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비아스 레베르거
6.28 - 9.21 쾰른 루드비히미술관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관에 인터 액티브 등을 설치했었고, 199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전에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계단 강의실 앞의 빈 공간을 붉은색 카페트를 깔아 여름날의 젊음을 발산하는 빠로 바꾸어 놓기도 한 독일 작가 토비아스 레베르거(1966- ). 약 70미터 길이의 긴 통로와 같은 루드비히미술관의 특별 전시공간에 그는 지난 15년간 제작해온 작업들 중 선별된 40여 점의 작품을 보여준다. 여느 전시와 다른 점이라면, 유명 가구 디자이너들을 생각나게 하는 의자들, 의족, 의수들, 그의 꽃병초상들, 종이를 접어 만든 종이 꽃으로 장식된 꽃나무, 플렉시 유리로 만든 작업실 문과 오브제들, 일상의 재료로 만든 전등의 갓들, 비디오가 놓인 가구 등등, 즉 건축과 디자인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신의 옛 작품들을 제작년도를 무시한 채 전시공간의 한 가운데에 나래비로 세워 놓았다. 그리고 전시장 입구에서 보면 왼쪽에 있는 벽을 따라 여러 개의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설치해놓고 전시장 가운데에 세워놓은 작품들을 비춘다. 그 강렬한 빛을 받은 다양한 모양과 재료의 작품들은 반대편 벽면에 상상을 할 수 없었던 새롭고 화려한 빛 그림자를 늘어뜨려 놓는다. 거기, 빛과 색 그림자로 형성된 그 그림 위에 토비아스 레베르거는 또 색과 선을 덧 그려 넣어 벽화를 완성시켰다. 비록 불빛이 없어진다면 벽화의 대부분이 사라질테지만, 강한 조명을 받고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그의 삼차원적인 옛 작품들, 빛과 그림자에 의해 생성된 이차원적인 평면작업, 그리고 드로잉으로 제작된 벽화가 복도와 같이 긴 전시공간을 가득 메운다.

작업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출발하며 어디로 가는지를 고민한다는 레베르거는 그래서도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따질 필요가 없는 벽화”란 전시제목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자신의 작품을 해명해 주고 있다. 회고전의 성격을 갖으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새로운 설치작품으로 선을 보이는 이 전시. 여기에 나열된 그의 옛 작품들은 개개의 작품들이 소지한 의미를 따지기 이전에 새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작업재료로서의 기능을 띠고 있는지를 먼저 고려한 후에 선별된 것이라고 레베르거는 고백한다. 그러니까 보통은 예술작품 자체가 그 목적이지만, 여기에서는 그와 동시에 목적을 위한 재료가 된 것이다. 전시가 어떠냐는 미술관장 카스퍼 쾨니히의 질문에 정신이 혼란스럽다고 하니, 그럼 됐네 한다.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지……





히로시 스기모토
7.4 - 10.5 베를린 노이에나치오날 갤러리


70년대 초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사진을 공부하기 시작한, 일본 사진작가 히로시 스기모토(1948- )는 그 이래로 30년이 넘도록 흑백필름으로만 사진작품을 만들며, 아직도 1800년대 말에 제작된 대형카메라로 작업을 한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이 태고적 선사인들이 보았던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란 화두로 시작된 그의 작업고민은 이미 80년경부터 20년이 넘도록 각 대륙에서 포착된 150여 점의 <바다풍경> 이라는 작품들과 함께 시원하게 해결된다. 하루를 여는 안개가 자욱한 지중해이던지, 석양을 삼켜버렸기에 칠흙 같이 캄캄해서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수평선을 알아차릴 수 없는 남태평양의 모습이던지, 영국해안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이던지, 하늘과 바다를 1대 1로 나누는 그 수평선과 그 흔적은 전시장을 가로지르며 한 선으로 연결된다. 하늘과 바다만을 보여주는 이 흑백사진들 앞으로 다가가면 잔잔히 이는 바다의 물결이 극사실의 모습으로 눈 앞에 펼쳐지기까지 한다.




스기모토는 또한 1975년에서 2001년까지 미국의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장면을 한 장의 사진에 담기도 했다. 그러니까 영화가 시작되어 마칠 때까지의 시간을 카메라의 셔터속도와 일치하도록 설정해 놓아 영화 속의 모든 장면들은 영화관의 시리즈 사진 속에 보이는 흰색의 은막 속에 모두 저장해 넣은 것이다. 흐르는 시간만이 아니라 스기모토는 또 흘러간 역사도 그의 사진에 담는데, 런던 투쏘부인의 왁스박물관을 찾아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부인들, 히로히토 일본왕, 카스트로, 다이애나비의 초상사진를 제작한다. 화가가 그린 초상화나 초상사진을 토대로 제작된 왁스조각들은 다시 스기모토에 의해서 다시 초상사진으로 태어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진들 속의 인물들은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품제작에서부터 전시설치까지 치밀할 정도의 계획을 직접 세워서 일을 추진하는 스기모토. “내 관심은 인간기억의 가장 오래된 층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시각화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의 작업동기를 밝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