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강요 당하면 고역
궁합 맞는 그림부터 즐겨야
외부 강의를 나가면 미술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흐뭇해진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열혈 미술팬들마저 그림 보는 법에 대해서 왕초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있다. 2008년에 책을 출간하면서 한 인터넷 서점이 진행한 저자와의 대화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때 대다수 독자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내게 미술 감상법에 관해 질문했다. `저는 가끔 미술관도 다니곤 하는 평범한 여성입니다…저 같은 문외한들은 어떻게 하면 미술작품을 더 잘 감상할 수 있을까요?` `미술 관람을 할 때마다 매번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도록을 사서 읽거나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그림들이 종종 있어요. 어떻게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올바른지요` `그림을 보러 다니는 것은 좋아하지만 그림을 잘 알지는 못해요. 20대 대학생들이 미술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등등.
독자들의 질문에서 드러나듯 한국의 미술 애호가들은 미술 감상에 대해 스스로 초보라고 생각한다. 각 미술관들이 가장 고민하는 부분도 미술에 낯가리는 관객들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자, 왜 미술 감상이 그토록 어렵게 느껴질까?
해답은 바로 자신의 미술적 취향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 사람들은 세계적인 명화나 미술 전문가들이 강력 추천하는 작품을 좋아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이렇게 취향을 강요당하면 그림 감상이 즐겁기는커녕 고역으로 느껴진다. 설령 수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은 그림일지라도 자신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않으면 과감하게 그 작품과 결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미술작품에는 예술가의 삶의 철학과 개성, 미적 취향이 녹아 있다. 감상자 역시 작품을 볼 때 자연스럽게 그가 살아온 삶과 경험, 취향이 투영되게 마련이다.
그래서 같은 그림인데도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어떤 사람은 추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비단 미술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책, 영화, 음악, 심지어 사람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좋거나 혹은 싫어진다. 이제 독자는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면 미술 감상이 즐거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에는 실전이다. 제1단계는 탐색편, 자신의 감정과 감각을 믿으면서 전시장에 갈 때마다 어떤 그림에 마음이 끌리는지 살펴본다. 대중가요에 비교하면 보다 쉽게 자신의 취향을 확인할 수 있다. 가사와 곡이 마음에 들고 가수의 음색이나 가창력이 뛰어나다고 느껴지면 `내 스타일이야`라고 말한다. 미술도 같다. 주제와 기법, 테크닉, 색채가 마음에 들고 가슴에 와닿으면 나에게 궁합이 맞는 그림이다.
제2단계는 낙점 찍은 그림이 왜 마음을 사로잡는지 분석하는 이른바 그림과 사귀는 기간이다. 화가는 누구이며, 그림의 의도와 시대적 배경, 그림에 담긴 에피소드 등에 관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는 한편 미술 전문잡지, 팸플릿, 작가론, 비평 글을 읽으면서 감동을 주는 요소가 무엇인지 깨닫는다.
제3단계는 미술 동호인들과 함께 그림 보는 법을 공부하고, 현장에서 실습하는 기간이다. 현재 국내에는 미술관, 화랑, 문화센터 등에서 미술 애호가를 위한 다양한 미술강좌를 열고 있다. 특히 미술관에 가면 에듀케이터가 진행하는 미술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으며, 미술품 전문해설사가 전시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해준다.
미술 동호인들과 정기적으로 미술관을 찾아가 전문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면서 작품을 보는 훈련을 쌓으면 놀랄 만큼 안목이 높아진다. 더욱 좋은 점은 시간이 갈수록 흥미를 끄는 작품의 숫자도 늘어나고 취향도 점점 더 고품격이 된다는 것. 그림 보는 법은 생각하는 것 만큼 어렵지 않다. 자신의 취향을 믿고 실천하는 용기만 있다면 말이다.
참고로 한국사립미술관협회에 문의하면 전문해설사가 배치된 미술관들을 알려준다.
- 매일경제 2009.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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