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아는가, 이 헐벗은 首都의 부끄러움을
이슈_ 서울에 국립미술관을!
2008년 10월 28일 (화) 11:10:26 윤범모 경원대·미술사 editor@kyosu.net
“대한민국이 출범한 이래 60주년이고 또한 국립현대미술관이 창설되고서 내년이면 40주년을 맞이합니다. 전 세계 선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립 근대미술관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역사가 짧은 미국조차 국립근대미술관인 모마(MoMA; The Museum of Modern Art)를 설립해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미술관으로 육성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근대기 조선왕조의 궁궐인 덕수궁 서관만으로는 절대공간이 부족하므로 동관을 포함해 국립근대미술관으로 출범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 근대미술관과 교류해 덕수궁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국립근대미술관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얼마 전 수도권 소재 미술대학 교수들은 뜻을 모아 ‘덕수궁 석조전 국립근대미술관 창설을 소망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국립근대미술관의 설립문제는 절실했고, 국가대계를 위해서도 꼭 실현시켜야 할 중요사안이었다. 정말 대한민국에 근대미술관이 없다고?
이는 놀랄만한 일이다. 역사를 외면하고 어떻게 미래를 꿈꾸겠다는 것인가. 수도 서울, 불쌍하기 그지없는 대도시이다. 근대미술관은커녕 번듯한 국립미술관 하나 없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서울에 국립미술관 하나 없다니! 그러고도 문화 국가 혹은 문화 서울을 외쳤단 말인가.
‘수도 서울에 미술관을!’ 절규는 언제까지 반복돼야 할까.로마, 파리, 런던, 베를린, 뉴욕, 워싱턴, 베이징, 도쿄 그리고 평양. 이런 도시에서 나는 얼마나 부끄러워했던가. 도심에 미술관이 있는 도시, 그곳은 서울의 모습과 너무나 딴판이었다. 중심가에 미술관이 있는 도시, 이들은 문화역량을 과시하며 외국인을 당당하게 맞이하고 있지 않은가. 해외의 관광객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 그곳은 바로 도심 속의 미술관, 얼마나 멋있는가. 그런데, 진실로 그런데, 서울의 한 복판에는 제대로 된 미술관 하나 없다! 외국인이 쉽게 찾아갈 국립미술관이 없다. 그러면서 문화국가를 외치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에도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곳이 없지 않다. 지난 1969년 경복궁 안에서 개관한 이 미술관은 덕수궁을 거쳐 1986년 과천 산골짜기로 ‘유배’를 갔다. 그야말로 접근성 빵점의 위치에 무슨 요새처럼 똬리를 틀고 ‘독야청청’하고 있다.
서울시내에 미술관을! 얼마 전 ‘기무사에 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결성돼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했다. 정부가 기무사 터에 경복궁 관람객을 위한 주차장 시설 계획 운운하니, 좌시만 할 수 없어 미술인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사실 경복궁 동쪽의 기무사 터는 서울시내에 미술관을 지을 마지막(?) 후보지였다. 하여 오랜 동안 미술인들은 공을 들여 기무사의 이전을 추진했고, 이제 가시적으로 뭔가 열매를 맺으려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미술인의 오랜 숙원은 자칫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닌가, 의구심을 자아내는 작금이다. 기무사 터는 인사동과 가회동 그리고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문화예술 벨트로 바로 미술의 거리에서 중요한 요지이다. 삭막한 공간에 문화예술의 옷을 입혀 서울의 명소로 탈바꿈시키기에 안성맞춤의 適地이다. 그런데, 기무사 터에
미술관을! 이런 소망에 안개가 드리우고 있어 미술계는 답답하기만 하다. 기무사 터의 불투명한 운명에 이어 덕수궁 석조전의 운명 역시 바람 속의 등잔불처럼 위태로운 실정에 빠졌다. 원래 미술관으로 사용하던 석조전, 이 건물은 동관과 서관으로 나누어져 있다. 서관은 지난 1998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으로 근대미술 중심의 전시공간으로 활용 중에 있다. 고궁박물관이 있던 동관은 경복궁으로 이전해 현재 비어 있다.
미술계는 이 동관을 서관과 함께 국립근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해 왔다. 사실 지난 정부 시절 석조전 동서관은 미술관으로 사용하기로 합의된 바 있다.
문화재청 관리의 동관은 수리 보수후 미술관으로 활용한다는 약정서에 서명까지 돼 있다. 하지만 석조전의 미술관화 문제는 위기에 빠지기 시작했다. 일부에서 동관의 대한제국역사관으로 활용하자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석조전은 을미사변 이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고종이 1897년 현재의 덕수궁으로 옮겨 대한제국을 선포한 곳이다.
舊本新參의 광무개혁에 따라 서양식 건물을 궁궐 안에 지어 자주국가로서의 위상을 높이려 한 곳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석조전의 역사성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왕실 관련 전시공간은 이미 국립고궁박물관이 경복궁 안에 있어 중복되는 감도 없지 않다.
석조전은 대한제국과 고종이라는 시대상황을 포함해 근대기에 해당하는 중요 건축미술품이다. 고종의 집무실과 침실 등을 가급적 원형 복원해 대한제국 시대의 의의를 특화시킬 필요가 있다. 다만 전시공간으로 최대 약점은 전시 대상 원품이 희소하다는 점이다. 모조품과 약간의 ‘지루한’ 원품을 나열하고 그친다면 관객으로부터의 외면은 당연한 수순이 된다. 이같은 전시공간의 약점을 보완하고 ‘살아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려면 역시 대중과 함께하는 미술관이 적격이다. 엄연히 대한제국 시대도 근대미술 시기와 겹치기 때문에, 그 시대를 포용한 다양한 시각문화 자료를 대상으로 한 전시공간으로의 활용이 최선의 방법이 아닌가 한다. 전시공간은 다양하면서도 체계적인 소장품을 기본으로 하여 계절마다 성격이 다른 전시를 개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공간이 된다. 한번더 강조한다면, 덕수궁 석조전은 국립근대미술관으로 사용해야 한다. 다만 대한제국과 고종 관련 공간은 복원해 전시공간으로 특화시키고 그 나머지 공간은 미술관으로 사용해 활성화시켜야 한다. 진정 소수의 관객을 선택할 것인가, 다수의 관객을 선택할 것인가, 이러한 활용도의 문제를 숙고해야 한다. 미술관은 대중과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는 기구이다. 그런 곳에 대한제국 시대를 병치시키는 것이 대한제국의 입장에서도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믿는다. 전시공간은 전시공간답게 대중의 입장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개방된 공간으로 늘 거듭나야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애초 정부가 계획했던 것처럼 덕수궁 석조전에 국립근대미술관이 설립되기 바란다.
파리의 루브르미술관은 원래 궁정이었다. 현재 루브르미술관은 파리의 상징처럼 세계 각처에서 몰려오는 관광객의 필수 방문처가 됐다. 국위선양은 물론 실제로 벌어들이는 연간 수입만도 천문학적 숫자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국제간 문화의 경쟁시대다. 국립미술관 하나 없는 서울이라는 도시, 이 오명으로부터 하루 빨리 벗어나는 서울,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
윤범모 경원대·미술사
필자는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미국 뉴욕대 대학원 예술행정학과에서 수학했으며, 한국근대미술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한국근대미술―시대정신과 정체성의 탐구』『미술본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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