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서문〕
공공장소에서의 사적 예술행위가 지니는 의미
-이명호의 ‘숭례문아트프로젝트’
김성호(미술평론가, 미학예술학박사)
사진작가 이명호는 ' 숭례문아트프로젝트'(2013. 8. 18. am. 02:00~am. 09:00, 숭례문) 에서, ‘ 주어진 시간 동안’ 크레인 4 대를 통해 45×18m 짜리 초대형 광목천을 들어 올리고 이것을 배경으로 삼아 숭례문을 카메라로 촬영한다. 그것은 외견상 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런데 정작 그 끝은 확정되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 안에 작가가 기획하는 일련의 예술퍼포먼스는 끝나지만 그것의 다양한 결과물들이 예술현장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여러 의미론으로 재생산되면서 끊임없이 회자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간의 담론들은 호응, 환호만이 결코 아닐 것이다. 다음과 같은 비판과 비딱한 시선 역시 없지 않을 것이다. ‘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될 이미지’ 를 그는 왜 막대한 물량과 노동력이 동원되는 번거로운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사진에 담으려는 것일까? 그는 바보인가? 아니면 막무가내로 허세와 치기를 부리는 가짜 예술가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논쟁거리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려는 이미지 정치꾼인가?
우리는 이러한 비판적 문제 제기를 그저 ‘ 예술에 무지한 이들의 소리’ 라고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민주화된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원동력인 다양한 목소리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의 사진행위 프로젝트에는 그간의 사진사를 새로 쓰게 만들었다는 찬사와 호평뿐 아니라, 이벤트적 이슈를 도모함으로써 예술성과 상품성의 균형을 이루려는 시도로 비판받아온 측면 또한 없지 않다. 그러나 그간 그의 공공장소에서의 아트프로젝트를 상기한다면 이러한 비판적 측면을 재성찰함으로써 그의 작품세계가 대면하는 보다 긍정적인 사회적 메시지의 차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사진가의 단순한 ‘ 예술적 개념’ 으로부터 출발하고, 어렵고도 고된 ‘ 예술적 행위’ 로 진행되어 온 이번 프로젝트가 오늘날 예술현장에서 가지는 미학적 의미와 더불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궁극적이고도 희망적인 메시지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명호, 〈숭례문아트프로젝트〉, 에스키스, 2013
예술행위로 ‘탈맥락화 / 재맥락화’되는 숭례문
주지하듯이 국보 1 호 숭례문은 2008 년 2 월 10 일, 한 시민의 방화로 인해 전소되었으나 5 년 3 개월간의 각고의 노력 끝에 복원, 복구되었고 2013 년 5 월 4 일 ‘ 복구 기념식’ 을 가진 바 있다. 사진가 이명호에게 있어, 한국민의 자존심과 전통문화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숭례문의 복구를 예술가의 입장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일단이 이번 숭례문아트프로젝트를 낳았다고 할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그동안 이명호가 2000 년대부터 수년 동안 진행해온 ‘ 사진행위프로젝트(Photography-Act Project)’ 의 연장선상에서 풀이된다. 그것은 ‘ 나무(Tree series), 바다(Sea series)’ 와 같은 제명의 일련의 시리즈물들로 우리에게 선보인 바 있다.


View of Work ; Tree... #3_12

Tree... #3
이전의 작업과 동일하게 이번 프로젝트는 스튜디오가 아닌 현실계의 장으로 뛰쳐나간다 . 다만 자연의 품이 아니라 인공의 문화유산의 장으로 뛰어든 것이다 . 그는 찍고자 하는 ‘ 복구된 숭례문 ’( 사진의 피사체 , 예술의 대상체 ) 뒤로 커다란 가림막을 설치하는 일련의 행위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된다 . 물론 그것을 위한 오랜 실천의 노력과 과정 역시 있었지만 , 가림막 설치는 이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시작점이다 . 그의 작업에서 가림막이라는 ‘ 비어있음의 공간 ’ 과 그것을 통한 기존 장소에 대한 ‘ 새로운 개입행위 ’ 는 기존의 사진예술이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던 재현 (representation) 의 딜레마를 일순간에 전복시키는 상징적 행위가 된다 . 그것은 현대의 사진이 피사체를 변조시키는 포토몽타주 등의 연출사진 (making photo), 혹은 회화적 질료와 제스처를 납작한 사진에 접목시키면서 찾아나가던 다양한 탈재현 (anti-representation) 의 노력들로부터 관점을 새로이 전환시킨 혁명이기초자 하다 . 그것은 ‘ 찍다 / 찍히다 ’ 라는 사진 매체가 지닌 고유의 문법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환영 (illusion) 의 함정으로부터 탈피하는 ‘ 이미지의 개념 ’ 을 창출하는 현시 (presentation)이기 때문이다 .
현실계의 숭례문( 대상체) 과 카메라( 예술도구, 예술언어) 사이에 개입하는 가림막 설치 행위는 찍는다는 행위와 찍힌다는 현상은 변함은 없으되, ‘ 사진의 환영’ 이란 언어에 ‘ 피사체’ 에 대한 ‘ 탈맥락화(decontextualization) 와 재맥락화(recontextualization)’ 를 얹어냄으로써 사진예술의 존재론적 의미를 변화시킨다. 마치 시인 김수영이 ‘ 꽃이라 이름 부름으로 인해서 꽃의 존재론적 의미가 살아나는 것’ 을 찬미하고 있듯이 말이다. 이러한 전환적 인식은 마치 그의 작업을 흰 광목천( 작가로부터 캔버스로 명명되는) 에 회화로 그려진 것처럼 인식하게 만들면서 사진( 피사체) 과 회화( 대상체) 의 언어를 맞물리게 한다. 그럼으로써 그의 작업은 ‘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 의 무엇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는 역사의 문화유산을 재맥락화하는 작업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 숭례문 뒤에 크레인으로 거대한 가림막을 스크린처럼 펼쳐내는 촬영 전 행위 자체는 숭례문을 역사적 질곡을 거쳐 최근 ‘ 복구된 문화유산’ 이라는 숭례문이 처한 오늘날 ‘ 현실계’ 로부터 탈맥락화시켜‘ 이미지’ 로 상징화시킬 뿐만 아니라 ‘ 숭례문의 본질인 한민족의 역사적 원형과 상징’ 을 직시하게 만들면서 재맥락화를 감행한다. 그것은 작가의 말대로 숭례문을 “ 하얀 캔버스로 떠내어 환경으로부터 분리하고 남대문 그 자체를 다시 보게” 하는 작업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거대한 캔버스는 피사체 뒤에 존재하면서 역설적으로 피사체와 카메라 사이에 존재하는 인터페이스(interface) 의 역할을 도모한다. 그것은 ‘ 현실계의 대상체( 숭례문)’ 와 예술도구인 ‘ 카메라’ 사이에서, 또한 ‘ 역사적 유산의 현실계’ 와 그 ‘ 원형과 상징’ 사이에서 ‘ 탈맥락화 / 재맥락화’ 를 실행하는 매개자이자 예술의 전령(傳令) 이 된다. 그럼으로써 사진을 ‘ 일련의 메시지’ 의 매체(media) 로 한정시키지 않고 주체(subject) 로 나설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그의 상호텍스트성에 기반을 둔 사진미학이 지니는 주요한 미덕이다.

이명호, 〈 숭례문아트프로젝트〉, 시뮬레이션 이미지 캡쳐1, 2013

이명호 , 〈숭례문아트프로젝트〉 , 시뮬레이션 이미지 캡쳐 2, 2013
사적 예술행위와 공공성
그의 사진행위프로젝트의 의미는 ‘ 사진작품’ 으로 된 최종적인 결과물(photo works) 에만 해당되지 않고 일련의 모든 창작 행위의 ‘ 과정’(process) 에 수렴된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 업을 ‘ 사진행위에 관한 일련의 해체적 담론’ 으로 규정하듯 이, 그는 사진의 결과물에 대한 관심보다는 결과물에 이르는 동안의 일련의 퍼포먼스, 무수한 협의의 행위들과 그것의 다양한 과정들에 주목한다.
특히 그의 프로젝트에서 행위 혹은 과정의 의미는 이명호 개인의 예술적 작업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작업에 참여하는 수십 명의 스텝과 협업자들의 공동 노동이 투여되면서 배가된다. ‘ 콜라보레이션이 아닌 콜라보레이션’ 이 되는 셈인데,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수십 명의 스텝이나 수천 명의 자원자를 참여시켜, 집단초상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비크로프트(Vanessa Beecroft) 나 튜닉(Spencer Tunick) 의 작업들과 일정부분 닮아있다. 차이점이라면, 상기의 작가들이 그들의 노동을 대상화시켜 작업의 소재로 삼은 것과 달리, 이명호는 ‘ 가시적 은폐(visible concealment)’ 라는 역설의 방법으로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왔다는 점이다. 그것은 일정부분 공공기관의 후원과 협업, 수많은 스텝들의 노동으로 실현시켜온 크리스토와 클로드(Christo & Jeanne-Claude) 의 작업들과 맥을 같이 하지만, 그들의 작업들과도 다른 점은 명백하다. 그들이 협업자들을 작품 뒤로 완전히 가렸다면, 이명호는 그들을 반투명한 가림막 뒤의 그림자로 종종 드러내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젝트의 참여자로 드러내려고 부단히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명호 , 〈숭례문아트프로젝트〉 , 시뮬레이션 이미지 캡쳐 4, 2013
원래 이번 프로젝트는 1396 년 창건되었던 숭례문이 올해로 616 년째 된 역사적 사실을 은유하는 ‘ 남녀노소 국민으로 구성된 616 인의 협업자들의 인터뷰’ 와 그들의 인터뷰 장면을‘ 무수히 찍어 겹치게 만든 사진 이미지’( 종국에는 하얗게 사라져버린 사진 이미지) 를 계획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 군집의 희미하고 투명한 인물사진들’ 을 숭례문 뒤에 세 울 가림막으로 쓸 계획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계획이 진행상의 여러 문제로 임시 중단되고, 숭례문만 피사체로 삼는 프로젝트로 변경, 진행된 것이다. 원래 계획된 이 프로젝트에서조차 무수한 협업자들은 ‘ 가시적 은폐’ 의 개념으로 드러난다. 흐릿하게 실루엣으로 혹은 희미하게 중첩의 이미지로 드러나는 이러한 협업자들의 존재( 가림막 위에 비어있지만 동시에 충만한) 는 그의 숭례문을 “ 온 국민의 힘으로 다시 세우고 그리는” 작업이 되게 하기에 족하다. 물론 작가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협업자들( 국민) 에 대한 프로젝트를 폐기하지 않고, 앞으로 다른 유형으로 지속할 계획이다. 또 다른 인터뷰의 형식으로, 또 다른 다양한 참여의 형식들로 말이다.

이명호 , 〈숭례문아트프로젝트〉 , 시뮬레이션 이미지 캡쳐 6, 2013

이명호 , 〈숭례문아트프로젝트〉 , 시뮬레이션 이미지 캡쳐 5, 2013
그의 숭례문아트프로젝트에서 사적 예술행위가 공공성을 확보하는 지점이 바로 이러한 지점이다 . 그동안 그가 자연의 벌판에서 혹은 바다에서 수십 명의 스텝들과 협업해서 자신의 프로젝트를 완성해오면서 고민했던 문제의식이 비로소 ‘숭례문 ’이라는 한국의 유산과 만나면서 정리되는 지점이라 하겠다 . 그의 일관된 프로젝트 유형에서 이 지점이 현재는 미세하게 변모된 위상을 지니지만 , 훗날 진행될 그의 행위프로젝트 전체에서 전환점으로 재평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 그만큼 , 이번 프로젝트가 예술작품 생산의 차원에서뿐 아니라 예술작품 (숭례문 이미지 )과 예술수용자 (관람객 , 수용자 ) 사이에서의 소통 (혹은 소비 )이라는 예술사회학적 관점들로 확장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술 내부의 미학적 개념을 뛰어넘어 그간 그의 작품에서 구체화되지 못했던 사회적 미학의 메시지를 보다 뚜렷이 표상하게 되는 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달리 말해 이번 프로젝트는 사적 예술행위가 어떻게 공공성을 확보하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
그런 차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대한민국에 ‘오늘날의 유산’으로 다시 돌아온 숭례문에 대한 단순한 오마주(hommage)를 넘어서, 그것에 대한 우리의 미래적 과제들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재성찰하는 비판적 미학의 작업으로 정초될 것이다. ●
출전 /
김성호, “ 공공장소에서의 사적 예술행위가 지니는 의미- 이명호의 숭례문아트프로젝트”, (이명호의 숭례문아트프로젝트 내외신기자 간담회, 발표비평문, 2013. 3. 13. 오후2-4시, 대한상공회의소 / 이명호의 숭례문아트프로젝트, 2013. 8. 18. am. 02:00~am. 09:00, 숭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