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론〕이상갑
장(場)과 상(像) 사이 -조각의 존재론에 대한 물음
김성호(미술평론가)
조각가 이상갑은 질료가 처하고 있는 상황 자체를 조각화(化)하는 ‘조각의 존재론’에 골몰한다. 그의 작품명에 나타나고 있는 공(空), 간(間), 장(場), 접시(接視)와 같은 용어들은 이러한 주제의식을 이해하는 단초들이다. 조각이라는 삼차원의 물질이 때로는 ‘장(場)’으로 때로는 ‘상(像)’으로 삼투하면서 양자 사이를 부단히 오고가는 그의 작업은 크게는 공간(space)과 장(field)의 문제의식이 대면하는 가운데 그것 사이에서 생성하고 있는 상(image)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라 요약할 수 있겠다.

이상갑, 場 06-1, Steel, 360x360x60cm 2006

이상갑, 場 06-2, Steel, 160x100x180cm 2006

이상갑, 場 01-4, Steel, 90x630x70cm 2001
장(場)과 공간-수평 탐식적 조각
서울대에서 구상조각의 수련기를 거친 이후, 1970년대 그의 조각가로서의 첫 출발은 정작 비구상조각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970년대 당시, 추상 실험이 만연했던 미술현장은 조각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젊은 시절 다수의 공모전 수상의 경력(1977년 2회 공간미술대상전 조각상, 1978년 1회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1980년 29회 국전 대상)은 이러한 비구상조각의 실험적 모색에 대한 값진 열매였다. 중진의 끝자락에서 받은 수상(2006년 20회 김세중 조각상)과 최근 대학에서의 정년퇴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업은 일관되게 비구상조각의 세계에 대한 실험적 천착이었다. 특히 청년기의 작업들에서 보여 왔던 기념비적 비구상작업은 중진의 시대에 이르러 모뉴멘탈리즘이 제기하는 수직 지향성을 탈피하면서 조각체의 덩치를 덜어내고 납작하게 지면에 안착하는 수평 지향성으로 침투한다. 그것은 비조각의 어법으로 조각의 존재론을 묻는 작업에 다름 아니었다.
일견, 그의 이러한 수평 지향성, 혹은 수평 탐식적 조각은 칼 안드레(Carl Andre)의 미니멀리즘 작업의 조형 전략과 흡사하다. 양자 간의 조형언어를 유사하게 만드는 공유지점이란 다름 아닌 바닥에 낮게 드러누운 얇은 판형제의 조각체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외양적인 분석일 따름이다. 이상갑의 작업은, 조각품의 지체들이 형성하는 반복적, 비관계적(non-relational) 구성에 천착한 칼 안드레의 조각들과, 분명코 다른 지점을 모색한다. 최소 형태의 판형 입방체들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무한 증식하는 칼 안드레의 작업은 기존 조각이 지니고 있던 내부의 중심으로부터 주변을 분절하는 ‘관계의 의미’ 자체를 배제시키는데 주력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이상갑의 작업은 거꾸로 ‘관계의 의미’를 드러내는데 주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조각의 표피와 몸체, 조각의 수직적, 수평적 점유, 조각과 그것이 놓이는 컨텍스트 사이의 관계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묻는 작업이 되는 것이다.

이상갑, 場 01-5, Crushed Stone, Steel, 500x800x340cm 2001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은 차라리 같은 미니멀리스트인 로버트 모리스의 작업과 보다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모리스가 같은 모양의 L자형 빔을 눕히고 세우고 걸쳐놓는 방식으로 조각과 그것이 놓이는 '장(field)' 사이에서 발생하는 외관적 '상(image)'에 주목하고 있는 것처럼, 이상갑 역시 공간에 조각이 놓이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르다면, 모리스가 상황(조각의 점유 위치와 관람자의 경험적 공간)에 따라 달리 보이는 조각의 시각적 외연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고 할 때, 이상갑은 상황(조각의 점유 위치와 조각의 구조적 공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조각의 존재론'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이한 태도는 수평 탐식적 조각의 외양이 같아 보이는 두 작가의 작업을 근본적으로 변별시키는 기점이 된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생산되는 철판 자체를 이어붙인 이상갑의 평면체 조각은 벽과 기둥 그리고 바닥 위에 그림자의 상으로 드러눕기를 지속적으로 실험한다. 그것은 3차원 입체물이 천장과 바닥 사이에서 점유하는 공간에 대해 어떠한 표정(image)으로 나타날지를 염려하며 시비를 거는 모습이기 보다는 그것의 변화의 지형(field)에 그저 조각의 몸을 의탁하면서 조각의 존재론에 질문을 던지는 태도를 드러낸다. 따라서 그림자처럼 기대고 드러누운 그의 조각체는 모리스의 상(像)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일찌감치 탈주하면서 장(場)의 주요함을 설파한다.

이상갑. 接視 93, Bronze, Stone, 200x305x270cm 1993 (국립현대미술관소장)

이상갑, 사이 85-3, Stone, 85x55x20cm 1985
장(場)과 상(像)
이상갑에게 있어 “모든 상의 나타남과 사라짐은 장의 한 운동 형태”에 불과하다. 상은 곧 사라지지만 장은 결코 제거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조각이 몸담는 공간(空間) 자체는 부재의 무엇이기 보다는 ‘실재하는 부재’가 된다. 달리 말하면 조각체에 부재와 존재의 양극을 교류케 하는 방식으로 조각의 공간과 화해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의 작가노트를 잠시 살펴보자.
“장이 응축되면 가시적이 상이 되고, 상이 분산되면 비가시적인 장이 된다.”
쉽게 말해, 거대한 덩치를 유지하는 조각체들은 ‘장이 응축한 상’이지만, 그 덩치를 비워낸 판재 형식으로 납작하게 드러누운 조각체는 ‘상이 분산한 장’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그의 조각에 있어 상은 부수적인 것이며 장이 보다 주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외견상 상이 주가 되는 듯한 그의 또 다른 작업들에서도 장의 주요성은 보다 더 부각된다. 빈 광목천을 씌운 캔버스에 무쇠의 철판을 프레임으로 둘러싼 단순한 형식의 작품 〈場 99-2〉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의 회화작품을 연상케 하지만 이 작품의 본질은 장에 대한 탐구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소금물을 물뿌리개로 뿌려 철판을 지속적으로 부식시켜 녹(綠)을 만들어낸다. 그것이 중력에 따라 빈 캔버스에 번져가는 가히 ‘녹회화(綠繪畫)’라 지칭할 만한 이 작품은 외견상 ‘상’에 대한 관심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이란 결국 ‘장’이었음을 피력한다. 녹(상)이 광목천에 번져가는 회화적 이미지(상)은 결국 ‘빈 캔버스와 무쇠의 프레임’(장)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상갑, 場 00-3, Steel, Canvas, 400x100x5cm 2000

이상갑, 場 99-2, Steel, Canvas, 200x200x5cm 1999
흥미로운 것은 철의 부식을 탐구함으로써 그것의 공간(space)과 장(field)을 탐구하는 그의 작업이 식물성의 사유를 흠뻑 담고 있다는 것이다. 식물의 부식(腐植)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원천인 것처럼, 그에게 철의 부식(腐蝕)이란 ‘소멸이 이끄는 생성’이라는 조각의 존재론적 물음에 다름 아닌 것이다. 즉 그것은 아래의 작가노트에서처럼 조각이 근거하는 ‘장’(場, field)-‘작용과 반작용’ 사이의 대화를 이끌어가는-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에 다름 아닌 것이다.
“나의 작업은 새로운 표현을 위한 발명의 이슈가 아니라 강세성(强勢性)이 없는 오브제의 피동성과 유연성에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표현하느냐?’가 아니라 ‘우리 각자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이다.” ●
작가 이상갑은 서울대학교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교육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로 일했다. 현재 명예교수. 1980년 제29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대상, 2006년 제20회 김세중 조각상을 수상했다.
출전 /
김성호, “장(場)과 상(像) 사이 -조각의 존재론에 대한 물음”, (이상갑 작가론), 『미술과 비평』, 2012. Summer no. 28, pp.38-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