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무사 터를 주차장 만든다는
정부 발상은 정신나간 것

요즘 서울 사간동 일대를 걷다 보면 많은 외국인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지도 하나 들고 서울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간혹 묻는다. "미술관이 어디 있느냐"고. 그곳이 '미술관 거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길지 않은 이 거리 두세 곳에 동네 지도와 함께 '미술관 거리'라는 동판이 붙어 있다. 그런데 실상 이 동네엔 상업화랑은 있어도 미술관은 없다.

한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국립 미술관을 보는 것이 정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관광지도에서는 국립 미술관을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사립 미술관인 삼성미술관 리움을 방문한다. 리움이 국가대표 미술관인 셈으로, 한 기업이 국가를 대신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국립현대미술관은 경기도 과천에 있다. 그나마 교통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산골짜기에 있어 지도를 펼쳐 놓아도 아는 사람이나 찾을 수 있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대한민국은 수도에 국립현대미술관 하나 없는 이상한 나라가 되고 만다. 이렇게 경우 없고 낯 뜨거운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곳이 '선진 한국'의 현실이다.

국립 미술관이 중요한 것은 단지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는 곳이라서가 아니다. 미술관은 한 나라의 정체성과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총체적으로 종합해서 보여주는 곳이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독특한 역사관과 세계관이 반영된 미술품을 통해 '우리'를 그들에게 드러내는 곳이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형편이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나라에서도 국립 미술관은 도심 한복판에 두고 있다. 또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나라들이 형편이 조금 나아지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도심에 국립 미술관을 세우거나, 기왕에 있던 미술관을 개·보수하고 확장하는 일이다. 아일랜드, 몽골, 태국 등이 경제형편이 나아지면서 나라의 격을 높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나선 것이 한 예다. 사정이 이런데, 서울에 국립 미술관이 없다는 사실은 말로는 문화 선진국임을 외치면서 스스로 미개하고 무지한 국가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술관은 도시의 브랜드 가치와 파워를 높이는 기능을 하고 때로는 그 도시를 상징하는 심벌이 되기도 한다. '런던' 하면 테이트 모던, '스페인 빌바오' 하면 구겐하임이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리고 미술관은 대표적인 굴뚝 없는 산업으로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돈도 벌어들이는 관광산업의 거점이 된다.

요즘 서울시가 열심히 '디자인 서울'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화장'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틀'을 고치는 것이다. 미술관은 도시를 재생시키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된다. 그 주변에 억지가 아닌 자생적인 문화벨트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설은 문화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까닭에 지역 상권을 활성화시킨다.

서울에 변변한 국립 미술관 하나 없는 상황에서, 최근 정부는 사간동의 국군 기무사 부지를 경복궁 로비 겸 주차장으로 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기무사 부지는 화랑이 즐비한 사간동 거리 한복판에 있다. 그곳에 미술관을 세우자는 미술계의 오랜 염원이 쇠귀에 경 읽기가 돼 버린 것이다.

광화문 일대에 줄을 긋고 '국가 상징거리'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해서 저절로 '국가 상징거리'가 형성될 리 없다. 기무사 부지에 국립미술관부터 세워야 한다. 그러면 그곳이 자연스럽게 서울의 상징이 될 것이고, 이런 문화적 결정체들이 쌓이다 보면 '국가 상징거리'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정부가 이성을 되찾았으면 한다.

- 조선일보 2008.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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