풍부함을 가중시킨다. 이것은 일견 화면의 원래 이미지들을 일그러뜨리는 왜상(歪像), 즉 아나몰포시스(anamorphosis)의 변형된 전략에 다름 아니다. 예를 들어, 바탕화면의 새들이 구름, 별자리의 모습을 오고가는 식의 이미지 중첩을 통한 이미지 왜곡의 형식은 단순한 대립구조의 틀을 벗어나 우리에게 유추시키는 주제의식과 관련한 의미들을 매우 풍부하게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전략에 의해 그의 미시적 소우주가 매우 상세하게 표현됨으로써, 거시적 대우주의 양상이 어렵지 않게 표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섬세한 표현들로 접근한 꽃, 멜론, 선인장 같은 미시적 소우주가 그의 작품을 통해 우주의 보편적 원리를 어렵지 않게 그리고 산뜻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꾸로 말해, 표현할 길 없는 대우주의 내러티브가 보잘 것 없는 일개의 자연물 안에 모두 담길 수 있다는 동양철학적 사유를 창작의 언어로 깔끔하게 실현해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즉 소우주에 대우주가 담겨있다는 역설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서성근 작
 
 
 
 
 

 

생명의 유희 혹은 생의 환희

꽃, 멜론, 사과, 딸기 등의 미시적 소우주라는 화제(畵題)로부터 그의 회화가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가 작가노트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그것은 ‘생명의 유희’라 할 것이다.

 

“물안개 피어나는 아침

오리가족이 떠다닌다.

정자동 탄천 주변 아파트의 낙조는

물오리와 누런 갈대숲과 어울려 오목눈이, 양진이, 박새 등등이 눈에 들어온다.

것은 나의 작업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고

생명의 노래가 된다.

탄천은 내게 무한한 영감을 제공하는 고마운 곳이며,

생명의 유희가 곳곳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에게 생명의 유희란 바로 이러한 소소한 일상과 같은 소우주에서 찾아간다. 그의 작품에서 꽃, 멜론, 사과, 딸기로 은유되는 이러한 소우주는 그의 체험적 일상이 녹아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상들에 개입되는 ‘오리들의 유영’, ‘새들의 비상’과 같은 부가적 요소들이 앞서의 도상들과 대립과 상호작용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의 작품에 나타난 생명의 유희라는 주제의식을 풍성하게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오리는 개별체이기 보다는 군집이며 그것은 그의 말대로 ‘가족’이다. 자아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자아의 미래를 개척하게 하는 동력으로서의 가족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작품의 주제의식 ‘생명의 유희’가 바로 ‘생의 환희(歡喜)’로부터 근원한 것임을 은연 중 깨닫게 한다. 환희란 “미혹(迷惑)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피안(彼岸)으로 건너가는” 득도(得道)의 과정이 가져다주는 몸과 마음의 ‘참기쁨’을 지칭한다. 그런 면에서 ‘생의 환희’란 내생에서 기약하는 기쁨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현재적 삶 속에서 찾아지는 ‘참기쁨’이라 할 수 있다.


 


서성근 작

 

 

화가 서성근의 작품에는 체험적 일상에 기초한 그의 미시적 소우주로부터 찾아지는 생의 환희로 가득하다. 오방색(五方色)에 근거한 화려한 색감은 이러한 생의 환희에 대한 화답처럼 보인다. 중간색조가 거의 없는 그의 화면은 약동하는 색감들로 충만하다. 자칫 생기발랄의 차원으로 국한될 수 있는 이러한 차원을 진중한 무엇으로 무장시키는 것은 금박이나 금분의 사용도 한 몫 하지만, 그것은 다름 아닌 그가 사용하는 석채(石彩)기법이다. 안료들을 시간을 두고 몇 겹씩 나누어 진하고 두껍게 바르는 이러한 더딘 회화 제작 방식은 그의 화면에 나타난 생기발랄한 화면을 묵직하고 진중하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광물질을 원료로 한 암채(巖彩) 안료를 사용함으로써 그의 화면은 고구려벽화와 같은 고대의 채색 전통에 나타난 무게감 있는 화면을 배가시킨다. 약동감과 묵직함이 조합된 그의 화면은 세밀화에 국한된 일본적 전통의 진채眞彩)화와도 거리를 둠으로써 한국 고유의 전통미감을 되살려내고 있다.

 

패널 위에 한지를 붙이고 그 위에 린넨 천으로 배접함으로써 두터운 안료들이 올라설 지지대를 만들어놓고, 시간과 공을 들여 제작하는 그의 힘든 회화 창작은 그의 ‘산뜻한/진중한’이라는 두 차원을 아우르는 조형언어를 만나면서 그의 회화를 생동력 있는 ‘무엇’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생명의 유희’ 혹은 ‘생의 환희’라는 그의 주제의식은 그런 면에서 그의 체험적 일상으로부터 기원하는 ‘미시적 소우주’에서 건져 올린 ‘창작의 보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출전 /

김성호, '소우주에서 찾아가는 생의 환희“, (서성근전, 2012. 10. 27~11. 2, 서울아산병원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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