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강가 나무그늘 아래 태평스럽게 쉬고 있는 우직스러운 이중섭 소 얼굴에 웃음이 피어오르는 것을 우리 모두 상상해 보자. 바로 금년, 소의 해를 맞이하여 우리들의 얼굴에 그 웃음이 피어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술은 적어도 그런 우리들의 마음에 웃음이 가득할 수 있는 역할과 기능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힘은 큰 미술이나 위대한 미술에서만 가증한 것은 아니다. 또 그런 경우에도 최초에는 작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바탕에 절제된 몇 개의 선이나 면만으로 시작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말하자면 작고 하찮게 보이는 그런 표현 속에서도 예술적 힘의 발휘로 말미암아 사람들을 흐뭇한 즐거움으로 가득차게 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심으로 진지하게 표현한 것이라면 마음을 마음이 통하는 데서 오는 즐겁고 흐뭇한 소통의 힘이 저절로 우러나게 될 것이다. 그것에 바탕이 되는 것은 자유로운 정신적인 힘이고 그것이 전제되는 정신적 독립의 힘이라 하겠다.
근본에서 미술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이점의 중요성을 재인식 하자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예술을 말할 때에 알게 모르게 이점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고 그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 것이 관행으로 판을 치고 있다. 그것에 대한 아주 일상적인 예를 가까운데서 찾을 수 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어린이들 그림에 성급한 어른들이 손대는 행위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다. 그래서 상을 타면 무얼 하며 자라나는 그 아이의 막힌 의욕을 어떻게 풀어 줄 것인가.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미술에 관한 한 외형적 풍요로움이 극에 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판촉과 광고를 통해 관람객수 높이기를 지상의 목표로 삼고 행해지는 대형전시는 미술관, 박물관을 가리지 않는다. 앞으로는 그러한 추세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차제에 대형전시 개최로 빚은 공적과 과오를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다. 오랜 시간이 걸려 준비한 기획의 힘으로 작품의 내용과 전시의 형식이 전시제목과 맞아 떨어지는 대형전시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만일 그런 적절한 점을 찾지 못했거나 찾지 않는 전시라면 제대로 배우고 즐기는 전시가 될 수 없는 부실한 사례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그것은 또한 관람객 스스로 발견해서 즐길 수 있는 재미와 권리를 자칫 빼앗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 관람객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기만에 빠지게 되는 후유증을 낳게 될 것이다. 분명히 그 유명한 작품전을 비싼 입장권을 사서 보기는 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실제작품에서 발견한 자기 희열과 달리 그 유명한 작가의 인쇄도판에서 얻은 이미지뿐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한편 미술에 대한 외형적인 풍요로움은 사용하는 매체나 재료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특히 재료 상으로 볼 수 있는 풍요로움은 표현의 욕구를 배가 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바람직한 일이다. 한편 무지개 정도를 알고 그것을 그려대는 아이들에게 12색, 24색의 크레용, 크레파스도 모자라서 수십 가지의 색명이 구별 되어 있는 다색의 화구들을 기회 있을 때 마다 안기는 아이들의 환경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대개의 아이들은 몇 가지 한정된 색을 뽑아 보다가 곧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것도 소비의 미덕에 한 몫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붓이든, 펜이든, 아니면 연필이든, 크레용이든 어릴 적부터 남이 제대로 알아보든, 그렇지 못하든 자기 생각대로 긁적거리고 싶을 때 긁적거리게 내버려 두는 것이 훨씬 성장하는 아이를 위하는 일이 된다. 생각대로 골똘히 그리고 만드는 일의 즐거움을 체득하게 하는 쪽이 훨씬 그 아이를 위해서도 좋고, 결국 사회를 위해서도 건강한 일이 될 것이다. 기호가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차이의 자유, 마음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그런 미술행위는 결국 어른이 되어서 어려움에 부닥치더라도 거기서 위안을 스스로 얻고 스트레스 해소가 되어 어려움을 극복 할 수 있는 용기를 되찾게 될 것이다.
정신위생상 이보다 더 유익한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세계의 직접적인 표현인 아웃사이더의 미술, 특히 정신 지체자들의 절실한 표현도 이러한 미술의 근본 문제를 생각할 때 배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09년 새해는 다윈의 출생 200주년과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에 해당 한다고 한다. 생물, 무생물의 세계를 새롭게 생각하고 생물을 통해 자연과 거기에 사는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생각한 그의 관점에 따라 그 인간과 밀접한 미술행위를 우리 나름대로 근본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Arts & Culture 2009년 1월호
http://artsncult.com/<<
다시읽기
#12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