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그 서문〕
서유정 개인전
망각으로부터 탈주하는 비평적 회화 혹은 '시적 산문'
김성호(미술평론가)
'망각의 자유'에 대한 경종 : 몽타주 언어의 소환
작가 서유정이 이번 개인전의 주제로 내세우고 있는 '망각의 자유(freedom of oblivion)'는 그녀의 전시가 지향하는 목적지가 아니라, 공격하고 해체해야 할 저항의 대상이자 탈주의 대상이다. 그녀가 비판하고 있는 '망각의 자유'는 오늘날 문명사회에 팽배해있는 '제도화된 사회의 권력'이 기존의 지배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 구축해놓은 안전지대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지배질서가 개인으로 하여금 과거사를 잊고 불확실한 미래를 장밋빛 희망으로 가득 채우게 만드는 달콤한 미끼이자, 사회 구성원의 현재적 반발을 무너뜨리고자 독려하는 위장의 가짜 덕목이다. 생각해보라! 딱히 특정할 수 없는 '빅브라더(big brother)'로서의 지배권력 체제는 망각이라는 것이 결코 치유될 질병이 아니라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생물학적 속성이자 인간의 존재론적 덕목임을 가르친다. 즉 그것이,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안위로, 비관론으로부터 낙관론으로, 실패로부터 성공으로 이끄는, '견인차(牽引車)'로서의 존재임을 설파하는 것이다.
서유정은 집단의 기억들을 회상하고 하나둘 꺼내어 곱씹으면서, 망각에 몸을 싣고 정처 없는 미래에의 질주를 꾀하는 분주한 현대인들에게 '왜 잊고 살아가느냐?', '어떻게 잊고 살아갈 수 있는가?'라며 질문한다. 과거를 잊고 살아감으로써 현재의 편안함을 도모하는 현대인의 '망각의 자유'는 실상 자유가 아니라 빅브라더가 획책하는 억압과 구속의 산물이었음을 끊임없이 되뇌면서 말이다.
그런데, '망각의 자유'에 대한 서유정의 비판적 시선은 논리적, 합리적, 체계적이 아닌 '무엇'으로부터 자라나는 것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회화적 언어가 비언어를 표상하기에 자연스럽게 유발되는 것이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은 서유정 회화의 몽타주(montage) 형식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몽타주'란 기존의 원전들로부터 부분을 따로 떼어내는 편집의 방법론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계획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 결과는 다분히 우연적이다. 초현실주의 회화나 사진에서 우리가 그 예를 살펴볼 수 있듯이, 몽타주가 귀결시키는 내러티브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이며, 정치(精緻)한 언어들이기보다는 어눌하고 더듬거리는 비언어들이기 십상이다. 그것은 집단의 기억으로부터 파편적으로 떠올려내는 서유정 개인의 기억이자, 그녀가 세계를 대면하고 읽어내는 하나의 방식이 된다.
그런 까닭으로 그녀가 몽타주의 언어로 '지금, 여기'에 역사적 기억을 소환하는 그것은 분명코 서유정이라는 '집단-내-개인'의 직간접 경험에 의한 것이면서도, 부분의 추출과 편집이라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사실을 그려내지 않는다. 그것은 다큐멘터리가 아닌 페이크다큐(fake docu) 혹은 팩션(faction) 더 나아가 극적 허구의 형식마저 드러낸다. 그것은 역사 속 특정한 시공간과 개별 사건의 색채를 지우고 관련한 '집합적 사건들'을 표상하고 은유한다.


망각의 흔적과 공간 : 접점과 경계의 은유
그녀의 작품에서 〈DMZ_the lost garden〉, 〈DMZ_drown with green〉과 같은 작품들은 한국의 비무장지대로부터 연상된 것이지만, 이내 국가 간의 분쟁을 휴지시키는 중간계(intermediate world), 중간지대(interspace)로서 집합화되고 양자를 매개하는 접점(interface)으로 은유된다. 이 접점의 공간이 오늘날 복원된 생태계라는 이상향으로 간주되는 현실 이면에서 작가 서유정은 이 공간의 본질이 미래의 인류에게 선물로 주어질 생태적 유토피아가 결코 아님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이 접점의 공간은 살육의 핏빛 역사를 씻어낼 틈 없이 자신의 지층 위로 나무와 풀들로 겹겹이 세월을 쌓아올린 공간이지 않든가? 즉, 이 중간지대는 세계의 빅브라더가 자신의 지배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들어낸 구속의 접점이자, 현재 '잃어버린 뜰(lost garden)'이라는 것을 '왜 잊고 있냐?'고 우리에게 따져 묻는 것이다. 동식물로 가득한 화면 좌우로 현대문명과 권력을 유추케 하는 실험실 시험관과 기관총의 실루엣이 선묘로 배치된 화면에서 우리는 작가의 '경고와 비판의 메시지'를 여실히 읽어낼 수 있다. 인간의 유용성을 위한 유전공학의 복제기술들은 결국 실험실 시험관으로부터 나온 기형도마뱀처럼 생태적 질서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방어용으로 개발된 기관총과 같은 군사기술들은 결국 군사제국과 테러리스트들에게 공격용으로 개발되고 활용됨으로써 인간 살육의 전쟁의 폐해 속으로 우리를 내몰아간다. 서유정은 이러한 사실이 중간계와 접점에서 망각이란 이름으로 은폐되고 있음을 비판한다.
그런 면에서, 서유정의 회화에 있어, 중간계와 접점으로서의 은유는 일차적으로 우리의 망각을 은폐하는 주범이 살고 있는 공간으로 소개된다. 서유정이 '일련의 상반된 사고의 경계에 있을 때가 가장 흥미롭다'고 진술하고 있듯이, 그녀는 이질성과 대립의 접점 혹은 경계의 공간에서 망각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것에 덧씌워진 위장을 벗겨내는 일을 작업의 모토로 삼는다. 주체와 타자,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과잉과 결핍, 통제와 자유, 질서와 혼돈 사이의 중간계, 접점, 경계의 공간은 그녀의 회화 안에서 무수히 발견된다. 그것은 미개문명의 공간을 담고 있는 이미지에서든, 문명화된 자본주의의 풍광을 담고 있는 이미지에서든 여지없이 나타난다. 그것은 도처에 있다. 인간과 동물이 결합된 반인반수의 존재에서, 돌연변이의 생물체에서, 교미에 탐닉하고 있는 돼지나 도롱뇽의 모습에서, 성적 억압이나 폭압이 벌어진 현장을 유추케 하는 이미지 속에 자리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에서 접점과 경계의 은유는 수시로 발견된다.


서유정, DMZ_drown with green, 162x72.7cm, Acrylic on canvas, 2013
지배 이데올로기와 망각으로부터의 탈주
서유정은 대립하는 것들의 경계와 접점에 은폐된 '어떠한 본질에 관한 망각'을 비판하고 망각된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관객에게 되물으면서 성찰한다. 그것은 마치 하이데거(M. Heidegger)가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를 '존재 망각의 역사'로 규정하고 비판함으로써 '망각'으로부터 '존재'를 부활시키려 했던 일련의 철학적 노력에 대한 작가 서유정의 화답처럼 보인다. 하이데거는 서구 철학사에서 '존재'가 너무나 자명한 개념으로 간주되어 왔기에 '존재자 지향적 사유'를 진행해오면서도 '존재' 자체에 대한 사유는 전혀 진행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하이데거에게 있어 인류에게 그동안 망각되어 온 본질이 '존재' 자체라고 한다면, 서유정에게 있어 그것은 빅브라더와 같은 '은폐된 사회 관리 권력'이며 그로부터 생산되는 통제, 금기, 폭력, 파괴, 구속과 같은 모든 부정적 요소들을 포함한다. 결국 하이데거의 철학이 '사유의 자명한 통속성이 야기하는 망각'으로부터 탈주하는 것이라면, 서유정의 회화는 '본질처럼 오도된 지배 체제의 이데올로기가 야기하는 망각'으로부터 탈주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흥미로운 것은 하이데거가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열기(혹은 밝힘)를 지속하는 '세계'와 닫기(혹은 감춤)를 지속하는 '대지' 사이에서의 투쟁을 예술작품의 '틈(Riß)'을 통해 이야기하듯이 서유정의 회화에서도 열기와 닫기 혹은 드러냄과 은폐의 투쟁을 회화 내의 이질적인 것들(그녀가 이야기하는 이기적 이미지)의 '경계 혹은 접점(interface)'의 공간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도구'의 개념을 통해 인간 이외의 모든 존재자의 존재 양식을 설명하려는 노력을 살펴볼 수 있듯이, 서유정의 '회화'에서도 그와 같은 개념을 살펴볼 수 있다. 은유와 상징들로 가득 찬 그녀의 작업에서 말, 산양, 돼지, 물고기와 같은 동물 그리고 꽃, 풀, 열매와 같은 식물은 물론이며, 의자, 창문, 문, 동굴과 같은 사물이라는 '인간 아닌 존재자들'은 '도구'의 단순한 쓰임새 이상을 넘어서는 의미, 즉 인간 현존재와 어떤 의미항으로 관련을 맺으면서 존재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준다. 이처럼 '인간 아닌 존재자'는 모두 인간과 다를 바 없는 '세계-내-존재'인 것이다.
특히 남성 인간으로 표상되는 부권적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탈주하는 모든 타자로서의 존재는 그녀의 작품에서 주요한 주체들이다. 예를 들어 그녀의 작품 〈Next: 21 Nov 2001: unplugged〉는 오늘날 아프리카 사회 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여성 주체에 대한 폭력적인 할례(割禮)를 모티브로 한 고발적 메시지의 작품이다. 또한 반인반수의 존재자가 살고 있는 현대적 인테리어 내부에 자리한 조용한 풍경으로 보이는 작품, 〈The secret interview-Monday 1 may〉는 실상 성적 피해자를 연상케 하는 여성 주체가 널브러져 있고, 핏빛 얼룩이 낭자한 그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폭력의 도가니 자체이다. 다른 작품,〈Cold in my chairs not enough water inside〉는 또 어떠한가? 어떠한 사건이 벌어진 듯 집기가 쓰러져 있는 혼란한 건물 내부에 새의 두상을 한 사내가 웃통을 벗은 채 앉아있다. 왼쪽 화면에는 손을 마주 쥔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미에 탐닉하는 돼지 한 쌍의 모습이 그려져 있고, 오른쪽 위에는 성폭력 사건의 희생자로 보이는 한 여성이 길게 드러누워 있다. 또 다른 작품〈In the room with the girls〉에서도 '권력자'의 성적 대상자이자 성적 위압의 피해자로 전락한 여성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화면 중앙의 푸른 의자는 지배적 권력을 지닌 수컷들이 차지하는 권좌에 다름 아니며, 천장에 매달린 하반신의 다리들은 성적으로 상품화된 여성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서유정의 회화에서 '인간이 인간 아닌 존재들에게' 또 '부계적 남성이 남성 아닌 여성들에게' 가하는 폭력적인 사건 자체가 결국 그녀가 비판하는 '망각의 자유'가 거주하는 공간이었음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서유정, Next: 21 Nov 2001: unplugged, 130.3x145.5cm, Acrylic on canvas, 2013


서유정, Cold in my chairs not enough water inside, 145.5x97cm, Acrylic on canvas, 2012

서유정, In the room with the girls, 91x65.2cm, Acrylic on canvas, 2013
'시적 산문'으로서의 비평적 회화
유념할 것은 그녀의 작품에서 분절된 이미지들이 조합해내는 비판적 내러티브 자체는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전체적인 이미지의 독해 자체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은유나 상징의 기제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들도 있지만, 독해 자체를 뒤틀어 내거나 은폐하는 이미지들이 함께 화면에 자리하면서 일괄적 메시지 독해를 고의적으로 방해하고 있는 것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앞서 살펴본 여성 할례를 비판하는 시리즈 작품은 아프리카의 장식과 풍광을 통해 공간적 특성을 읽어낼 수 있지만, 작가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한 작품의 이미지로부터 아프리카의 여성 할례에 관한 비판적 메시지를 읽어내는 일이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까닭 중 또 하나는 그녀의 회화가, 특정한 연결고리 없는 이미지들로 데페이즈망(depaysement)과 몽타주 기법을 통해, 초현실주의적 화면이나 몽환적인 화면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라! 하나의 은유가 아닌 수많은 상징과 은유들이 부유하는 초현실주의 이미지는 이성적인 비판의식을 결여한다. 초현실주의가 실행했던 비판의 대상이 '이성적 합리성'이었으며, 달리(S. Dali)의 '편집광적 비평'에 근거한 창작에서 확인하듯이, 비판의 도구적 조형언어가 비이성, 비논리, 비합리였음을 상기해볼 때, 서유정의 작업도 초현실주의적 비평의식과 일정 부분 공유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 즉 그녀의 작업이 비이성, 비논리, 비합리적 입장에서 이성적 합리성을 해체하려는 초현실주의적 노력과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말이다.
서유정에게 있어 망각의 자유에 경종을 울리고 비판하는 방식은 무수한 은유와 상징들로 가득한 초현실적 이미지로 인해 사뭇 '시(詩)'적이다. 다만 우리는 그것이 내러티브의 연쇄 고리가 떨어져나가 있음에도 여전히 산문(散文)의 형식을 유지한다는 차원에 주목한다. 실제로 그녀는 이미지의 파편들을 컴퓨터로 스캔해서 불러내고 그 조각들을 시적 우연성으로 조합하고 덧칠한 후, 이 에스키스를 실제의 캔버스에 거의 수정 없이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을 마무리한다. 즉 캔버스라는 '산문의 뼈대' 위에 애초의 에스키스를 통한 '시적 감성'을 수정 없이 얹어놓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필자는 그녀의 회화가 지향하는 바를 '시(詩)적 산문(散文)으로서의 비평'으로 정의한다. 즉 형식 자체는 산문이지만 산문의 기능을 이미 잃은 '시적 마블링으로 가득한 비평'으로 풀이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리에 앉아 냉철하게 따지고 묻는 산문적 논리이길 애초에 포기하고 시대의 음모에 분노하고 온몸으로 뛰쳐나가는 시인의 마음으로 쓰는 비평이다. 따라서 그녀의 회화가 담당하는 '시적 산문으로서의 비평'의 역할이란 오늘날 우리에게 망각되고 있는 과거의 무수한 집합적 사건들을 떠올리라고 윽박지르고 강요하기 보다는 그 사건들과 관련한 망자(亡者)들을 영매(靈媒)처럼 날마다 지금, 여기에 불러내는 일이다. 역사를 탈시공간적으로 현재화하는 주제의식으로 오늘도 고민하는 작가 서유정으로서는 레테(Lethe)의 강물을 마시고 망각의 세월을 이미 건너간 망자들을 불러내고 '나지막한 울림'의 치유의 진혼곡으로 그저 날마다 위로해주는 일이 무엇보다 주요할 테니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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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대학원 회화과 박사 수료, Pratt Institute 회화과대학원 졸업, 홍익대학교 판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부산예술고등학교졸업
1997년 <CollagraphyShow>를 시작으로 2013년 <FREEDOMOF OBLIVION> 전시를 비롯하여 총 12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환기미술관의 <젊은 작가들의 한국 현대 미술의 검증과 모색>전, 뉴욕의2x13Gallery <Surface Tension>전과 서울 오픈 아트페어, 부산비엔날레 특별전 등을 포함해 70여회의 그룹전 및 국제전에 참여하였다.신 미술대전 대상, 현대 판화가 협회 공모전 우수상,2004 Manhattan Arts 국제공모전 우수상 및 12여회의 수상경력과 함께 현재홍익 판화가 협회, 현대 판화가 협회와 한국 조형 예술학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출전 /
김성호, '망각으로부터 탈주하는 비평적 회화 혹은 '시적 산문'(서유정전, 2013. 12. 20-2014. 1. 4. 갤러리예담컨템포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