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가론/ 공구 작가론)
내면적 원형을 찾아나서는 파사쥬의 알레고리
김성호(미술평론가)
통로 : 구멍의 내적 미메시스와 메타포
그의 사진에는 하나의 구멍이 있다. 그것은 크든, 작든 그의 사진을 가득 채운다. 그것은 인화지 위에 뚫린 실제의 구멍이 아니지만, 2차원 평면의 납작한 사진의 표면을 주저 없이 3차원으로 공간화 시킨다. 그것은 표면상으로 사진의 재현 효과 때문이지만, 공구의 사진에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메타포(metaphor)의 차원에서 작동한다.
생각해보라. 미메시스(mimesis)의 오랜 강령을 실천해오던 회화의 노동을 일순간에 빼앗으며 등장한 사진의 '침탈의 열매'는 재현(representation)의 언어였다. 그것은 동시에 오늘날 사진이 탈주해야 할 딜레마이자 업보이기도 하다. 작가 공구는 이러한 사진의 딜레마를,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이후 이미지를 컴퓨터로 불러와 무수한 리터칭을 거치는 메이킹포토(making photo)의 방법론으로 접근하면서, 일정부분 극복한다. 그도 그럴 것이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피사체의 변주, 재현으로부터 표현으로의 전환 뿐 아니라, 포토몽타주의 허상을 진짜처럼 위장하는 등 대상의 실재를 왜곡하면서 사진으로부터 재현의 언어를 천연덕스럽게 탈주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의 납작한 사진에 자리한 구멍을 3차원으로 공간화 시키는 지점은 근본적으로 메타포의 차원으로부터 유발된다. 그것은 물리적 변환의 외적 차원이 아닌 비물리적 변환의 내적 차원이다. 또한 그것은 외적 미메시스로부터 탈주한 내적 미메시스이기도 하다. 벤야민에게서 미메시스란 인간이 자신과 환경 사이에서 '닮음(Ähnlichkeit)‘을 만들어내고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 소통의 의미를 창출하는 인간학적 능력에 관한 이름이다. 이 지점은 공구의 사진에 관한 우리의 논의인 메타포와 만나게 한다.
'A는 B다’는 식의 동류로의 전이(轉移), 유사성에 근거한 전화(轉化), 의미의 전용(轉用)을 지칭하는 메타포는 공구의 사진에 나타난 구멍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그것은 '구멍'의 3차원적 전화가 야기하는 '통로'를 의미함과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유발되는 모든 개념들과 공유한다. 사찰의 ‘누하진입(樓下進入)’을 포착한 사진들(부석사, 금산사), 문지방이라 이름 붙인 사진들(부석사, 환구단, 승가사 일주문), 자연의 풍파에 의해 저절로 생겨난 동굴 사진들(개암사 원효굴, 용문굴)에서 드러난 구멍과 통로는 그것의 메타포들을 소환한다. 차안(此岸)과 피안(彼岸) 사이의 중간계(intermediate world), 주체와 타자 사이의 사이 공간(interspace), 주체와 대상 사이의 접점(interface)이 그것들이다. 주지하듯이 이것들의 용례는 제각각이지만, 그 개념은 한 주체가 타자, 대상과 만나는 다양한 방식을 두루 아우른다.
공구의 사진에서 나타나는 이것들은 이종(異種)의 모든 경계면에 대한 지칭이자 사유임과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의미론을 함유한다. 공구의 조용한 사진에서는 이러한 전환(轉換)의 메타포가 수시로 발생한다. 예를 들어 어두운 누하진입의 통로 속으로 들어서는 그의 사진은 '충만한 어둠/부재한 빛'과 같은 지속적 전환을 우리에게 경험하게 만든다. 따라서 그의 사진에서 구멍으로부터 덩치를 키운 통로의 메타포는 정지체로 존재하기 보다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운동체로 생성하면서, 그의 조용한 사진을 꿈틀거리는 무엇으로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공구 작

공구 작

공구 작

공구 작
문지방 : 파사쥬의 알레고리와 내면적 원형의 거주지
작가 공구는 자신의 사진에 나타난 '구멍→통로'라는 전환의 메타포를 벤야민의 쉬벨러(Schwelle)'로 풀이한다. 이 독일어는 주로 문지방, 문턱, 혹은 철도의 침목, 횡목을 지칭하지만, 경계, 접점, 입구로 번역되기도 한다. 벤야민의 쉬벨러에 대한 번역어로 공구가 취한 것은 '문지방'이지만, 그것의 구체적 의미는 경계와 접점이다. 벤야민은 이 쉬벨러를 '이 쪽도 아니고 저 쪽도 아니지만, 이 쪽이기도 하고, 저 쪽이기도 한 영역'으로 고찰한다. 벤야민이 쉬벨러를 고찰하게 된 계기는 19세기 파리의 파사쥬(passage)로부터였다. 그것은 연속되는 아치와 기둥들이 만들어내는 기다란 복도를 지닌 개방형 건축물로 훗날 근대적 쇼핑몰인 아케이드(arcade)로 계승된다. 파사쥬가 불어로 통행, 통과, 통로, 복도를 의미하기도 하듯이, 이것은 실내 공간에 위치하면서도 거리 공간과 연결되어 있는 '사방으로 열린 공간'이다. 그것은 안과 밖이 뒤섞이는 혼성의 공간이자, 경계로 구획된 위계와 질서의 공간을 무너뜨리는 탈구획의 경계 영역이자, 위계와 탈위계를 오고가는 중간 영역이다. 또한 그것은 소비와 교환을 통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매개해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벤야민의 쉬벨러가 파사쥬로 확장하는 만남의 접점임을 확인할 수 있듯이, 공구에게서 구멍, 통로, 문지방은 이러한 벤야민의 만남의 공간이라는 '알레고리적 메타포'에 대한 '사진적 실천'으로 살펴볼 수 있다. 즉 벤야민이 파사쥬로부터 찾아낸 쉬벨러는 ‘A도 아니고 B도 아니지만, A이기도 B이기도 한’ 확정할 수 없는 알레고리이자, 운동하는 경계 영역이라면, 공구의 사진에 나타난 구멍 혹은 통로들은 이러한 벤야민의 알레고리적 메타포를 조형적으로 실천한다고 할 것이다.
공구의 사진이 찾아 나선 탈경계의 영역은 서구의 파사쥬가 아닌 누각 아래를 통과하는 사찰에서의 ‘누하진입’이라는 독특한 설계 구조이다. 그것은 물리적 공간이기 보다는 개념적 공간이며 공간에 작동하는 인간의 행동방식을 동시에 지칭한다. 그곳에서 공구는 벤야민이 찾아낸 쉬벨러 혹은 문지방을 읽어낸다. 어두운 통로 끝 출구에 푸른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거나 인공적이기조차 한 푸른 광채, 노란 광채로 빛나고 있는 그 곳에서 공구는 현대문명 속 인간세계를 읽어낸다. 사찰, 동굴, 환구단에 나타난 구멍 혹은 통로 위에 작가 공구는 벤야민의 문지방이라는 알레고리적 메타포를 얹어내고 만남과 이별, 통합과 해체, 지배와 피지배의 뭉뚱그려진 인간 관계학을 읽어내는 것이다. 본의(원관념)가 숨겨진 채 유의(보조관념)가 표면에 선 이중구조를 알레고리라고 거칠게 정의한다면, 그의 사진에 나타난 문지방에는 거꾸로 읽거나 뒤집어 읽어야 할 알레고리적 메타포로 가득하다고 할 수 있겠다.

공구 작

공구 작
알레고리의 가장 강력한 모티브 중 하나가 ‘사물의 무상함에 대한 통찰을 통해 그것들을 영원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듯이, 작가 공구의 문지방이라는 알레고리적 메타포는 최종적으로 그의 또 다른 관심인 원형(archetype)을 지향한다. 그것은 유물, 유적의 물리적 원형이기보다는 그것들로부터 추출되는 내면적 전통문화원형이자 영원성의 지평이다. 특히 공구의 사진에는 동양의 감각적 문화로서의 원형이 자리한다. 그것은 선운사 석불에서, 상여조각을 포착한 그의 사진에서 감지되는 ‘피안’에서의 구원의 메시지처럼 직관적이고, 비과학적이며 신비적이기조차 하다. 바르트(R. Barthes) 식으로 그것은 풍크툼(punctum)처럼 언어로 해석이 불가해한 직관이 전면에 나선 가운데 작가 공구가 찾아나서는 불가해한 세계이다. 벤야민의 번안인 '문지방' 위에, 작가 공구가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그토록 빛나는 인공의 광채를 부여했던 까닭은, 그의 사진이 내면적 원형의 세계를 찾아나서는 모든 이들에게 ‘길’을 환히 밝혀주는 진실한 안내자로 정초되기를 기대했던 까닭이리라. ●
출전 /
김성호, "내면적 원형을 찾아나서는 파사쥬의 알레고리", 미술과 비평 , 공구 작가론, 2013 겨울호 pp.8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