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mporte quoi
2009.2.13-2009.4.19
리옹 현대미술관


현대미술은 모든 것을 수용한다. 관객은 숭고한 예술의 권위가 아직도남아있는 미술관한복판에 무례하게 전시되어있는‘쓰레기더미’를 보고 어리둥절하거나 분괴한다. 가치가 없거나 언제든 대체 가능한 것, 혹은말도안되는어처구니없는상황을동시에의미하는프랑스말 “N’importe quoi”가 아마 이런 현대미술의 창작과 그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표현일 듯하다. 현대미술의 이런 상황에 주
목했던 미술이론가 티에리 드 뒤브(Thierry de Duve)는, 쿠르베의<돌 캐는 사람>과 마네의<아스파라거스 단>이란 두 작품이 전혀 그림의 소재가 될 수 없었던‘하찮은’대상을재현했던‘재현된N’importe quoi’였다면, 마르셀 뒤샹의‘레디메이드’는 마침내 그 자체가‘N’importe quoi’인 일용품을 그대로 예술품으로 둔갑시켰다고 했다. 이렇게 뒤샹은 그림의 소재를 넘어서 미술의 개념까지도 가차없이 흔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리옹 현대 미술관의‘N’importe quoi’전은 존 발데사리
(John Baldessari), 클라우드클로스키(Claude Closky), 피터피슐리와 데이비스 바이스(Peter Fischli & David Weiss), 폴 매카시(Paul McCarthy), 볼프강틸만(Wolfgang Tillmans)등 현대작가들의 서툴고 조악한 솜씨나 평범하고 저급한 소재 혹은 통속적인 주제 등을 다룬 작업들에서 엘리트 미학의 귀족주의적 태도에 대항했던 모던아트의 정신을 재발견해낸다.




데이비드 라샤펠 회고전
2009.2.6-2009.5.31
파리 오텔 드 라 모네


데이비드 라샤펠(David LaChapelle)의 사진 속에도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의 인물들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업이 기계적인 반복의 과정을 거쳐 모델들의‘비인간화’를 강화시켰다면, 라샤펠은 자신의 모델들을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 위치시킴으로써‘초인간적인’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무대연출, 강한 조명과 생동감 넘치는 화려한 색의 구사, 정교한 무대장치와 소품들은 확실히 바로크 회화와 팝아트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소비가 최고의 미덕이고 최선의 자기표현인시대에진실은 허상의 들러리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광고에 열광하고 모든 미디어의 내용물은 30초짜리 광고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폐허가 된 건물, 패스트푸드점, 푸줏간, 분만실 등을 배경으로선 완벽한 몸매의 아름다운 모델들의 대립은 참을 수 없는 현실의 무거움과 깃털처럼 가벼운 매혹의 대립이다. 광고의 허상을 극단으로까지 밀고 간 그의 사진 작업이 소비사회의 허상에 대한 독설인지 아니면 그 환상놀이의연장인지는 모호하다.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 : 초상화
2009.3.18-2009.7.13
그랑 팔레


앤디워홀(Andy Warhol)의 초상화들이 1979년 휘트니미술관 전시 이후 처음으로 그랑 팔레에서 한 자리에 모였다. 1962년 제작한 마릴린 몬로의 실크스크린 초상화를 시작으로, 앤디 워홀은 리즈 테일러, 엘비스 프레슬리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만 레이, 데이비드 호크니, 조셉 보이스 등과 같은 예술가들을 비롯해 콜렉터, 갤러리스트, 정치인, 패션 디자이너, 그리고 소위‘젯셋(jet-set)’이라 불리는 최상류층들의 주문을 받아 수많은 초상화들을 제작했다. 이 작품들에서 작가가 염두 해두었던 것은‘반복의 원리’다. 하나의 작품이 연속 촬영된 여러 개의 초상사진들로 구성된 반복은 실크스크린이란 판화 기법의 반복으로 무한히 연장된다. 미디어가 만든 스타들의 고정된 이미지가 그의 기계적인 작업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견고해지지만, 미디어가 씌워놓은 스타의 아우라는 예술가의 아우라로 대체된다. 아이러니는, 정작 워홀 자신은 이 초상화들을 현대 산업 사회의 기계적 공정을 거처 대량 생산되는 여느 상품들처럼 자신의 아틀리에‘Factory’에서 반복의 원리를 통해 제작 했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