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일반〕


힐링의 미래

 

 

 

 

 

 

김성호(미술평론가)

 




힐링의 미래를 말하라고요? 제가 점쟁이나 미래학자가 아닐지라도 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겁니다. 이 용어가 비교적 최근에 대세가 된 만큼, 언젠가는 쇠락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니까 말입니다. 어쩌면 다른 말로 대체되어 그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겠네요. 개념이나 용어란 언제나 역동하는 사회를 반영하면서 생성, 소멸을 거듭한다는 점에서, 힐링의 미래는 충분히 점쳐집니다.



오혜선, 상처 입은 마음, 혼합재료, 2009

 



 

힐링의 현재적 초상_트렌드 혹은 문화상품

아시다시피, 테라피(therapy)라는 용어가 주로 몸과 정신의 치료에 집중하는 의학적 용어로 출발해서 여전히 그 범주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면, 힐링(healing)이란 용어는 최근 정신이나 마음의 치유를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면서 변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힐링의 동사 힐(heal)이 “갈등, 감정 등의 골을 메우다”라는 뜻도 지닌 만큼, 힐링은 나라는 주체와 당신(들), 그(그녀)들이라는 타자의 담론과 맞물리면서, 사회 속 커뮤니케이션 회복을 도모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힐링은 분명코 오늘날 시대를 반영하는 사회문화적 용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서적 치유(emotional healing), 신앙 요법(faith healing), 정신 요법(mind-healing), '자연 치유'(eco-healing), 미술치료(art-therapy, art-healing), 음악치료(music-healing)와 같은 오래된 용어 외에도 최근에는 힐링 푸드, 힐링 레시피, 힐링 무비, 힐링 뮤직, 힐링 트래킹, 힐링 센터 등 힐링을 붙인 신조어들이 종교, 스포츠, 레크리에이션에 이르는 전방위적인 일상과 더불어 방송, 광고, 출판, 대중문화, 예술 등 모든 미디어와 문화의 영역에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습니다. 아! 분명 힐링은 이 시대의 트렌드(trend)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트렌드란 언제나 열풍이 시들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사라지고 마는 신기루입니다. 추세, 경향, 유행이라 번역되는 트렌드의 생성, 소멸은 역사가 보여주듯 명징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수년간 대세였던 노래방, 피시방, 한류, 멘토링, 웰빙 열풍은 이제 힐링 열풍에 서서히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최근 테크놀로지의 변화만큼이나 속도가 빠른 것은 아닐지라도 변덕스러운 우리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 조만간 다른 모습으로 변화해갈 게 분명합니다. 일테면 주판, 삐삐, 아날로그 필름, 플로피 디스켓이 소멸했거나 자취를 감춰가는 이 시대에 미래학자들이 디지털 융합의 시대를 선언하면서 앞으로 공중전화기, 팩스, 자동차, 현금인출기, 종이책의 소멸을 예언하고 있듯이, 힐링 콘텐츠 역시 분명 사라지거나 그 모습을 변화시킬 게 분명합니다.

 

생각해볼까요? 대세가 된 오늘날 힐링 콘텐츠는 서구 기독교 구약 전승에서 살펴볼 수 있는 ‘도피성(미클라트라, cities of refuge)’은 물론, 동양의 ‘하안거(夏安居)’나 ‘동안거(冬安居)’와 같은 불교철학적 전통에서 살펴볼 수 있는 유형들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또는 우리 전통에서 자연과 벗하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하던 ‘선비 정신’이나 1960년대 미국의 ‘히피(hippie) 문화’도 오늘날 힐링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힐링의 원형들에서 찾아지는 공유점들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속세 혹은 현실계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며, 또 하나는 ‘자기 성찰’을 목적으로 유무형의 새로운 공간에 거주를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구약 전승의 ‘도피성’이 실수로 저지른 범죄행위로 인해 현실로부터 도주해서 자신을 반성하고 성찰하기 위해 거주하는 공간이며, 불교 전통의 하안거, 동안거가 승려들이 외부와의 출입을 끊은 공간에 거하며 도에 이르기 위한 참선수행을 하는 일이듯이, 힐링이란 현실계로부터 새로운 공간으로 탈주하면서 일련의 ‘자기 성찰’을 꾀하는 행동입니다.

 

한국 조선시대의 ‘선비 정신’은요? 이것은 의리, 명분, 지조를 중요시하는 등 시류에 영합하지 않음으로써 속세를 심정적으로 멀리 하거나 청빈(淸貧)과 풍류를 미덕으로 내세우면서 실제로 속세를 탈주하는 삶을 실천해온 한국 전통의 사기(士氣) 정신이죠. 선비 정신은 신라 시대의 현묘지도(玄妙之道), 풍류도(風流道)를 계승하면서 자연과 벗하며 음풍농월(吟風弄月)하는 임시적 현실도피의 의미를 보다 더 뚜렷하게 각인하게 되었는데요. 흥미롭게도 이러한 선비 정신은 1960년대 중후반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한 히피문화의 현실도피주의와 공유하는 부분이 제법 많습니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적 현실로부터 탈주하면서 반체제, 반전 운동, 친차연주의를 천명한 히피운동의 궁극적 핵심은 ‘변질된 인간성 회복을 통한 자기 행복의 실현’이었으니까요.

 

오늘날 힐링과 관계하는 문화적 원형이 도피성, 하안거, 동안거, 선비정신, 히피문화 밖에 없을까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의 문화유형이 힐링의 또 다른 원형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오늘날 대세가 된 힐링이 앞서의 여러 문화유형과 관계하는 이 시대의 트렌드일 뿐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언젠가는 힐링이란 용어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미래에는 또 다른 개념어로 변형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논의의 관건은 오늘날 힐링 콘텐츠는 단순한 트렌드의 차원을 넘어서 가히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문화상품’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풀어 말하면, 오늘날의 힐링 콘텐츠는 경쟁사회로부터 낙오된 우리에게 더 이상 도전의 삶 자체를 포기하라는 언명이자, 낙오의 상처를 치유하자는 협잡의 청유형 메시지이며, 그것을 시장 속에 집어넣어 약육강식의 지배질서를 공고히 하려는 자본주의가 낳은 문화상품이라는 것입니다.

 

 

 

 

 

위로하는 힐링 vs 기만하는 힐링 문화

아! 오늘날 힐링 콘텐츠를 ‘현대 자본주의 문화상품’으로 단정하고 풀이한 앞의 해설이 좀 지나친 감이 있나요? 힐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치유와 소통의 역할을 합니다. 다만 힐링과 관계해서 생산되는 오늘날의 콘텐츠들이 그렇다는 거지요.

 

우리 주위를 한 번 둘러볼까요? 힐링 콘텐츠는 먼저 오늘날의 사회를 ‘병든 사회’ 혹은 『피로사회』(한병철) 또는 소위 ‘멘붕(멘탈 붕괴)의 시대’로 규정합니다. 엄청난 속도로 전개되는 현대를 따라잡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자본주의 지배질서는 낙오자라고 먼저 인정하라고 종용합니다. 그러면 그 낙오로부터 오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왜 경쟁의 대열에서 그렇게 힘을 쓰면서 스스로 낙오의 상처를 떠안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면서 말입니다. 그 경쟁으로부터 잠시 떨어져 나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을 발견하라고 꾸짖습니다. 상처받은 자신을 먼저 치유하라고 충고합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분명코, 오늘날 힐링의 원형인 도피성, 하안거, 동안거, 선비 정신과 같은 ‘현실 탈주와 치유의 거주 공간 찾기’를 제안하는 이 시대의 훌륭한 교훈입니다. 현대를 살면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상처 받고, 스트레스 받은 존재임을 겸허히 인정하고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스스로를 치유하는 일은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주체적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다만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정신적 결핍을 메우는 것을 도와주는 이러한 힐링 콘텐츠들을, 현대 자본주의가 조악한 문화상품으로 거듭 재생산해내면서 지배질서를 공고히 하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는 것을 상기할 입니다. 자본주의의 문화상품은,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에서 20대 청춘의 아픔을 달래주는 훌륭한 멘토의 힐링 자체를, 희화화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훌륭한 멘토들의 힐링 메시지는 패키지화되고 변질되어 문화상품으로 둔갑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힐링이란 문화 트렌드는 기만적”이라고 선언하는 한 주간지의 비판적 에세이「힐링 없는 힐링문화」(이동연)는 곱씹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저자의 말대로 “힐링 문화는 힐링이 필요해진 원인을 제거하길 원치 않기” 때문이며 “힐링 문화가 지속되려면 그 원인이 제거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치유와 위로의 힐링’을 실천하는 오늘날의 힐링 콘텐츠는 잔인하게도 이 시대에 상처받고 있는 사람들을 더욱 더 필요로 합니다. 상품의 수요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죠.

 

이 지점에서 힐링의 미래가 보다 선명하게 점쳐질 수 있습니다.

 

 

 

 

 

힐링의 미래와 남겨진 과제

그렇다면 요청되어야 할 힐링의 미래란 무엇일까요?

 

첫 번째 관건은 ‘위로의 힐링’이 그저 ‘소비의 힐링’이 되어버리는 트렌드를 극복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보세요! 힐링이라는 화두를 전면에 내세워 사회 저명인사들과 연예인들의 실패담/성공담을 교차시켜 대중의 감정이입을 자극하는 SBS의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방송은 그 공을 인정한다고 해도 철저히 시장에 내놓은 엔터테인트먼트 상품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시장과 결탁한 관광, 대중문화들이 생산하는 무수한 문화상품은 말할 것도 없고, 힐링 멘토를 자청하는 대중 지식인들의 문화상품들도 다를 바 없습니다. 여기서 주요한 것은 ‘위로의 힐링’을 실천하는 문화상품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소비의 힐링 콘텐츠’에 대한 비판 즉 ‘현대 자본주의가 전략적으로 시장과 결탁시키는 문화상품’에 대한 변별적 비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공공성, 소수주의를 끌어안는 문화예술 콘텐츠 역시 문화상품이지만 엄밀히 말해 시장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장주의와 반시장주의에 관한 변별적 비판은 꼭 필요해보입니다.

 

두 번째로, 미래적 힐링 콘텐츠는 내면의 치유를 강조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결핍을 메우는 안정망 정책과 제도로 정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회의 구성원 개별자들에게, “그래, 지금 힘들지만, 조금만 참아보자고요. 햇빛 찬란하게 비출 날이 있을 거예요.”라는 식으로 다독이는 ‘내면의 치유와 위로’는 분명코 필요합니다. 다만 그것의 효과는 일시적으로 나타날 뿐이며, 외려 약물 요법처럼 강박적이고 상습적인 요청을 거듭하는 위험을 고려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최근 연예계에서 우유주사로 불리는 프로포폴(Propofol)이라는 약물의 상습적 처방으로 야기한 사회적 논란은 이러한 위로와 치유라는 힐링의 기대치가 비정상적으로 나타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편 힐링이 ‘내면의 위로’에 집중하면서 정작 개선해야 할 관련 제도와 정책에 대해서는 함구함으로써 의도하지 않게 사회의 악순환을 거듭하게 만드는 주범이 되기도 합니다. 힐링과 관련한 정책이 논의되고 개선된다면 힐링이 당면한 절박한 과제들은 일상의 평범한 수준으로 용해되어 그 속에 자연스럽게 침투될 수 있을 겁니다. 문화라는 것이 결핍으로 인해 요청되는 것이기보다는 ‘필수 불가결’의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 속에서 향유되는 것처럼, 힐링 역시 사회적 제도와 장치를 통해 필연코 자연스러운 일상으로 흡수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미래의 힐링은 매니저 혹은 멘토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즉 특정한 멘토에 의탁하는 콘텐츠로부터 탈피해서 힐링 주체가 스스로 멘토의 역할을 감당하는 힐링이 필요합니다. 이제 미래의 힐링은 ‘자가 치유(self-healing)’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시대가 요청됩니다. ‘셀프 힐링’이라는 용어는, 상처가 자기 스스로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자기 회복 작용’을 지칭하기도 하는 만큼, 특별한 매개자(매니저, 멘토)나 매개체(멘토링) 없이 위로, 치유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우리가 앞서 힐링의 원형으로 살펴본 도피성이나 하안거, 동안거 역시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고 위로하는 ‘셀프-힐링’과 관계한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절대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이러한 원형을 상기할 때, 미래적 힐링에서 매니저, 멘토에 의탁하는 힐링은 점차 지양되어야만 한다는 필요성이 보다 더 분명해집니다. 힐링에 관한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매니저, 멘토들이 힐링의 권력적 매개자로서 더 이상 기능하지 않고 충실한 조력자의 입장으로 정착하는 사회가 바로 힐링의 미래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예술의 장에 있어서 감상자로부터 창작자로 자리 이동하는 변화의 기쁨과 같습니다. 즉 전문가가 아닌 우리 모두가 전문가의 자리에 있는 예술가의 입장을 경험하게 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만끽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셀프 힐링을 일상화하는 미래인 것이지요. 자, 여러분! 어떻습니까? 힐링이 예술이 되는 경지가 불가능하지는 않겠지요? ●

 

 

글쓴이 김성호는 파리1대학에서 미학예술학 박사를 취득하고 홍익대 대학원 등 여러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날마다 보따리를 싸고 있다.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학생들로부터 오늘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지혜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본업은 미술평론가이고 게으른 전시기획자로도 활동 중이다.

 

 

 

출전 /

김성호, '힐링의 미래', 특집3 문화예술로 힐링하다. 『인인화락』, 수원문화재단, 2013. 봄호, pp.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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