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그 서문
(이원일의 창조적 역설전, 2014. 2. 21~3. 6, 쿤스트독)
이원일의 창조적 역설 (2편)
책임기획 : 김성호(미술평론가)
V. 이이남의 ‘창조적 역설’
이이남은 이번 전시에서 2014년 신작인 영상 작업을 통해 '창조적 역설'을 재해석한다.
작품 <Pieta for Wonil Rhee>34)은 15세기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를 화면의 중심에 둔 채, 현대 문명의 다채로운 사회상을 오버랩시킨다. 속도, 경쟁의 도시... 흑백톤이 주조를 이룬 이 삭막한 도시에는 문명의 불빛들로 가득하다. 달리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빌딩 속 점멸하는 조명들, 도시의 화려한 네온사인들은 죽은 듯 보이는 도시를 되살려내는 화려한 외피이다.
“복잡하게 건축되고 건설되는 도시 속 풍경 속에 들어선 피에타상은 인간의 구원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하는 것이다. 복잡한 불빛과 도심 속에서 현대인의 내면세계와 인간본질에 대한 탐구를 생각하고자 하였다.” 35)
이러한 도시 풍경 속에 들어선 피에타상이 던지는 인간 구원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은 쉽고도 어렵다. 그저 사는 것이라든지, 죽지 않으려고 사는 것이라든지 우리는 저만의 답들을 가지고 그렇게 살아간다. 어떤 이는 경쟁 속에서, 돈 속에서, 권력 속에서 사는 의미를 찾아가고 어떤 이는 그것으로부터 탈피하는 가운데서 사는 의미를 찾아간다. 남들이 사는 모습과 내가 사는 모습을 늘 비추어보며 각박한 경쟁의 삶을 지속해나가는 것이 쉬운 일인가? 어떤 이들은 이러한 삶 자체를 기꺼이 끌어안고 실패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어떤 이들은 이러한 경쟁으로부터 낙오된 것 자체를 기꺼워하며 탈주의 삶을 오늘도 지속한다. 작가 이이남이 자신의 작업을 통해 던지는 질문들에 한편으로는 쉽고, 한편으로는 어려운 대답을 우리 스스로 떠올려보지만, 그것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정답이 아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절실한 정답일 따름이다. 삶이라는 것 자체가 이러한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이이남의 작품에 제기되는 질문은 언제나 ‘사이’에서 고민하는 무엇이다. 일테면, 전통/현대, 과거/미래, 동양/서양, 무명/유명, 아날로그/디지털 사이에서 양자를 오고가며 벌이는 질문들이다. 거기에는 답이 없다. 답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문제제기하는 사이에서의 질문들은 이원일의 큐레이팅에서 제기되는 ‘창조적 역설’이라는 화두에 스며드는 것들이다. 이원일의 그것이 대립되는 두 속성으로부터 ‘만남-싸움-화해’를 성취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구체화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이남의 그것은 대립되는 두 속성의 ‘사이’에서 ‘구체화되지 않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기만 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원일에게서 ‘혼성, 개방, 교차, 접변’이 창조적 역설에 관한 자신의 답변을 실천해나가는 과정이었다고 한다면, 이이남에게서 그것들은 창조적 역설에 관한 어떠한 답변과도 상관없이 질문 던지기에만 골몰하는 유희적 과정이라 할 것이다.
실제로 이이남은 한 전시36)에서 대립되는 두 속성의 ‘사이 세계’에서 유희적 과정으로 드러내는 혼성의 전략을 우리에게 선보인 바 있다. 이 전시에서 그는 동양과 서양의 고전적 명화들을 병치하거나 오버랩시켜 양자 사이의 상호 유사성과 영향 관계를 조형적으로 모색한 바 있다. 작품 〈겸재 정선과 세잔〉에서 그는 겸재가 안개 낀 밤의 남산의 풍경을 그린 풍경화〈장안연월((長安烟月)〉(1741년경)과 세잔이 그린 〈생 빅투아르 산(La Montagne Sainte-Victoire)〉(1904년경)을 만나게 한다. 양자를 매개하는 것은 빗방울이다. 겸재의 작품에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점차 세잔의 작품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드러내고 있는 이 작품은 동양과 서양의 만날 것 같지 않은 대립항을 두 작품이 지닌 최소한의 유사성으로부터 발원시켜 서로를 만나게 한다. 양자의 사이를 매개하는 것은 표면상으로 빗방울이지만, 그것의 본질은 다름 아닌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힘이다. 그것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들을 현실로 만들어낸다.
'디지털 기술은 신통하게도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 37)
그렇다. 정선의 금강전도를 재해석한 그의 또 다른 작품 〈신-금강전도〉에서 금강산의 풍경 위에 화려한 미래도시가 구축되고, 헬리콥터와 거대한 전투기들이 날아다닐 수 있게 만든 것은 순전히 디지털 테크놀로지 때문이다. 0과 1, 혹은 on과 off가 만들어내는 무한한 변형의 디지털 기술이 실재보다 더 실재와 같은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창출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디지털 일루전을 통해 ‘시간성을 포함하는 움직이는 이미지'38)를 무한 생성하는 이이남의 미디어아트는 그런 면에서 비디오와 오디오의 두 성격이 주를 이루는 것이지만, 이미 후각과 촉각과 같은 공감각적 이미지를 배태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유념할 것은, 그의 작품이 공감각적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은 무엇보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그의 ’창조적 상상력‘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원일의 ’창조적 역설‘에서 제시되는 세부적 개념어인 ’상상력‘인 것이다. 그것은 아이러니, 구조적 모순, 대립을 혼성, 교차, 접지의 방식으로 만날 수 있게 한 근원적인 힘인 것이다. 이른바 ‘디지털 일루전(digital illuision)’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장치는 기존의 서구회화가 견지했던 환영의 문제를 상상적 환영의 문제로 끌고 들어오는 또 다른 차원의 일루전이다.
이이남이 이번 전시의 출품작을 〈이원일을 위한 피에타(Pieta for Wonil Lee)〉라 작명한 까닭도 이원일의 창조적 역설이 제기하는 상상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공감을 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작품 속에는 피에타 상과 도시의 풍경 뿐만 아니라,, 이원일의 초상사진과 그가 썼던 육필원고가 화면 속에서 교차, 편집되어 나타난다. 작품에 배경으로 깔리는 음향에는 소란한 도시의 소음들과 더불어 이원일의 생전 육성이 뒤섞여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그의 출품작은 이원일의 큐레팅의 핵심 개념으로 간주되는 ‘창조적 역설’에 대해 온전히 오마주로 헌사한 작품이라 하겠다.




VI. 나오는 말.
이탈, 이경호, 이이남 3인의 출품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원일의 큐레이팅의 핵심개념으로 파악되는 ‘창조적 역설’에 대한 재해석과 조형적 실천을 감행한다. 그것은 이원일의 큐레이팅 개념을 그저 모방하거나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개별 작가의 고유한 작품세계로부터 추출되는 것들이었다. 거기에는 아이러니, 상상, 구조적 모순, 해학, 풍자, 대비, 접지, 혼성이라는 이원일의 창조적 역설로부터 유추되는 다양한 개념들을 조금씩 다른 언어들로 가지고 있는 세계이다. 우리는 그것을 3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아이러니, 유희, 해학, 사이의 세계’와 같은 보다 함축된 용어들만으로 해석해보았다.


아울러 밝혀둘 것이 있다.
이원일이 실제적 큐레이팅에서 ‘창조적 역설의 개념’과 연관되는 방식으로 선보였던 혼성의 공간연출, 일테면,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고 연동되는 유형의 공간연출을, 기획자가 이번 전시에서 맘대로 재해석하고 실천으로 옮기는 일을 자제했다는 것이다. 좁은 전시공간, 한정된 예산, 기획자의 능력 부족 등이 여러 이유로 작용했지만, 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3작가가 이원일의 큐레이팅 개념인 창조적 역설을 자신들의 작품들을 통해서 맘껏 펼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지원하는데 기획의 초점을 맞추는데 보다 집중했다는 것이다. 덧붙여 기획자가 할 수 있는 방식은 3작가의 출품작들의 영상 이미지와 사운드가 공간을 가로질러 겹쳐지는 우연한 효과를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서 상호 혼성되는 결과를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것은 기획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우연한 효과였으며 이원일의 창조적 역설이라는 개념을 훌륭히 성취하는 예측불허의 무엇이었다.
마지막으로 2층의 아카이브전에는 그의 생전 원고들, 그의 책, 그에 관한 사진 이미지와 자료들을 최대한 전시하고 재해석한 코멘트들을 병기해서 관객들에게 이해를 돕기 위한 기획자의 노력을 담아냈다.
3인 작가의 출품작들과 단촐하지만 세밀하게 접근한 아카이브전이 그가 생전에 실제 큐레이팅으로 실천하지 못했던 ‘창조적 역설’이란 개념을 추론하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아울러 이 전시가 향후 그의 큐레이팅 전모에 관한 관심을 촉발하는 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주석
1)노효신,「우주 유랑자의 작은 정거장, 독립 큐레이터 이원일 씨의 사무실」, 섹션 창작과 비평, 『한국종합예술학교 신문』 인터넷판. 2008. 4. 12.
2)노정용, 「이원일 큐레이터, 미국 모마미술관 기획 맡아」, 『파이낸셜뉴스』 2008. 2. 26.
3)Wonil Rhee, “The Creative Time of Thermocline: Conflicts between and Becomings of Different Time-Spaces”, in; Thermocline of Art : New Asian Waves, Catalogue, (Karlsruhe: ZKM, 2007), p. 20.
4)필자는 그의 '창조적 역설'이란 주제가 실제의 전시로 구현된 적은 없지만, 그의 큐레이팅 전반에 드러난 개념이자 주제의식으로 파악하고 논의를 전개시킨 바 있다. -김성호,「이원일 큐레이팅 연구 - 창조적 역설(Creative Paradox)을 중심으로」,『인물미술사학』, 인물미술사학회, 8호, 2013, 9월, pp. 101-139.
5) ①(한국미술관, 2012. 2. 29-3. 29), 기획: 윤진섭, 참여작가: 강애란, 강운, 노상균, 오용석, 이경호, 이기봉, 이이남, 이정록, 임영선, 정연훈, 진시영, 하봉호. 유족을 위한 작품기증전으로 마련되었고 다음의 전시들로 이어졌다. ②(백해영갤러리, 2012. 4. 12-2012. 4. 25). 참여작가: 강애란, 강 운, 노상균, 오용석, 이경호, 이기봉, 이이남, 임영선, 하봉호, ③(갤러리세줄, 2012. 6, 8-2012. 7. 31), 참여작가: 강애란, 강운, 노상균, 오용석, 이경호, 이기봉, 이길우,, 이이남, 임영선, 정영훈, 하봉호.
6) 혼돈과 혼란, 복합문화, 가산혼합, 혼성화, 통합, 교차, 접변, 일치와 불일치, 개방, 해체, 재구성, 탈지정학, 역진화 등 닫힘과 열림과 관계한 용어들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표1)〈이원일 큐레이팅의 핵심개념 ‘창조적 역설’의 주체와 방법〉을 참조하라.
7)「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8) 김성호,「이원일 큐레이팅 연구 - 창조적 역설(Creative Paradox)을 중심으로」,『인물미술사학』, 인물미술사학회, 8호, 2013, 9월, pp. 101-139.
9) Tom Conley, Creative Paradox: Narrative structures in minor French fiction of the sixteenth century (Flore, Crenne, Des Autelz, Tabourot, Yver), (Madison : thèse University of Wisconsin, 1972)
10) Tom Conley, Ibid., pp. 9, 122.
11) Tom Conley, Ibid., p.9.
12) Tom Conley, Ibid., pp.6-9.
13) Carter Kaplan, Critical synoptics : Menippean satire and the analysis of intellectual mythology, (Lodon : Associated University presses, 2000),
14) 김성호, ibid., p.105.
15) 김성호, ibid., p.108.
16) 이탈(Tal Lee),〈This is not Art〉, 10x0.6m media, arduino, sensor, Motor 24ea, Airbible 12ea_dimention variable, 2013.
17) 이탈, 작업노트, 2014. 2. 1.
18) 이경호(Kyungho Lee),〈Jackpot!>, signle channel video 6m & sensor, coins, Excavator toy, Pot_dimention variable_2014
19) 다보스포럼(제4차 세계경제포럼. WEF), 2014. 1. 22~25, 스위스 다보스
20) 이경호, 작업노트, 2014. 2. 1.
21) Caetano Velose, 〈Ay Amor!〉
22) Billie Holiday, 〈I`m a fool to want you〉
23) Canan Anderson,〈Sultan-i Yegah Sirto〉
24) Billie Holiday, 〈Strange Fruit〉
25) 'Blood on the leaves and blood at the root',
26) 'A strange and bitter crop.'
27) 이경호는 하염없이 같은 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아스트로보이 아톰과 전원이 빠진 방송국 마이크 앞에 슈퍼맨의 화려한 망토를 뺏어 두른 미키마우스(작가는 미치마우스라 명했다) 아래 엄청난 양의 포크레인들이 굉음을 내며 꿈틀거리는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전시에 출품된 장난감 포크레인들은 당시 재임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의 토목공사가 기반이 된 성장 위주 정책을 풍자하고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하나의 은유였다.
- 이경호,〈Michey Mouse 2008-2013〉, 2011, 《아이로봇(i Robot)전》(조선일보미술관, 2011. 1. 7~1. 25,)
28) 이경호,〈Prayer)〉2007
29) 이경호,〈No-Signal(?Help)〉, 2007. 《Thermocline of Art: New Asian Waves》, (Karlsruhe ZKM, 2007. 06. 15.~10. 21.) - Wonil Lee, 'Kyung-Ho LEE', in Thermocline of Art: New Asian Waves, 2007. p. 64.
30) 김동건, 이원일과의 인터뷰,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 월드 큐레이터 이원일 편, 2008. 7. 7. KBS 2TV.
31) 이원일, '꿈과 카오스의 이중주', 『이경호』, 개인전 카탈로그 서문, (갤러리세줄, 2002, 3. 21~4. 10.)
32) 이경호는 2004년 제5회 광주비엔날레에서도 전시를 통해 생산된 '뻥튀기'를 이탈리아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와 협업하여 디자인한 봉투에 담아 1$에 판매한 후 수익금 전액을 지역 시각장애인단체에 기부한 적이 있다.
33) 이경호,〈Yoke〉1999, http://www.youtube.com/watch?v=FtsN4yvFB-4
34) 이이남(INam Lee), <Pieta for Wonil Rhee>, Beam projector, 7min 30sec_2014.
35) 이이남, 작업노트, 2014. 2. 10.
36) 《이이남 개인전-사이에 스며들다》 (학고재갤러리, 2009.11.18~12.13)
37) 이이남의 발언으로 다음의 글에서 언급되고 있다. 오윤현, 「북촌미술관 순례기」, 『시사 IN Live』, 2009. 12. 17.
38) Margarethe Jochimsen, 'Le temps dans l'art d'aujourd'hui : Entre la borne et l'infini', in L'art et le temps, Albin Michel, Paris, 1984, pp.223-224.
출전/
김성호, '이원일의 창조적 역설', 카탈로그 서문, (이원일의 창조적 역설전, 2014. 2. 21~3. 6. 쿤스트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