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 7.28 릴, 팔레 데 보자르
벨라스케즈와 함께 에스파냐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손꼽히는 고야의 전시가 프랑스 북부 도시 릴의 팔레 데 보자르에서 열리고 있다. 고야에게 있어서 회화가 에스파냐의 궁정 수석화가의 영예를 안겨줬던 매체라면, 판화는 고야 자신의 가장 개인적이고 은밀한 표현을 가능케했던 매체였다. 총 80점의 엣칭과 아콰틴트 판화들로 구성된《변덕》은 《전쟁의 재앙》,《 투우》, 그리고《부조리》등과 함께 고야의 대표적인 판화집이다.
고야는 여기서 동시대의 사회상과 인간 본성에 대한 명석한 통찰력과 철학적 성찰을 거침없고 자유로운 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계몽주의 사상에 심취했던 그는 매춘 혹은 미신과 같은 반계몽적 측면, 돈과 권력에 놀아나는 사회적 부패, 그리고 자유를 억압하는 교권에 휘둘려 퇴보를 거듭하고 있었던 에스파냐 사회상을 환상적이면서도 음산하고 그로테스크한 톤으로 풍자하고 있다. 드라크루아 같은 프랑스 낭만주의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역사의 증인’ 이자 ‘참여 예술가’로서 상징주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는 진정한 모더니티의 선구자로 간주됐던 고야의 예술은 끝나지 않았다. 고야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고 있는 모리무라와 채프맨 형제 등의 현대 예술가들의 작업은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 본성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현대의 변덕’이란 이름으로 패로디하고 재해석한 《변덕》의 변형들을 보여주고 있다.

루이즈 부르주아 전
3.5 - 6.2 파리 퐁피두센터
97세의 나이에 아직도 지칠 줄 모르는 창작열을 발산하고 있는 프랑스 태생 여류 작가, 루이즈 부르주아전의 대규모 회고전을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과 퐁피두 센터가 공동으로 기획했다. 나무, 석고, 라텍스, 대리석, 브론즈, 섬유, 오브제 투르베 등 제한없는 재료들을 통해 표현된 그녀의 작품들은 추상적인 기하학과 유기적인 현실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하지만 매체와 표현 형태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 작품들은 그녀 자신이 겪었던 유년 시절의 기억과 감정에서 출발하고 있다. 모성애, 연인, 몸, 성의 문제 등, 모든 주된 테마들은 마치 편집광증 환자처럼 그녀가 집착하고 있는 유년의 추억으로부터 끄집어 낸 것들이다.‘ 내 조각은 내 몸’이라고 말했던 작가의 말이 요약하듯, 그녀에게 있어 삶과 예술은 분리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과거는 현재를 살기 위해 매일매일 버려야 하지만, 과거에 철저하게 달아붙어 있는 이 작가에게 유년의 지나간 시간은 조각으로 영원히 거기에 남는다. 부르주아 는 겨우 1980년대 초반에 와서야 뉴욕의 MoMA에서 회고전을 갖게 되면서 뒤늦게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이제는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현대미술가로 평가 받고 있다. 초반부터 최근까지 작품들 가운데 주요작 200여 점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 과연 그 예술적 평가의 궁극적 기원이라고 할 수 있는 부르주아의 유년의 기억이 어떻게 예술로 형상화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마리 앙투와네트 : 쇤부른에서 콩시에르즈리까지
3.15 - 6.30 파리 그랑 팔레
만화, 영화, 전기, 소설 등을 통해 지금까지도 끝없이 재해석되고 재조명을 받고 있는 여자, 마리 앙투와네트… 그랑 팔레가 유럽 전역에서 수집한 300점 이상의 회화, 조각, 장신구, 가구, 의상, 역사적 문서 등을 통해 그녀의 삶에 가까이 다가간다.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 마농 라스코 등을 담당했던 오페라 무대감독 로베르 카르센에 의해, 비엔나의 쇤부른에서 1793년 10월 16일 단두대에 처형되기 전까지 투옥돼있었던 콩시에르즈리까지, 굴곡 많았던 마리 앙투와네트의 인생이 오페라의 무대처럼 펼쳐진다. 거울과 벽화, 혹은 길고 어두운 복도 같은 장치들을 이용해, 성대한 결혼식, 왕실에서의 화려한 삶, 트리아농의 전원 생활, 그리고 프랑스 국민의 원성을 샀던 그 결정적인‘목걸이 사건’등 주요한 시기적 특성들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값비싸고 화려한 보석이나 예술작품 등 마리 앙투아네트가 사용하고 수집했던 온갖 미적 오브제들을 통해 관객은 섬세하면서도 과도한 그녀의 미적 취향이나 문화적 소양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미적, 예술적 가치를 떠나 충분히 눈요기거리가 되는 이런 호사보다도 더 시선을 끄는 것은 죽음을 기다리며 그녀가 입고 있었을 속옷이다. 유럽 열강들의 정치적 책략에 의해 열 넷의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프랑스의 왕비가 됐던 마리 앙투아네트. 타고난 미모와 생기 넘치는 매력, 그리고 엄격하고 복잡한 왕실의 법도를 견디지 못했던‘반항끼’마저도 베르사이유궁의 모든 이들을 사로잡았던 그녀가 마지막으로 입었던 그 평범하고 초라한 옷만큼, 전시를 다 보고 난 후, 강하게 남는 것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