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진주 작가론
소소한 내러티브와 ‘해학적 질감’의 농촌풍속화
김성호(미술평론가)
민진주의 작업은 그녀의 체험적 일상으로부터 스멀스멀 배어나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시골에서 성장과정을 거친 그녀에게서 ‘한 농사꾼 가족의 이야기’는 거짓 없는 자신의 바이오그래피임과 동시에 ‘자신의 외부 세계’를 이해하는 한 방편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체험한 소소하고도 다채로운 ‘미시적 서사’는 그녀에게서 날마다 간접 경험할 수밖에 없는 세계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자 ‘거시적 서사’를 엿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창(窓)이 된다.
예를 들어 작가의 어머니가 배나무의 병충해를 막고 튼실한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행하는‘배봉지 싸기’라는 노동은 우리 일상에서 적금, 보험과 같은 미래를 예비하는 준비 작업과 유사해 보인다. 그녀의 부모가 볕 좋은 날 도리깨질과 키질로 깨나 콩을 수확하기 위한 노동은 또 어떠한가? 그것은 도시민의 일상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흘린 저마다 흘린 무수한 땀과 저마다 기울인 힘겨운 노력들과 다를 바 없다.


민진주의 작업은 농부의 눈을 통해 사람들이 저마다 행하는 다양한 노동의 의미를 성찰하게 만든다. 그것도 매우 유쾌한 방식으로 말이다.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농부들의 다양한 노동의 양태는 유쾌할 뿐만 아니라 익살스럽기조차 하다. 예를 들면 도리깨질하기, 어레미치기 또는 콩(깨)털기, 콩(깨)까불리기, 고구마 캐기, 메주 만들기 등 자신의 가족이 동참하는 신성한 노동은, 그 이름의 흥미로움만큼이나, 즉발적 드로잉에 기초한 카툰 이미지 혹은 아동화처럼 매우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녀의 작품에 나타난 왜곡된 인물 형상과 춤추고 있듯이 과장된 동작은 ‘농업의 신성하고도 힘겨운 노동’ 자체를 ‘신명나는 놀이와 즐거운 유희’의 차원으로까지 풀어내려는 작가의 해석과 농업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엿보게 만든다. 나아가 그녀가 그려내는 ‘한 농가의 유쾌하고도 소소한 이야기’는 ‘세상살이’라는 우리의 삶 자체에 대한 희망가(希望歌)로 확장한다.
그녀 작품에서 이러한 희망적이고도 낙천적인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보다 자유분방하게 표현된 인물 혹은 동물이 꿈틀대는 즉흥적이고 표현주의적인 드로잉에 기인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그녀가 ‘실루엣’으로 지칭하는 ‘이미지의 전체적인 외형’과 더불어 그녀가 ‘패턴’이라 언급하는 ‘이미지 내부의 회화적 조형 언어’가 맞부딪히면서 출현한다. 즉 배경과 구분되게 오려내어진 이미지의 단조로운 외형과 그 내부를 채우고 있는 질감 가득한 회화 언어가 서로 부대끼면서 생동감 있는 화면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다. 마블링과 같은 ‘섞음의 포지티브’ 조형언어와 스크래치와 같은 ‘덜어냄의 네거티브’의 그것이 싸움 혹은 대화를 거듭하는 그의 ‘질감이 있는 회화’는 이미지의 이면에 뒤덮는 시멘트로 인해 그 특성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어낸다. 그것은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바탕 위에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이미지들을 올려놓으려는 그녀의 창작을 더욱 구체화하는 방식이 된다. 그것은 척박한 토양으로부터 울긋불긋한 과실을 맺는 농부의 삶에 대한 하나의 비유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녀는 현재, 신진예술가의 딱지를 떼는 어느 날 자신만의 엉뚱하고 해학적인 조형언어로‘현대적 농촌풍속화’를 그리는 작가가 되어 있을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고 소망한다. ‘해학적 질감이 있는 풍속화’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농가의 걸쭉하고도 풋풋한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담(漫談)처럼 회자되면서 언젠가 우리 농촌의 소소한 내러티브들을 한데 모으는 매우 독창적이고도 해학적인 질감의 농촌풍속화가 그녀의 작품에서 등장할 날을 기대해봄직하다. 지금 당장은 창작의 열정과 패기만이 양양한 초짜의 분위기를 그녀의 작품에서 떨쳐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미래의 작가상을 이끌어갈 하나의 ‘힘’이다. 작가 민진주 작품에서 발견되는 매력이란 그 무엇으로부터도 물들지 않으려는 신선함과 더불어 신진이 지니는 무모한 도전 정신에 있으니까 말이다. ●
출전/
김성호, “소소한 내러티브와 ‘해학적 질감’의 농촌풍속화”, (민진주 작가론)『화성시문화재단 신진작가』, 카탈로그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