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밀러의 예술
L'Art de Lee Miller
2008.10.21 - 2009.01.04
주 드 폼므


리 밀러(Lee Miller), 1927년 패션잡지 보그지를 통해 데뷔하면서 당대 가장 아름다운 패션모델이란 찬사를 들었고 스타이켄, 만 레이, 호르스트, 호닝엔 휴네 등 내노라 하는 제일의 사진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줬던‘뮤즈’. 하지만 리 밀러는 자신의 미에 경탄했던 남성 사진가들만큼이나 유명한 사진가가 된다. 스타이켄의 소개로 파리에서 만난 만 레이에게서 사진을 배우면서 사진가로서의 재능을 발견한다. 이때 리 밀러는 파리의 예술계를 드나들면서 아방가르드 미술, 특히 초현실주의 미술을 접한다. 그녀의 사진 가운데 초현실주의적 경향이나 장 콕토의 영화 <시인의 피>에서 조각상을 연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1932년 뉴욕으로 돌아와 문을 연 스튜디오에서 리 밀러는 보그지를 비롯해 광고 에이전시와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화장품 회사 등을 위해 상업 사진을 찍었지만 워너 브라더
스와 연극인을 위한 초상 사진 그리고 스티글리츠가 편집위원으로 있었던 를 위한 사진 작업 등으로 재능 있는 사진가들의‘누벨 바그’대열에 가담하면서 사진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회고전 형식으로 꾸며진 이번 전시는 모델에서 초현실주의자들의 친구이자 조언자를 거쳐 그 자신사진가가 됐던 리밀러의 다양한 예술적 면모를보여준다.

>>Galerie Nationale du Jeu de Paume



세븐티 : 미국 사진의 충격
Seventies. Le choc de la photographie ame'ricaine
2008.10.29 - 2009.01.25
프랑스 국립도서관, 리슐리외 전시관


프랑스 국립 도서관BNF가 사진사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시대로 기록되는 1970년대의 미국 사진 소장품 320여 점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미국의 사진사를 조망한다는 식상한 기획이 아니라 BNF라는 공공 기관이 소장 대상의 미적이고 역사적인 위상과 가치와 관련하여 어떻게 소장품을 형성하고 그 개념을 발전시켰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851년 처음으로 사진을 소장하기 시작한 이래 1968년까지 BNF 컬렉션은 대부분 프랑스 사진가 혹은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는 사진가로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는 외국 작가들, 특히 미국 사진가들에게 컬렉션의 문을 활짝 열게 된다. 이런 변화는 1960년대 중반부터 미술계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 사이 불어 닥친 사진의 열풍, 그것도 미국 사진에 대한 열풍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다이안 아버스를 시작으로 196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BNF의 컬렉션에 들어오게 된 리 프리들랜더, 게리 위노그랜드, 래리 클락, 윌리암 클라인, 두안 마이클, 레 크림스, 빌 오웬스 등은 오랫동안 사진계를 지배해왔던 유럽의 휴머니즘 사진의 전통과 결별하고 각자의 독특하고 도전적인 사진문법을 개발해 냈던 미국의 신세대 사진가들이다. 특히 1971년 MoMA가 기획한 전시‘New Documents’를‘미국의 새로운 사진’이란 새로운 타이틀로 소개한 이후 BNF와 미국 사진가들과의 관계는 꾸준히 발전해왔
고 그 결과 BNF는 3천 점 이상의 미국 사진들을 기증이나 구입의 형태로 소장하게 됐다.

>>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 BnF



폴록과 샤머니즘
Jackson Pollock et le chamanisme
2008.10.15 - 2009.02.15
파리 피나코테크


피나코테크는 미국 모더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추상 표현주의의 근원인 아메리카 인디언의 샤머니즘과 그로부터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아 제작된 폴록의 작업을 소개한다. 아울러 인디언들이 제의식과 일상에 사용됐던 장식적인 오브제들을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폴록의 추상과 반추상 작품들에 끼친 인디언 미술의 영향을 직접 파악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무의식의 세계에 강하게 사로잡혔었고, 무의식을 예술의 기원으로 보기도 했던 폴록에게 있어 샤머니즘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렸던 불안과 공포의 문맥 속에서‘영적인 변형’을 꾀하기 위한 하나의 효과적인 방법으로 나타난다. 그림이, 불행한 유년시절을 보낸 뒤 분노와 불안을 술로 삭히면서 알코올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폴록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었던 분출구였다는 견해는 내적 고통을 꿈이나 환상이란 코드로 해석한 프로이드적 접근이다. 하지만 1930-40년대, 무의식이 비유럽 민족들에 나타나는‘원시적인’반사작용, 혹은‘의식’의 또 다른 형태로 유행처럼 간주됐고, 열 한 살의 나이에 발견한 아메리카 인디언의 원시 미술에 매료됐던 폴록이 이런 생각에 동조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따라서 폴록의‘드리핑’작업은 단순한 추상미술을 넘어서 샤머니즘과 내적으로 연관된 하나의‘상징적인’작품으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Pinacotheque de P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