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 미술관 운영 전문 인력 40여 명 ‘구조 조정’…
국내 미술관ᆞ박물관 문화의 퇴보 뜻해
▲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
ⓒ시사저널 박은숙
최근에는 미술관의 개념이 진화해 하나의 문화적 환경이며, 사회교육기관인 동시에 학술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요구받는다. 이는 유네스코 산하의 세계 박물관협의회(ICOM)가 1974년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채택한 박물관헌장의 규정에도 잘 나타나 있다. “뮤지엄이란, 수집품의 보존과 진열 등 단순한 기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장 미술품과 역사적 유물 자료들을 깊이 연구하고, 그 문화적·예술적 가치와 내용을 잘 이해해야 하며 관람자들의 심리적·정신적 기쁨과 사회교육에 효과적으로 이바지하도록 전시하고 관리하는 항구적 시설이다. 현대미술관의 경우에는 미술관의 한 특징적인 상황인 퍼포먼스의 연극적·음악적·체험적 작품도 마땅히 포함된다.”글의 들머리에서 이렇게 장황하게 미술관·박물관의 원칙을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들에게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단순하게 전시를 하는 기관으로 잘못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술관·박물관에 대한 일반 국민과 정치인들, 공직자들의 부박한 인식에도 수준 높은 미술관 문화, 박물관 문화, 즉 뮤지올로지와 뮤제오그라피를 실천해온 삼성미술관에서 씁쓸한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지난 7월31일자로 수년간 호암갤러리, 호암미술관, 삼성미술관을 거치면서 일해온 40여명이라는 적잖은 숫자의 뮤지엄 프로페셔널들이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니 그만두었다기보다는 해직당했다고 한다. 많은 뮤지엄의 전문가들이 일거에 직장을 잃어야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런 전문 인력의 해고가 일련의 구조 조정 차원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과연 구조 조정 대상의 0순위로 삼성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을 이끌어온 문화재단이 타깃이 된 것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간 괄목할 만한 활동과 소장품 수집 그리고 해외 어느 곳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미술관 활동으로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한몸에 받아왔던 삼성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의 구조 조정 소식은 우리나라 미술관·박물관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사실 삼성이 오늘날 다국적 기업으로, 또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삼성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과 육성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 운영이 크게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문화예술을 통해 그들의,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고 있다는 사실은 타 기업들을 자극해서 적극적인 사회 공헌에 나서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유물과 미술품들
삼성미술관을 서울 이태원의 기업 총수 집앞에 세웠을 때도 일부에서 하필이면 왜 자신의 집 앞이냐, 공공성이 부족한 것 아니냐 하며 일반 공개라는 공익성을 추구해야 할 미술관이 사적인 공간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적지않게 나왔음에도 많은 시민들은 전화를 걸어예약을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 대중교통도 좋지 않은 남산 밑 이태원까지 품을 들여 방문했다. 그리고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한 우리 미술관이 생겼다고 기뻐하면서 삼성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일부에서 나오는 삼성에 대한 비난과 지적에도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국민은 ‘배고픈 것은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하는’ 국민성을 탓하며 누구 할 것 없이 삼성의 원군이 되고 보디가드가 되어주었다. 비자금을 조성한 것은 잘못된 일이나 그나마 비자금으로 정치자금을 주어 헛된 곳에 돈을 낭비하느니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들을 소장하는 데 사용한 것이 차라리 낫다는 의견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로 삼성의 문화 마인드에 동조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각종 사건으로 얼룩진 삼성의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문화재단과 미술관·박물관에서 묵묵하게 일해온 큐레이터, 콘서베이터, 레지스트라 등등 뮤지엄 프로페셔널들을 단칼에 내쳤다는 사실을 보면서 아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미술관·박물관을 운영할 전문 인력을 내쳤다는 것은 미술관·박물관의 문을 닫으려는 의도가 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다. 당분간 기획 전시를 하지 않고 상설 전시만으로 운영하겠다는 말도 들리는데 이는 미술관의 활동을 반만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전문 인력이 없는 창고에서 잠을 자야 할 유물과 미술품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졸지에 엄마를 잃은 꼴이 된 유물이나 작품들이 제대로 관리되고 유지될 수 있을까. 병이라도 나면 누가 치료해줄 것인가. 때때로 상태를 점검하고 아픈 곳을 찾아내는 진찰은 누가 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해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미술관·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이나 작품은 미술관·박물관 설립자의 소유라기보다는 전국민과 나라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설립해서 사회에 공여한 자산가나 기업가들이 존경받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사립학교를 세워 민족의 동량들을 길러낸독지가들처럼, 미술관·박물관은 개인이 설립한 사립 시설이라 할지라도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이다. 또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각종 세금을 유예해주고, 적으나마 공익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외국의 대기업들이 건립해서 운영하는 미술관·박물관과 비교해보면 삼성의 미술관·박물관을 통한 사회 공헌, 기여는 족탈불급이다. 여러 차례 지적이 있어왔지만 삼성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은 철저하게 가족 중심으로 운영되어왔다. 형식적으로는 공적인 공공재로서의 미술관·박물관을 표방했지만 사실 그 운영의 주체와 작품의 소장 등 주요 정책 결정은 기업 총수의 부인이 관장해왔다. 그리고 그동생이 수석 부관장으로 일해왔다. 물론 미술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관장직을 수행하는 데 무리가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무리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술을 전공한 것과 뮤지올로지, 미술관 경영은 같은 것 같지만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이나 미국 또는 일본 등 많은 미술관·박물관을 설립한 대기업의 총수나 가족들이 관장을 맡는 일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어디에 있나
일본의 중요한 대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문화에 투자하고 지원한다. 적어도 자신이 기업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한 방편으로 미술관·박물관을 건립해서 사회와 국민에게 공유할 기회를 준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타이어 회사인 브리지스톤은 그들의 사옥이 있는 도쿄의 긴자에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설립자가 태어난 후쿠오카인근의 조그만 소도시인 쓰루메라는 곳에서도 브리지스톤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작은 마을에 미술관을 세워 보답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미술품들을 보관하고 정리하고 연구하는 일과 미술관을 운영하는 일이 작은 도시로서는 버거울 것이 자명한 터. 이에 브리지스톤 사는 이시바시(石橋)문화재단을 세워 미술관 운영을 돕고 있다. 이처럼 진정한 기부야말로 일본의 재벌들이 욕먹지 않고 존경받는 이유라 할 것이다.
삼성미술관·호암미술관의 최근 행보를 보면 이런 전례를 잘 알 텐데 왜 그런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는지 알 도리가 없다. 물론 많은 재원을 들여가며 미술관·박물관을 운영해온 삼성에 대해 그 공은 무시하고 이면만 들추고 지적하는 세태가 원망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삼성이라는 규모에 비해 최근 일련의 사태는 성급한 행동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사랑이 크면 배신감도 큰 법, 앞으로도 삼성을 우리의 기업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시사저널 982호 2008. 8. 19
(사족)
40여명이 해직되었다는 것은 삼성의 각종 재단 즉 문화재단, 장학재단, 복지재단을 포함한 숫자입니다. 미술관 관련 해직인사는 총 13명이며 관계사로 전출을 간 경우가 5명해서 총 18명이 일자리를 잃거나(희망퇴직했다고 삼성측에서는 밝힘) 자리를 옮겼다고 합니다.
일본 후쿠오카인근의 소도시는 쓰루미가 아니고 구루메 시로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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