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그 서문〕

박경진전 (1편)

 

인재(人災)를 성찰하는 회화 - 반경 0km 혹은 좌표0000

 

 

김성호(미술평론가)

 

박경진의 회화는 재난, 특히 인재와 그것이 유발하는 사회, 심리적 영역을 탐구한다. 지진, 해일과 같은 자연재해 또한 전쟁, 테러, 사건 사고와 같은 사회적 재난처럼 구조, 대비 소홀로 이내 인재로 변환되기 쉽다는 점에서, 그것들로부터 야기된 공포, 불안, 혼란은 자못 심대하다. 인재란 우리가 터너(William Turner)난파선, 제리코(Théodore Géricault)메두사의 뗏목의 경우처럼 자연 재해의 공포 이면에서 찾아졌던 자연에 대한 숭고(sublime)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재난이기 보다는 인재를 탐구하는 그의 회화는 차라리 뉴욕의 9.11테러 혹은 후쿠시마의 대지진과 쓰나미를 잇는 원전 폭발의 공포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으로부터 출발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 만큼, 그의 회화에 드러난 재난은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못한 채 현재를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근접한 과거의 유산으로부터 발원한다. 그런 면에서 박경진의 회화에 나타난 재난이란 공동체의 삶을 일순간에 붕괴시키는 폭압적 사건에 대한 결코 망각되지 못하는 집단 기억의 귀환이며, 집단 구성원들의 심층에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그들의 삶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악몽 같은 현실의 재생이 된다.

박경진이 작가노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후쿠시마 원전 폭발은, “미디어를 통해 인재(人災)와 관련한 사건 사고를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듯 허구적으로 받아들이던 태도로부터 자신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를 초래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에게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구체화시킨 것은 최근의 세월호 침몰 사건이었다. 허구와 현실이 혼재된 채 미디어를 통해 받아들였던 재난이 인재라는 현실로 확연히 인식되게 만든 두 사건은 박경진의 최근 회화를 인재 시리즈에 골몰하게 만드는 주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재난 미술 - 예술의 사회학과 관계 미학

인재 시리즈에 천착하기 이전의 박경진의 작업은 자본주의 구조와 사회적 현상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드러내는 특정 인물군의 집단초상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졸업식, 29연대 훈련병,가을신상패션쇼, 모터쇼와 같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교복, 군복, 유니폼 속에서 위계화된 집단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정면성, 전신상과 같이 전형화된 유형학(typology)적 초상은, 제 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있는 개별자들을 익명화시켜 군상 속으로 사라지게 만든다. 기념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몸에 재배치되는 이러한 사회적 계보학(genealogy)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은폐한 채, 작가의 말처럼 패키지 된 추억에 대한 소비와 더불어 일시적 추억의 열람만을 가능하게 할 뿐이다.

우리에게 집단화된 기억을 공유하게 만드는 발원지는 일련의 정치, 사회적 사건들이다. 그것의 본질은 대개 은폐되어 있지만,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본질적 국면을 더듬어 추적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인간 사이의 상호관계성을 읽어낸다. 일련의 사건이 거대 사고이거나 인재일 경우는 그 파장이란 자못 심각하다. 기존의 사회적 구조를 재편할 필요성이나 맥락을 재질서해야만 할 당위성마저 제기되는 것이다.

인재를 회화적 주제로 탐구하는 박경진의 작품에는 이러한 사회학의 지평이 펼쳐져 있다. 예술이 사회를 대면하는 루카치(György Lukács) 류의 예술사회학, 혹은 예술의 사회 참여적 역할을 모색하는 부리오((Nicolas Bourriaud)식의 역동적인 관계미학(Esthétique relationnelle)’의 관점이 담겨져 있다. 그의 작품은 실제의 정치에 의해서는 결코 성취될 수 없는 목적점을 지향하는 랑시에르(Jacques Ranciere)식의 정치적 예술혹은 비판적 예술의 메타정치와 같은 행보를 이어나가기조차 한다. 박경진의 예술을 통한 비판적 발언은 사회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저항을 통한 변혁을 꾀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의 작품은 불가항력의 천재지변과 같은 1차적 재난을 뒤따르는 인재로서의 2차적 재난, 그것을 은폐하는 권력의 폭압과 미디어의 음모, 그리고 대중 스스로 그들에게 은폐된 채널을 복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인간과 사회의 상호작용의 관계성과 그것을 탐구하는 예술의 역할의 효용성에 대한 문제 제기라 할 것이다

 


박경진, 반경 20Km #.6, oil on canvas, 50x60.5cm, 2013

 

그의 시리즈 작품 반경 20km반경 0km에는 이러한 이행성이 잘 드러나 있다. 전자는 박경진이 인재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야기한 재난 원점(原點)’인 동시에 접근 금지 구역을 의미한다. 이것은 물리적 공간임과 동시에 삶과 죽음이 존재와 부재가 교차하고 있는 상징적인 관계 공간이다. 인간의 접근이 금지된 후쿠시마의 제1핵발전소 20킬로미터 이내 공간은 사람이 살지 않는 부재의 공간이자, 구출되지 못한 가축들이 배회하는 유배지이기도 하다. 지진과 쓰나미로 폐허가 된 건물, 폐가와 운명을 함께 한 동물의 주검, 방사능 오염수와 원전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흰색 방호복으로 중무장한 사람들, 스산한 풍경으로 비어있는 대형마트 앞을 떠도는 소들, 아스팔트 위를 방황하는 돼지 떼... 그는 일본 원전 사고를 보도한 각종 미디어의 사진들을 참조해서 캔버스 위에 팩트를 재현하고 현재적 역사를 기록한다. 그런 점에서 반경 20km는 자신의 작품의 메시지가 관객과 맺고 있는 상징적 관계 지점이기도 하다.

한편, 반경 0km시리즈 작품들은 현실의 팩트(fact)와 구성한 사건이라는 픽션(fiction)이 한데 어우러진 것들이다. 이 시리즈물은 재난을 대면한 예술가의 재해석이 전면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박경진의 작품세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실제로 일어났던 인재들, 예를 들어 미국의 9.11테러, 보스턴마라톤 폭탄 테러, 한국의 구제역 사건, 용산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의 재난 이미지들이 혼성적으로 교차하는 듯한 화면은 원래의 역사적 시공간을 탈각시키고 허구의 시공간 속에 들어와 자리 잡는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