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도 못하는 것이 날겠다고?

글/ 정준모(문화정책, 미술행정)

서울시를 필두로 지방자치단체들까지 ‘고품격 문화도시 창조’를 명제로 동분서주 공사 중 이다. 그런데 그들이 목표로 하는 고품격 문화도시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 공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디자인 공사이다. DJ 정부출범과 함께 ‘문화산업’론이 득세하면서 모든 문화예술이 ‘돈, 돈, 돈,’하게 만들더니 MB정부가 ‘공공 디자인이 국가 경쟁력이다.’ 라고하면서 ‘디자인 코리아’를 외치자 말자 대한민국이 다자인 바람에 뒤 덮이고 있다. 2~3년 전부터 추진해오던 간판교체사업은 힘을 얻어 추진되고 지방 도시들도 ‘친구 따라 장에 가듯’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 ‘아름다운 거리 만들기’, ‘예쁜 간판 만들기’ 등등 가시적이고 미시적인 정책들이 별 고민 없이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추진되는 미시적인 디자인 행위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각각의 디자인 행위들이 완성되어 종합적으로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될까. 한데 최근 도시 환경디자인들을 살펴보면 가장 중요한 요소 즉 어떤 도시를 만들기 위해 이런 디자인들이 필요하다는 총론은 없는 채 각론만 있다는 것이다. 도시 환경디자인과 시설물들은 미술관 진열장에 놓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시민들과 서로 호흡하고 사이좋게 공존하는 동시에 편안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디자인을 이해하거나 소화해낼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소화할 수 없는 디자인, 이해하지 못해 편안하지 않은 디자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디자인이라 할 수 없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전문가와 협업해서(?) 시민들에게 디자인을 제공한다고 해서 반가워 할 사람은 거의 없다. 학창시절 미술수업은 감상하는 교육, 보는 교육보다는 지겹게 그리는 교육이 주를 이루었고 디자인을 경험하고 심미안을 기를 기회가 없었다. 또 주변에 변변하게 찾을 미술관은 거의 전무하고 화랑도 없는 동네에서 자란 탓에 요즘의 디자인이란 것들이 외형은 매끄럽고 신기하지만 선뜻 다가가기에는 웬일인지 거리감을 주는 불편한 디자인이기 때문이다. 이는 노 정권이 추진했다 실패한 ‘공공미술’ 정책과 다르지 않다.

디자인을 통한 ‘고품격 문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초부터 튼튼해야 한다. 좋은 디자인을 이해하고 편안하게 쓸 수 있도록 미술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심미안을 길러 주어야 한다. 이렇게 기초를 갖추지 못한 채 디자인 도시를 만든다는 것은 껍데기 도시, 아니 영화세트장에 다름 아닐 것이다. 시각문화의 기초 인프라인 미술관도 변변하게 없는 서울에서 디자인을 논한다는 것은 ‘우물가에 가서 숭늉 찾는 것’과 같다. OECD 가입국가로, 세계 경제의 중심국가로 나아가겠다는 대한민국에 국립근대미술관이 없어 우리 전통과 현대의 가교였던 시기의 시각문화연구를 통한 문화와 역사 연구조차도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디자인을 통해 도시를 개조 하겠다는 것은 무모 한 일이다.

게다가 4천5백만 인구를 가진 대한민국에 근대기를 훌쩍 뛰어넘어 국립 현대미술관이 과천 산골짜기 동물원 우리 뒤편에 하나 있을 뿐이다. 이런 열악한 문화 인프라를 개선하지 않은 채 외치는 ‘디자인 코리아’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며 고객 즉 니드가 없는 가운데 일방적으로 공급되는 배급품일 뿐이다. 설혹 초기 조그만 성과는 있을지언정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디자인 서울의 컨셉이 ‘격을 갖춘 부드러움과 강한 역동성’이라고 하지만 이는 공급자들이 만들어낸 구호일 뿐이다. 아름다운 것, 부드러운 것을 준다한 들 받는 사람이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일 터이다.
문화란 인스턴트 라면이 아니다. 가마솥에 오랫동안 푹 고아 만든 고깃국처럼 은은하게 우러나는 깊은 맛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선 가마솥부터 장만해야 할 것이다.

유행처럼 디자인에 매달릴 일이 아니라 근본부터 하나라도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수도 서울의 유일한 시립미술관은 자체적으로 대형전시를 기획할 인력과 예산 부족으로 민간흥행업자들에게 전시장을 내어주어야 하는 무늬만 시립인 미술관 운영부터 개선하고 ‘디자인 코리아’를 위해서는 시민들과 미술인들이 10년 넘도록 추진해온 국군기무사 부지에 국립미술관 설립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시민과 미술인들이 힘을 합해 그 위세 높던 국군기무부대를 지방으로 이전시키고 국립미술관을 설립하려던 꿈은 참여정부가 추진한 ‘지방분권화 정책에 배치된다.’는 노대통령의 노한 한마디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노 정권에서 분에 넘친 자리를 누렸던 관련인사들은 주군의 뜻에 따라 함구로 일관하면서 코드를 맞추었다. 그들의 무능과 눈치 보기 때문에 무산된 국립미술관 서울관 건립은 ‘디자인 서울’의 기본이다. 이제라도 힘을 모아 그들의 몽니와 문화적 천박성으로 인해 상처받은 문화적 욕구, 시각문화에 대한 열망을 되살리고 문화적 자긍심을 북 돋우는 국립미술관 서울관 건립이야 말로 ‘디자인 코리아’로 건너가기 위한 튼튼한 다리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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