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예술과 대중예술, 문화예술과 문화경제, 예술과 생활세계를 구분했던 준거가 모호해지면서 넓은 의미의 문화 개념이 도입되어 문화정책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지만 그 핵심은 아직 예술에 있다. 예술은 개인의 미적 경험과 인식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 표현의 산물이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객관적인 성격을 가진다. 즉 예술을 통해 아름다움과 진실된 영혼을 공유할 수 있기에 우리는 음악을 들으면서, 영화를 보면서 기쁨과 감동의 순간을 맞고 정서적 안식을 가질 수 있다.

문화정책의 큰 갈래는 예술진흥과 문화교육이다. 미학적 판단에 종속 받지 않고 창작의 자유와 다양성을 펼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지원이 전자이고 공연과 전시 등을 통해서 전달되는 창작의 산물을 수용자가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케 하는 것이 후자이다. 그 기본 조건은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성격의 예술에 대한 접근성을 쉽게 하는 것이다.

문화적 기본권으로서 문화교육은 질적으로 우수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기에 학교교육의 교과로 통합된다. 학교에서 노래를 배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 출발이다. 그러나 우리의 제도권 예술교육은 왜곡된 입시제도로 거의 빈사상태에 가깝다. 또한 아이들이 서너 개씩 매달리는 사교육에 음악과 미술 과목은 그중 하나에 속한다. 하지만 조기에 예술 재능의 가능성을 타진하자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그것도 입시의 일환일 뿐 예술교육의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문화교육이 설 자리가 없어진 셈이다. 이러한 예술 경험으로 인해 어른 아이를 막론하고 예술에 대해선 몰이해에 머물게 되어 소극적이 되거나 거부감을 느낀다.

그래서 공공재로서 모두가 향유해야 할 공연장과 미술관이 특수한 소수 계층의 전유물이 되고 대다수 국민의 일상적 문화 향유는 노래방에서 이뤄진다. 국민 여가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TV 시청에서도 예술프로그램을 취약 시간대에 배정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요약하면 우리의 문화정책이 예술의 생산과 전달에 치중되고 수용자의 조건을 극대화시키는 예술교육은 아직 미흡하다는 점이다.

문화교육은 예술과 예술적 산물을 배우고 논의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문화예술에 성공적 참여의 능력을 의미하고 나아가 사회생활 참여의 긍정적 효과를 유발한다. 그리고 미적 경험은 비판적 성찰과 자아인식 능력의 촉진이라는 점에서 인성교육과 닿아 있다. 음악이 장기적으로 지성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는 진선미의 상관 관계를 밝히는 성과이다. 따라서 미학적 경험과 윤리적 성찰, 가치 지향과 삶의 방향성에 대한 것들이 문화교육이 목표이다. 이 점에서 문화교육은 협의로는 예술 참여 능력에 관한 것이지만 광의로 본다면 사회의 질서 유지에 요구되는 행동 양식을 배우는 사회화 내지 문화화와 무관하지 않다. 개인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기능 이상이다. 학교교육에서부터 평생교육에 이르기까지 문화교육의 의의가 과소평가되어선 안 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자고 나면 엽기적 살인에서부터 여자아이 납치 성폭력, 심지어 초등생의 집단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극단적 사건이 이어져 신문보기가 두려울 정도다. 사회병리학적 현상이 일상화된 듯한 이 참담한 현실의 원인은 복합적이고 다양해 한두 마디로 설명될 성질이 아니다. 정보화시대의 디지털 네트워크화와 세계화와 같은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가 가져올 낙관적 성과에만 맹신한 나머지 그러한 환경이 배금주의와 이기주의와 결부해 만들어 낼 부정적 현상을 예상치 못한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인간성 상실, 창의적 판타지 상실, 휴먼드라마 상실의 시대에 문화정책은 문화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 의미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인간성 회복의 대안으로서 문화교육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장섭 | 한양대 교수·문화평론가

세계일보 2008.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