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부터 차근차근
글/ 정준모(고양문화재단 전시감독, 문화정책)
철없는(?) 좌파들의 좌충우돌에 진저리를 쳤던 국민들이 새로운 희망과 경제 살리기라는 대의명분으로 MB를 선택했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20여일을 넘기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분노로 정권은 내 놓았지만 아직도 발목잡고 이죽거리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야 당 때문에 아직도 내각의 조각을 마치지 않은 어정쩡한 상황이지만 새로운 정책과 실용주의 적 대안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정부에 거는 기대치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연일 새로운 뉴스가 전해지는 가운데 문화와 관련된 정책은 찾아 볼 수 없다. 물론 우선순위에서 당장 먹고사는 민생문제가 우선되다 보니 후 순위로 밀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란 이렇게 뒤로 밀려서는 안 될 또 다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정부는 지난 정권 개코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사람 솎아내기와 자기사람 심기를 통해 장악한 문화 권력과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생각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정책과 시스템에 대한 진단과 평가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다. 발 빠르게 점검하고 MB정부의 가치관과 문화예술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문화에 대한 언급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나왔던 안인지는 모르지만 인수위 시절 언급되었던 문화관련 정책들이 너무나 표피적이고 즉흥적이었다는 지적은 아프지만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박물관을 문화재청 산하기관으로 두겠다는 안은 문화계의 뜨거운 지적을 받아야 했다. 물론 노무현 정권 시절이라면 ‘그놈의 콤플렉스’ 때문에 절대 밀리면 진다는 오기가 발동해서 되려 더 강화되었을 터이지만 그런 지적을 겸허하게 받아들인 MB정정부의 포용력은 문화적인 조치로 제대로 돌아 갈 것 같은 예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여전히 인수위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국립박물관 및 미술관 입장료 무료화” 방안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민일반에게 문화 복지를 제공한다는 선진한국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방안이 얼마나 많은 연구와 검토 끝에 나온 것인지 이런 안을 어떤 목적과 정책적 판단으로 나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다.
이런 안이 나오기 전에 한국의 박물관, 미술관의 현황부터 챙겨보아야 했다. 사실은 신자유주의라는 진보를 자임하는 사람들이 문화에 어울리지 않는 외투를 입힌 사람들은 다름 아닌 DJ정부와 참여를 허용 받은 사람들만의 ‘참여정부’였다. 그들은 효율성과 경영마인드 도입을 통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문화예술기관들을 책임운영기관이라는 족쇄를 채워 효율성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따라서 국립극장은 한국의 공연예술을 상징하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돈 되는 공연 또는 대관공연에 내몰려야 했다. 또 기업예산회계를 적용하는 국립극장의 감가상각비를 결산에 반영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책임운영기관의 성과는 대단한 것으로 포장되었지만 사실은 분식회계를 한 셈이었다. 또 책임운영기관은 수입의 극대화를 위해 주차장을 확충하고 주차비 징수에 열을 올려야 했다. 산하 공연단체나 교향악단은 예술의 전당으로 어디로 뿔뿔이 흩어져야 했다. 전문공연단체하난 제대로 갖추지 못한 국립극장이란 바퀴 없는 자동차에 다름 아니다.
이들은 대통령의 “스필버그의 주라기 공원 한편이 벌어들이는 돈이 현대차 1년 동안 팔아 얻는 이익과 맞먹는다.”는 문화산업이라는 말 한마디에 돈 벌이에 내 몰려야 했다. 아닌 돈을 버는 흉내를 내야 했다.
국립극장이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되고 나서 극장장으로 취임한 코드 맞는 인사는 목표를 초과달성해서 대통령 다음으로 연봉이 많은 공무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산하공연단체들을 내 몰고 이룩한 성과였다. 게다가 많은 공연 전문 인력들이 계약직으로 내몰렸고 이들의 비정규직화는 경비절감을 통한 극장장의 성과로 이어져 최고연봉수령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이렇게 효율이란 이름으로 국립극장은 책임운영기관으로 내 몰렸고 효율성 측면에서 별로 나아진 것 없었던 무늬만 개혁이었다. 따라서 문화예술기관의 책임운영기관지정은 물 건너 간 것처럼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3년이 지나서 개혁이란 이름으로 다시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했다. 그것도 행정형 책임운영기관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문화예술진흥원의 문화예술위회로의 전환도 다시금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MB정부가 진정으로 문화발전을 위한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면 이렇게 원칙 없이 편의적으로 자기 사람 챙기기 차원에서 왜곡되고 오도된 일들부터 바로 잡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박물관 미술관의 입장료 무료라는 선심성 정책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수술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가장 문화예술계는 정치라는 이름아래 줄서기를 강요당했고 이로 인해 분열되었다. 이런 상처의 봉합과 치유가 문화정책에서 최우선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개혁을 빙자한 문화예술기관의 성격과 미션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일이었다.
한국의 박물관 미술관은 매우 초보적인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지방의 공립미술관들은 지방자치단체간의 경쟁적 설립으로 인해 외관은 갖추었지만 내용은 일반 화랑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설립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BTL방식으로 미술관을 설립하는 지자체까지 생겨나고 있다.
미술관 박물관이란 사유재산이기도 하지만 공공재의 성격도 아울러 갖는 문화를 다루고 연구하는 기관이다. 미술품은 단순하게 완상용이나 아름다운 창작물이기 전에 우리의 역사와 전통을 증거 하는 동시에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이런 문화적 성격은 논외로 한 채 오직 보여주는 일에만 매달린 다는 것은 미술관 박물관의 설립자체를 부정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현재 국립미술관의 경우 대한민국에 오직 1개소에 불과하다. 그나마 덕수궁에 분관을 포함한다 하더라도 2개소에 불과하다. 지역민들이 국립미술관에 한번 간다는 것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따라서 미술관 박물관의 무료입장이전에 문화 인프라의 확충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지방에도 좋은 프로그램을 공급할 수 있는 국립미술관들이 우선 설립되고 그 후에 추진되었어할 정책이 아닐까.
여기에 또 하나 간과한 것은 우리 미술관 박물관중 대부분은 사립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열악한 지원과 환경 속에서도 평생을 바쳐 수집한 유물들을 조사하고 연구해서 국민들에게 문화 허기증을 달래주어 왔다. 그런데 국립 박물관 미술관을 무료로 공개한다면 입장료 수입이 거의 유일한 수입원인 이들 사립박물관 미술관의 운영은 매우 곤란해 질 것이 자명한 일. 이런 여러 가지 상황을 살피고 고려해서 시행되어야 할 정책이 이렇듯 쉽게 논의된다는 것은 참여정부의 포퓰리즘과 무엇이 다를까.
미술관 박물관 숫자를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폴란드 551개, 프랑스 1300개, 캐나다 1352개, 일본 3492개, 독일 4034개, 미국 4609개 등이다. 여기에 비하면 국내의 박물관 수는 353개다. 이는 박물관 288개와 미술관 65개를 합한 숫자(2003년 기준)여서 외국의 경우 미술관을 제외하고 순수 박물관 수만을 따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또 박물관 한 곳 당 인구수는 폴란드가 7만 명, 미국 5.9만 명, 프랑스 4.5만 명, 일본 3.7만 명, 독일 2만 명 수준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들 나라에 비해 2배에서 8배까지 많은 16.6만 명이다. 그러나 미술관의 경우 질과 규모는 따지지 않고 숫자만 가지고 비교해도 미술관 1관 당 73만 명을 고객으로 해야 하는 부끄러운 실정으로 미술관의 증설과 확장은 필수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지방분권정책 때문에 미루어져 온 사간동 국군기무사령부지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건립과 덕수궁 석조전을 포함한 국립근대미술관 설립 그리고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국립미술관의 지방분관건립 등은 입장료 무료라는 선심성 정책에 앞서 시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정부수립 60주년을 맞는 올해 이런 문화의 큰 그릇들이 지어져서 후대에 길이 남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이제 근본을 따져 바로잡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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