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비평, 펀치-형님전, 2013. 10. 11~10. 24, 대안공간눈

 

둔탁하지만 매서운 '한 방의 펀치'(2편)

 

김성호(미술평론가)

 


 

'두 번째 모씨'의 완펀치

'두 번째 모씨'의 철조망 작품은 '나의 과거와 우리의 현재 그리고 국가의 미래'에 이르기까지 고민한 '첫 번째 모씨'의 작품에 담긴 주제의식을 이어받으면서도, 현실적 문제의식을 비틀어대는 무엇이다. 그것은 철조망으로 상징되는 한국적 분단 현실과 그것이 드리우는 '형님의 그림자'에 관한 것이다. 그것은 '형님'으로 표상되는 한국의 인맥사회에 대한 비판이 종국에는 분단 현실 속 절대 권력인 '빅브라더'(Big brother)에 대한 냉소, 조롱, 비판에까지 이르게 만든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에서 유래한 빅브라더는 오늘날 분명 실존한다. 한국의 빅브라더 즉 북이든, 남이든, 한반도의 권력자들은 '정전(停戰)'의 결과물인 임시적인 분단 상황을 자신의 권력 야욕을 위해 이용할 뿐만 아니라, 아예 그것을 영원히 고착하려는 야망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이러한 야망을 꿈꾸는 '북쪽의 형님과 남쪽의 누님(혹은 언니)'2013년 현재 대중들에게 '희화화(戱畫化)'된 절대 권력으로서의 '빅브라더'에 관한 은유에 다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 '형님'의 은유가 단지 비판적 성찰의 문제의식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일련의 '불안''공포'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 체험하고 있듯이 자못 심각하기조차 하다.

'두 번째 모씨'가 이러한 작금의 음험한 현실에 한방 먹이는 강력한 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철조망 위에 나이프로 고추장을 먹이는 일이다. 그것은 '두 번째 모씨'가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듯이, '고추장을 언젠가는 꼭 한 번 작업의 재료로 사용하고 싶었다.'고 하는 단순한 표현주의적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고추장은 사회적 메시지를 강력하게 환기시키는 재료로 등극한다. 그것은 '접근 금지'를 표상하는 철조망의 침묵의 언어 위에 속된 말로 한 방의 ''(실제로 고추장에는 물엿이 사용된다.)을 먹이는 일이 된다. 작품에 사용된 붉은 고추장은 피상적으로 날카로운 철조망의 가시에 찔려 배어든 사람의 피를 상기시키면서 분단의 역사를 우리로 하여금 떠올리게 만든다. 나아가 작품에서 경계와 공포의 심리를 촉발하는 붉은 색의 혈흔은 실상 우리가 즐겨먹는 고추장에 다름 아니며, 인위의 장막은 우리가 걷어내야만 할 단순한 사물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아울러 전시 종료 후 철거되어야만 하는 철조망은 우리로 하여금 정전에 종지부를 찍는 통일을 과업을 연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두 번째 모씨'는 전시 후 진행되는 '철조망 철거' 행위 자체를 아예 하나의 프로젝트로 완성시킬 것을 오랫동안 구상해왔다. 남북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휴전선 철책을 걷어내어서 중앙 지역에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놓는다는 상상이 그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한 예술가의 퍼포먼스로만 구상되는 성격을 이미 넘어서 사회적 메시지와 민족적 염원마저 담고 있다. 따라서 그가 설치의 언어로 구사하는 철조망 작업은 휴전선의 철책이라는 것이 더 이상 분단의 상징으로 남기보다는 언젠가는 필히 걷어내야 할 사물에 다름 아니라는 도발적 메시지를 함유한다. 그런 면에서 그것은 남과 북의 빅브라더들에게 한 방 먹이는 강력한 펀치가 되기도 한다.








'세 번째 모씨'의 완펀치

'세 번째 모씨'의 거대한 두상 작품은 아이러니(irony) 그 자체이다. 전시할 공간으로 진입을 시도하다가 문에 걸려 문 입구에 주저앉고 만 까닭이다. 사전적 의미에서,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를 아이러니라고 할 때, 전시장 천장에 매달아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를 구상했던 애초의 '뻔한(?)' 계획이 좌초되면서 엉겁결에 자신의 자리를 찾은 두상 작품은 의외의 강력한 역설과 반어적 메시지를 낳음으로써 아이러니의 미학을 성취한다. 그것이 아이러니의 또 다른 사전적 정의인 '표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실제와 반대되는 뜻의 말을 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문 앞에 머리를 박고 전시장으로 들어서지 못하는 두상은 관객들에게 어떠한 누구도 자신이 지키고 있는 문을 거쳐 전시장으로 들어설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통제의 주체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열과 통제는 근대 이전 뿐 아니라 작금의 현대 사회에서 빅브라더들이 은밀하게 작동시키는 통치의 장치이다. 그것은 모순이자 역설이며 이율배반이지만, 시대의 형님인 빅브라더들에게 그것은 '별 거 아닌 일상'일 뿐이다.




'세 번째 모씨'는 우연성이 개입한 자신의 거대한 두상 작품을 통해서 놀라운 경험을 한다. 스스로의 진입이 좌초된 거대한 두상이 타자들의 진입을 가로막는 통제의 주체로 등장한 아이러니 미학은 실상 부차적인 것이었다. 누군가 문 입구를 버티고 있는 거대한 두상 작품을 한쪽으로 치우고 전시장 안으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작가의 작품에 대한 관객의 훼손의 차원이기 보다는 통제와 간섭에 저항하는 관객의 자유에의 의지와 같은 일면을 확인하는 차원에서의 놀라움이었다. 이 역시 관객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특정한 결과를 통해 출품작의 의미가 탄탄하게 구현되는 아이러니를 성취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세 번째 모씨'의 두상 작품이 제기하는 강력한 펀치는 실상 우연과 관객의 느닷없는 개입을 통해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의 은유와 관계해서 확장해서 말하면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한 방의 펀치는 실상 시대의 지성인들에서보다는 통제할 수 없는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시민과 대중의 강력한 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다.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눈으로 본다면, 신진계층을 억누르는 기득권층의 '상징투쟁(Lutte symbolique)'이란 은밀한 저항인 것이다. 하지만 '세 번째 모씨'가 전시를 통해서 체득한 시민과 대중의 기득권에 대한 투쟁은 결코 상징적이 아니면서, 한편으로는 유쾌한 실제의 무엇이라는 점이다. 피지배자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비가시적 투쟁에 골몰하기 보다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투쟁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 번째 모씨'의 거대한 두상은 오늘날의 형님인 빅브라더에 대항하는 우리의 사회적 실천에 하나의 지침을 제공한다. 빅브라더의 통제와 간섭 그리고 비민주화에 대한 시대의 역행에 저항하되,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그리고 즐겁게 실천하는 저항을 말이다. 그것은 분명코 거대한 두상 작품이 얹게 된 귀중하고도 강력한 메시지의 '한 방의 펀치'라 할 것이다.

 




형님아!

형님으로 표상되는 한국의 인맥사회를 주제의식으로 설정한 이번 전시는, 평균 연령 56세의 중진작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공동 창작'으로 묶어둔 채 익명으로 펼치는 한바탕 예술적 표현의 장이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장이다. 무거운 메시지조차 산뜻하게 담아내는 이들의 표현 의지는 다음처럼 유쾌한 출발지점을 노정한다.

 

'장유유서, 선후배 문화, 연고주의 같은 인맥문화, ‘형님 동생처럼 수직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끼리끼리 문화를 개선하는 일에 예술가들이 관심을 가지면 예술의 영역도 넓어지고 사회도 밝아지고... 재밌지 않겠나? 인맥을 만들어가는 근원인 형님, 동생 문화를 멀리하고 집안의 경조사를 아주 가까운 지인끼리만 최소화시켜 치르는 운동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행동하면 어디 덧나나?'

 

그러나 이러한 낭만적 개선의 의지를 실천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다. 우리의 문화가 세월을 거듭하면서 개선되어야 할 당면문제만을 각인한 채 하나의 유형론으로 고착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전시는 예술가의 몽상적 발언으로만 치부하기에는 곱씹어야 할 사회적 문제의식을 광범위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상기한 작가들의 발언에서도 드러나듯이, 형님이라는 용어가 드러내고 있는 한국의 공동체적 인식의 의미론적 함의와 예술적 메시지를 하나의 주제 아래 수렴하는 이번 전시가 지향하는 바는 명징하다. 인맥문화로 더 나아가 그것의 극대치인 빅브라더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형님'이란 용어의 본질적 위상을 되찾아보면서 다 같이 그 의미를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형님아!'라고 부르는 친밀한 가족적 위상으로만 우리의 사회를 위치시키자는 '묵언의 제안'은 이 전시가 던지는 '둔탁하지만 매서운 마지막 한 방의 펀치'가 된다.

 

출전/

김성호, '둔탁하지만 매서운 한 방의 펀치', 대안공간눈자료집, 2013. 12. 대안공간눈, (펀치-형님전, 2013. 10. 11~10. 24, 대안공간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