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탈로그 서문〕

박경진전 (2편)

 

인재(人災)를 성찰하는 회화 - 반경 0km 혹은 좌표0000

 

 

김성호(미술평론가)

 

 

-1편에 이어-

 


박경진, ​반경 0Km #.9, oil on canvas, 130x166cm, 2014



그것은 반경 0km’라는 이름으로 표상된다. 핵무기가 폭발한 피폭 중심지를 지칭하는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라는 군사용어가 9.11테러의 발생 원점을 의미하면서 사용된 것처럼 박경진의 반경 0km’는 모든 인재의 발생 원점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 것이다. 이것을 x축과 y축이 교차하는 데카르트좌표로 표기하면 p(0,0), 3차원 공간좌표로 표기하면 p(0,0,0)이 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경선을 로 설정하고, 적도를 지나는 위선을 로 설정한 구분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그저 사건 발생의 원점으로서의 좌표 00이자, 좌표000인 것이다. 여기에 시간을 부여하는 t축을 결합시킨 불가능한 우리의 좌표 p(0,0,0,0)은 박경진의 반경 0km’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다.

 

이것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인재들이 우리 인류의 삶의 지층에 아직 끝나지 않은 상흔(傷痕)으로서의 짙은 트라우마(trauma)를 남겼다는 점에서, 그것은 오늘날의 인재 원점에 집결되어 다시 유령처럼 출현한다. 천재지변이야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인재란 분명코 치유되어야만 할 오명의 유산이다. 번화한 도시로 뛰쳐나온 소들, 집단 주검을 검안하는 방호복의 사람, 생존의 몸부림이 역력한 아우성치는 사람들, 화염에 휩싸인 재난 앞에서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실재의 사건을 형상화한 것이 아님에도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분명 시뮬라크르라는 허구일진대 작가 박경진이 만들어내는 리얼리티의 환영을 입고 우리의 현실 속으로 뛰어든다. 구체적 묘사가 생략된 미완성적 화면, 넓은 붓질의 즉발적 표현 언어는 이미 일어났지만, 일어나서는 안 될 인재라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효율적으로 담아내면서, 우리에게 분노, 충격, 슬픔을 응축시킨 인재 원점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을 요청한다.

 

출전/

김성호, "인재(人災)를 성찰하는 회화 - 반경 0km 혹은 좌표0000", 카탈로그 서문,  (박경진전, 2014 OCI YOUNG CREATIVES, 6. 12~7. 9, OCI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