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 6.15 파리 그랑 팔레 중앙홀
작년, 5주도 채 안되는 전시 기간동안 135,000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성공리에 마친 안젤름 키퍼전에 이어, 그랑 팔레가 올해‘모뉴멘타’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미국 조각가 리차드 세라(Richard Serra)를 선택했다.
모뉴멘타는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들 가운데, 매 년 한 명을 초대해 13,000m²가 넘는 그랑 팔레의 중앙홀(Nef)에서 개인전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획기적인 프로젝트다. 리차드 세라는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그것도 오픈 된 공간인 중앙홀에서의 전시를 위해 높이 17미터에 무게가 75톤이나 되는 두꺼운 강철판 다섯 개로 구성된 단 하나의 작품, <산책>을 내놓았다. 그는 다분히 인공적이고 차가운 매체인 강철로 도시적이면서 원초적이고, 인위적이면서도 자연스럽고, 최소한의 절제된 미니멀한 형태이면서 시적이며, 고정되어 있으면서도 움직이고, 장중하면서도 소박하고 순수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강철로 이루어진 풍경의 산책로에 관객을 초대한다. 전시장의 긴축을 따라 연속적으로 설치된 다섯 개의 강철판들은 약간씩 한쪽으로 기운 형태의 긴 사각형인데다,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비껴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비록 조각은 고정돼 있지만 관객이 움직일 때마다 그것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사이 들어오는 공간의 형태 역시 결코 동일하지 않다. 빈 공간은 그저 아무것도 없는‘허공’이 아니다.
강철의 육중한 조각처럼 강한 밀도감을 갖는, 보이지 않는‘볼륨’이다. 그것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조각되는‘볼륨’이다. 리차드 세라는 무엇보다도 관객의 시선과 움직임의 변화가 조각을 통해 만들어내는 공간과의 관계를 작업의 핵심으로 삼는다. 관객은 전시장을 따라 천천히 산책을 즐기면서 그의 눈과 몸이 만드는 공간의 변화를 통해 스스로 공간을 조각하는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된다.

신성함의 흔적
5.7 - 8.11 파리 퐁피두센터
미술은 선사시대부터 근본적으로 종교적이었다. 인간 존재의 근원과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무지와 불안은 인간을 절대적인 권위에 의지하도록 만들었고, 미술은 오랫동안 그것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18세기, 종교개혁과 자본주의, 계몽주의 등 기존의 사회 시스템에 일대 변혁이 일어나면서 미술과 종교의 관계 역시 변했다.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신성은 그 불가침의 권좌에서 끌어내려졌고, 니체는 마침내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근대 미술은 이렇게 신에 대한 믿음이 파괴된 자리에서 태어났다.
분명 사회의 세속화는 예술가를 교회의 종속으로부터 풀어주기는 했지만, 그리고 전통적인 기독교 도상학이 미술에서 자취를 감추긴 했지만, 그렇다고 형이상학적 문제들이 완전히 퇴장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퐁피두 센터는 이성과 물질, 기계의 시대인 20세기 동안에 초월성과 신성함에 대한 감정과 열망이 어떻게 칸딘스키, 말레비치, 피카소, 바네트 뉴만, 빌비올라 등의 작품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표현되어 왔는지 추적한다.

조지 루스전
4.9 - 6.8 파리 유럽 사진의 집
리차드 세라가 조각을 통해 공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면, 프랑스 사진가 조지 루스(Georges Rousse)는 사진으로 새로운 공간 개념에 접근한다. 최종적인 작품의 형태가 사진이긴 하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작업은 건축, 회화, 조각, 설치와 사진이 결합된 조형예술이다. 조지 루스는 철거될 서민 아파트나 버려진 공장, 폐허가 된 창고처럼 일상의 범주에서 벗어나 고립돼 있는 건물의 내부에 그림을 그리거나 텍스트를 쓰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는다. 하지만 3차원의 실제공간에 그려진 형상은 사진에서 완벽한 평면으로 나타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본 공간에 작가가 의도한 2차원의 그림의 형태가 나오도록 실제 공간의 벽이나 바닥, 기둥 등에 표시를 하거나 테두리를 쳐서 그림의 윤곽을 잡고 색을 입힌 다음 그대로 사진을 찍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진 속의 그림안과 그림 밖은 실제 공간에서는 분명 동일한 3차원적 구조로 연결되어 있지만 사진에서는 2차원의 평면으로 보이게 된다. 시각과 논리가 서로 어긋나는 것이다. 우리의 눈은 두 개의 서로 다른 세계의 공존을 보고 있지만, 우리의 논리는 그 결합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다. 그것은 작가 자신이 공간에 종종 써놓은 텍스트처럼‘현실’이면서 동시에‘‘비현실’이도 하고, ‘꿈’이면서 ‘가상’이기도 하다. 이렇게 결코 공존할 수 없는 회화적 공간과 조각적 공간을 동시에 경험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사진이다. 물론 사진이 찍혀진 초점에서 본다면 실제 공간 속에서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이긴 하나, 사진은 서로 다른 차원을 하나로 압축해버림으로써 공간의 깊이를 더욱 깊게 하는 동시에 평면의 평면성을 더욱 부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