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 대한민국 미술계는 미술관과 화랑이 옷을 바꿔 입었다. 상업화랑에서 안젤름 키퍼, 줄리앙 슈나벨 같은 거장의 전시가 열려 시민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터에 정작 국공립 미술관은 민간업자와 손잡고 해외 거장 전시로 임대수익을 올리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게다.

지난날 ‘잘난 지식인’들이 ‘못난 시민과 화상’을 향해 미술관과 상업화랑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질타했지만, 이젠 ‘너무 잘난 미술관 사람들’에게 이 말을 돌려주어야 할 것 같다. 아니 차라리 유네스코가 규정한 미술관 윤리강령을 재교육해야 할 판이다. 국공립미술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기관인 만큼 철저히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가치 있는 예술품을 수집·연구·교육하는 과제는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사명이다. 심지어 상업화랑조차 공동체 사회의 일원으로서 공공성을 일탈하지 않아야 한다는 경영윤리를 요구받고 있는 터에 지금 대한민국 국공립미술관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에선 최근 퐁피두 센터에서 했던 전시를 그대로 수입해 포장만 풀어놓는 ‘이삿짐 센터 식 전시’가 열렸다. 국립미술관 덕수궁 분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역시 같은 성격이다. 국립미술관이 이런 판에 시립이야 말할 것도 없다. 몇해 전부터 외부 기획사와 공간 임대 계약을 맺는 흥행전시관으로 성격이 굳어졌다. 지난해만 해도 마그리트, 모네, 고흐와 같은 유명 작가 이름으로 전시공간 대부분을 채웠다. 이때 미술관은 억대의 임대료를 받아 챙기고 기획사는 시민을 상대로 막대한 입장료 수익을 취한다. 얼마나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인가. 게다가 시민은 비행기를 타지 않고서도 서울에서 저렴한 비용을 내고 고흐 작품을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그대로 두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임대수익 및 쇼룸 제공이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민과 시민은 자신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당하고 있다. 자신의 세금으로 운영하고 있는 미술관을 누군가에게 빼앗긴 채 엉뚱한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만 구경해야 하는 처량한 주인쯤으로 전락한 셈이다.

얼마 전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지자체 도립미술관 신소장품 전시장에 들렀다. 지난 한 해 동안 새로 수집한 미술품을 도민에게 보고하는 전시인데 내가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신소장품 전시장에 온 것이 아닌가 싶어 놀랐다. 어찌 그리 신선함이 넘쳐 흐르는지, 한국 현대미술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많은 구입 예산과 인력을 자랑하는 만큼 뛰어났어야 할 국립현대미술관 신소장품들은 어떠했던가. 비교조차 하기 싫은 경우라는 말을 이런 때 써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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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로 국공립미술관 문제의 심각성은 너무도 깊지만 흥행 임대공간, 이삿짐 창고로 전락한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확실히 그것은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력의 문제다. 돌이켜 보면 형편없는 제도와 소규모 인력만 있을 때도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 겨우 십 년 전에 자체 기획력으로 해외 거장 전시를 시작해 루이스 부르주아전까지 성사시키며 관람객 100만 시대를 돌파했던 영광스러운 국립현대미술관이 오늘날 보석으로 치장할 만큼 부끄러워진 이유는 예산 때문이 아니다.

국공립미술관을 움직이는 구성원들, 특히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역부족은 아닐까. 지금 국공립미술관을 책임지고 운영해온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때가 온 것 같다. 너무 망가져 이런 시비를 더 벌일 여유가 없을 정도다. 충분한 실력을 갖추지 못한 책임운영기관을 독립법인으로 전환시키는 방안은 일단 뒤로 미뤄도 될 것 같다. 외국인을 포함해 공공의 이상을 실현할 능력을 지닌 전문가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비전문가인 중앙부처 관료들은 실무에서 손을 떼는 것이 시급하다.

최열 |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