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 - 10.19 토농-레-방 샤펠 드 라 비지타시옹
프랑스 동부 론 알프(Rhone-Alpes) 지역에 위치한 도시 토농-레-방(Thonon-les-Bains)시가 17세기에 세워진 예배당, 샤펠 드 라 비지타시옹(Chapelle de la Visitation)을 현대 미술관으로 재건축하고, 그 개관 기념전으로 프랑스의 피규라시옹 나라티브(Figuration narrative)를 대표하는 화가 에로(Erro)를 초대했다.
1932년 아일랜드 출신으로 20대 중반부터 파리에 정착한 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에로는 말 그대로 잡식성 이미지 수집가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끌어 모은 잡다한 이미지들, 저급문화와 고급문화를 넘나들고 시간과 공간의 통사적 구분이나 위계 질서가 무의미한 이미지들이 작업의 기초를 이룬다. 정치인, 역사적 인물, 만화 영화와 광고의 주인공, 명화 속의 인물들이나 역사적 순간을 장식했던 주요한 사회적 사건들 등, 현실과 가상이 어지럽게 공존하는 이 세계는 ‘스펙타클 사회’가 끝없이 토해내는 이미지들의 사탕발림과 기만, 혹은 폭력에 대한 조롱이자 비판이다. 우스꽝스럽지만 그래서 독설적이고 우상파괴적이다.
앵그르, 들라크루아, 피카소 등 거장들의 작품들을 패러디하거나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차용하면서, ‘그림은 낡은 것으로 새 것을 만드는 장’이라고 했던 그의 예술가적 모토는 ‘독창성’과 ‘원본성’을 위반하는 키치(kitsch)의 어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저급한’ 대중문화의 코드를 그대로 활용하고 있는 ‘화려하고 유치한’ 그림들의 표면에 흐르는 것은 키치다.
그러나 그 화려한 천연색 무지개 빛 표면은 순진하게 유토피아를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 사회와 인간 존재의 모순과 혼돈을 더 극명하게 제시함으로써 마취된 의식을 자극하는‘각성된 키치’ 라고 할 수 있다.

제프 쿤스 베르사이유전
9.10 - 12.14 베르사이유 성
긴 여름 바캉스를 끝내고 본격적인 전시 시즌이 될 올 가을은 아마도 제프 쿤스(Jeff Koons)가 떠들썩하게 장식하지 않을까 싶다. 아내 치치올리나(Cicciolin)와의 포르노그래픽한 사진 작업으로나 각종 경매에서 기록하는 최고가의 갱신이나 어딜 가나 화제를 모으는 작가임에는 틀림 없지만, 전시 장소가 이번엔 매우 특별하기에 더 그렇다. 몇 년 전부터 프랑스는 현대미술에 대한 문화 정책의 하나로 과거와 전통을 현대와 혁신과 접목하는 전시들을 기획해오고 있다. 루브르박물관에서의 ‘대위(Contrepoint)’나 오르세미술관의 ‘대응(Correspondance)’이란 정기 테마전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고전’미술에 상응하는 현대 미술을 연결해서 현대 미술에 대한 접근을 쉽고 편하게 만들자는 의도이다. 하지만 미술관도 아닌 베르사이유에서, ‘앙팡 테리블’로 통하는 제프 쿤스의 전시라니, 그 발상 자체만 해도 획기적이다. 현대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 또 그만큼 광고 효과도 대단한 것 같다.
전 문화부장관이었던 장-자크 아이 야공(Jean-Jacques Aillagon)이 이 아이디어를 내놓은 장본인이다. 현재 베르사이유 궁의 디렉터로 있는 그는 프랑스의 서열 세 번째에 해당하는 재력가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의 콜렉션이 있는 베니스의 팔라조 그라시(Palazzo Grassi)의 관장을 역임했었다. 사실 프랑수아 피노는 제프 쿤스의 작품들을 가장 많이 사모은 대표적인 소장가다. 이번에 전시될 작품들 상당수가 그의 콜렉션에서 빌려온 것들이고, 2백만 유로가 소요되는 전시 비용 대부분을 후원한 사람도 프랑수아 피노이다. 베르샤이유 궁에서의 전시에는 이런 내막이 있다.

제프 쿤스의 작품들은 그 유명한 ‘거울의 방’을 비롯해 왕과 왕비의 방 등에 설치될 예정인데, 특히 르 브룅이나 베로네즈 등과 같은 클래식한 작품들과 제프 쿤스의 <하트>, <가재>, <강아지>, <토끼> 등등의 키치적 작품들과의 대면은 시각적인 충격을 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대치가 단순한 충격만을 겨냥했다고 하기엔 나름대로 공통되는 요소들이 있다.
제프쿤스의 네오팝은 바로크 미술과 함께 시각적 효과, 장식적 요소, 화려하고 값비싼 재료들의 선호 등 공통되는 미적 취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7세기의 바로크와 21세기의 ‘신바로크’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