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조간 신문에서 해괴한 기사를 접하고 미술인을 비롯한 문화예술인, 시민들은 분개했다. 기무사 이전 부지에 ‘현대사박물관’ 건립을 검토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사실 기무사 부지에 미술관을 건립하고자 하는 미술인들의 오랜 청원과 운동이 우여곡절 끝에 결실을 맺어 기무사가 과천으로 이전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 후에도 많은 난관이 있었으나 미술계와 문화예술인들이 똘똘 뭉쳐 이전을 지원하고 과천 시민들을 설득하고 과천시장과 시의회 의원들을 이해시키며 동분서주한 결과, 이전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으로 기무사 부지 이전에는 입 한 번 벙긋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그 땅에 ‘현대사박물관’ 건립을 검토한다니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을 일이겠는가.
기무사 이전은 미술인들의 오랜 청원의 결실
현재 경복궁 동십자각을 끼고 총리공관 쪽으로 올라가다보면 경복궁을 마주하면서 화랑가가 형성되어 있고 이 가운데 섬처럼, 마치 이빨 빠진 듯 정체불명의 건물이 동선과 시야를 끊어놓는 일을 경험했을 것이다. 바로 이곳이 기무사 부지다. 행정구역상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165번지 일대로 현재 서울국군지구병원과 국군기무사령부가 대지 8천3백3평을 나누어 기무사가 5천3백3평을, 지구병원이 3천평을 나누어 갖고 있다. 부지 내에는 병원 건물과 부속 건물 그리고 기무사령부 본관과 신관, 강당, 소격아파트 및 기타 부속 건물 등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 북촌의 소격동은 조선 시대에 소격서, 종친부, 규장각, 사간원이 있었던 곳으로 1913년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수도육군병원이 들어섰고, 1928년 5월부터 경성의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부속 의원으로 쓰이다가 다시 일제가 ‘경성육군위수병원’으로 용도를 바꿔 증축했고, 남아 있던 종친부 대문과 행랑채, 담장 등은 헐어버렸다.
군사 시설로 전용된 악연은 광복 후 국군서울지구병원과 군 정보기관인 보안사, 기무사 청사로 이어졌다. 10·26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을 맞고 처음 후송된 곳도 여기였다. 반면 후원의 7칸 종친부 건물(서울시 유형문화재 9호)은 1981년 해체되어 부근의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인 정독도서관 운동장으로 이전되었다. 이렇듯 이 땅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 그대로 담긴 땅이자 치욕의 땅인 동시에 치유 받아야 할 땅이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 한국 근대 건축의 거두 박길룡(1898~ 1943)이 설계해서 2년여 만에 완성한 이 병원 건물은 외관의 군더더기를 제하고 기능미를 강조한 꽤 혁신적인 모더니즘 양식의 최초 건물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문화예술계가 이곳에 미술관을 건립하자는 의견을 낸 것은 질곡의 역사를 지켜본 이 땅에 상생과 화해와 치유의 공간으로서 문화 시설로 활용하자는 뜻에서였다. 한국 근대사를 증거할 변변한 건축물 하나 없는, 정도 6백년이 넘는 수도 서울에 이런 역사 깊은 건축물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기에는 미술관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 제대로 된 미술관 하나 없는 상황에서 이런 문화적 몰염치함과 예술적 후진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뜻에서 시작되었다.
수도 서울에 번듯한 미술관 하나 없어
그런데 미술관이 아니고 ‘현대사박물관’이라니, 이는 청천 벽력 같은 소리이자 문화예술인들과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다. 시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자 문화체육관광부는 “건국 6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현대사박물관 건립을 검토하고 있으나, 건립 장소를 경복궁 옆 기무사 터로 결정한 바 없다”라고 슬쩍 발을 뺐다. 참으로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간 공무원들이나 행정부의 태도를 보면 이런 식으로 관련 단체나 사람들의 의중을 떠보고자 슬쩍 흘려보고는 조용하면 가차 없이 추진하는 것이 허다했다.
이런 의심을 하는 이유는 공무원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04년 문화관광부는 산하 기관인 문화관광정책연구원에 ‘국군기무사 부지를 활용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을 위한 연구’를 의뢰했고 그 결과 보고서가 발간되었다. 그리고 그해 12월21일 국립중앙박물관 사회교육관 강당에서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한국미술협회, 민족미술인협회, 미술인회의 등이 주관해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연구 보고서가 이미 있는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문화관광정책연구원은 2007년 12월에 다시 ‘국군기무사 부지 활용 복합문화관광시설 조성방안 구상’이라는 보고서를 내 놓는다.
이것은 2002~2003년부터 검토된 것이었으나 부지의 협소함, 서울 동북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교통의 요지, 북촌이라는 전통 가옥촌 등등의 이유로 인해 이미 용도 폐기된 안이었다. 그런데 다시 세금으로 똑같은 부지에 또 다른 안을 연구하도록 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게다가 미술관과는 거리가 먼 복합 문화 관광 시설로 관광 중심의 상업적 시설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연구 보고서도 무용지물, 다시 ‘현대사박물관’이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다. 부지는 하나인데 이런저런 시설들을 모두 검토하겠다니 사실은 미술관 건립도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주저앉아 있는 형국인데 참으로 염치없는 일들을 일삼고 있는 셈이다.
기무사가 이전하게 된 것은 여전히 서슬이 퍼렇던 기무사측에 1996년 2월 이미 고인이 되신 시인 조병화 선생, 건축가 장세씨와 당시 미술협회 이사장이었던 이두식씨, 북촌문화포럼을 이끌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김홍남씨 등 문화예술계·미술계 인사들이 추진위를 구성하고 겁도 없이 열정과 의지만으로 기무사와 국군서울지구병원을 이전하고 그 자리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설립하자는 건의서를 관계 요로에 제출하면서 본격화했다.
이 일의 추진은 군 수사대와 군 사찰 부대인 기무사가 서울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는, 민주 국가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부자연스러운 일을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도 한몫한 것이 사실이다.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이를 검토했으나 기무사가 이전에 반대함으로서 미루어져왔다. 이후 지난 2000년 기무사는 슬그머니 이전 계획을 백지화하고 현 건물 철거 후 그 자리에 건물을 신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기무사가 현 소격동 부지를 계속 고집하자 미학과 철학의 차이와 실천 방법의 다름으로 인해 양분되어 있던 예총·민예총·미협·민미협 등이 혼연일체가 되어 기무사 신축안에 반대하며 강력하게 이전을 요구했다. 이렇게 문화예술계 주장이 비등하자 당시 박지원 문화부장관이 김필수 국군기무사령관과 만나 기무사를 교외로 이전하고 이곳을 문화 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하면서 이전의 밑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미술계는 꾸준하게 과천 산골짜기에 유배된 국립미술관의 서울관 또는 국립미술관 건립을 주장하면서 나름대로 기무사 이전을 추진하고 촉구했지만 지지부진하자 2005년 다시 김창실 전 한국화랑협회장, 고 이규일 전 <아트 인 컬처> 발행인, 정근희 북촌문화포럼 공동대표 등이 다시 미술인과 북촌 주민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재가동해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2005년 2월에는 기무사 부지에 미술관 건립 여망을 드러내는 전시회를 50여 개 화랑에서 7백5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해서 개최했다. 또 2005년 여름에는 역사적인 근대 건축물들을 유적으로 보존하자는 도코모모 코리아와 함께 ‘기무사 부지를 활용한 미술관 건립 건축 전국 공모전’을 통해 근대유적인 현 건축물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미술관으로 활용하는 전국 규모의 공모전을 개최하면서 역사적인 건축물을 보존하면서 미술관으로 사용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2월23일에는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당시에는 야당이었지만 현재는 집권당인 한나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위원장 정두언)와 함께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정치권의 관심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기무사는 이런 문화예술계의 요구에 과천시 주암동을 이전 부지로 정했다. 하지만 과천시가 혐오 시설이라는 이유로 건설 허가를 내주지 않자 이전 사업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새 기무사 착공식이 열린 것은 2006년 5월. 이렇게 기무사 이전은 그 부지에 미술관을 세워달라는 미술인들의 희망과 열망이 가시화되고 11년 만에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예술계 11년 만의 희망 꺾어서야
인구 1천만이 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국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대한민국이 수도 서울에 제대로 된 미술관 하나 없는 낮 뜨거운 일을 모면케 해달라는 시민들의 열정이 기무사 이전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무사 터에 미술관을 건립하는 문제는 기무사 이전이 결정된 후에도 그 부지 안에 대통령 전용 병원이나 다름없는 국군서울지구병원이 있어 그 결정이 미루어져왔다.
그리고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는 지방 분권화를 위해 지방으로 국가기관들을 이전하는 마당에 ‘서울에 무슨 국립 기관이냐?’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불호령에 물거품이 되었고, 추진 주체가 되어야 할 문화관광부도 이쯤에서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시민과 미술인들의 십수 년 땀과 열정과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전된 기무사 부지에 미술관이 아닌 ‘현대사박물관’ 건립을 검토한다니 이는 미술인과 시민들을 농락하는 일이다. 기무사의 서슬에 관료들은 물론 대통령조차도 이전이라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더니 이전이 임박하자 슬그머니 무임 승차도 아닌 차를 탈취하려 드는 것은 어떤 배짱과 염치일까. 아무튼 문화재청은 오는 10월까지 과천으로 이전하는 기무사 본관 건물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는 7백95억원을 들여 기무사 건물을 예술가들이 작품을 창작하고 판매·전시하는 공간으로 리모델링한다고 한다. 종로구는 경복궁 주변 불법 주·정차로 인한 교통난을 해소하고 북촌을 찾는 관광객이 주차하고 걸어다닐 수 있도록 기무사 부지에 주차장을 짓자는 제안도 내놓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개미가 죽어라고 뙤약빛 아래서 일 할 때 나무 그늘에서 노래만 부르던 베짱이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군사 독재 시절의 잔재이자 강압 통치의 상징인 기무사가 서울 도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현대사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인식과 이런 비민주적인 도시 환경에 둔감한 현실을 타개하고자 지속적으로 기무사 이전을 주장해온 범문화예술계의 의지를 받들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또는 별도의 국립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 그리하여 서울 도심으로부터 22km나 떨어진 산골짜기에 방치된 국립현대미술관의 치명적인 약점을 커버해야만 한다.
우리의 1960, 1970년대에 흘렸던 땀과 눈물의 의미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를 되새겨보기로 하자. 당시 그 의미는 곧 절대 빈곤, 배고픔으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동인은 무엇일까. 이는 다름 아닌 우리에게는 아직 구체적이지 않은 ‘문화’일 것이다. 우리에게 ‘더 잘산다’는 것은 ‘문화’를 향유하고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인간다운 삶의 구현이라 할 것이다.
시사저널 [978호] 2008년 07월 22일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