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월을 즈음해 백남준 예술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두개의 전시회가 열렸다. 이들 전시회는 가벼운 마음으로 보고 지나가는 단순한 단계를 넘어서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유익한 공부거리를 얻어 가게 하는 흔치 않은 전시회에 해당한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백남준 아트센터의 개관전
“Now Jump”


(2008,10.8-2009,2.5, 아트센터 본관만의 연장 전시 2.12-3.6)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개관 40주년 기념전 “멀티플 다이얼로그 ∞”가 그것이다. 백남준이 영원히 사는 집으로 상징되는 아트센터의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정신적 유산을 이어 받아 큰 폭의 도약을 통한 새 문화 창조의 범지구적인 문화매개공간으로 나아가려는 센터의 암묵적인 약속의 출발에 해당한다. 특히 아트센터 본관에서는 미디어 시대를 여는 예술가 백남준의 예술정신을 단계적으로 집어 낼 수 있는 많은 기록과 사진 자료들이 그의 작품들과 함께 전시 되어 다각도로 그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 선상에서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이 왕상웨이(Wang Xianwei)의 <늙고 불쌍한 해밀턴>(페인팅, 1996)이라는 대형 작품이다. 인민복 입은 동양 어린이가 뒤샹의 대표작품 <대형 유리>를 실수로 깨뜨려서 야단맞고 서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그 작품의 대각선상의 전시 공간 벽에 유치원 시절의 어린 백남준 사진이 걸려 있다. 매우 은유적인 비유의 기획 의도가 여기에 깔려 있다고 하겠다. 백남준의 어느 인터뷰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마르셀 뒤샹은 이미 비디오 아트를 제외 하곤 모든 것을 이뤄 놨습니다. 그는 입구는 커다랗게 만들어 놓고, 출구는 아주 작게 만들어 놓았지요. 그 조그마한 출구가 바로 비디오 아트입니다. 그리로 나가면 우리는 마르셀 뒤상의 영향권 밖으로 나가는 셈입니다.”
(아트센터 자료)

이 전시의 공식적인 기간 마무리에 이틀 동안 국제 세미나를 개최해 젊은 시절 백남준의 예술 활동을 학술적으로 풀어 나갔다. 그가 음악 공부 하러 일본, 독일로 떠나기 전에 이미 한국에서 구체시(具體詩)와 같은 전위적인 예술영역에 참여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예술, 문화, 역사, 사상 등 많은 영역을 공부 하였다는 사실도 맑혀졌다. 플럭서스와 같은 삶과 예술을 동일시하던 서방 전위예술가 그룹에서 활동하던 그에 관한 과정적 연구도 착실히 진행 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행사였다.
아트센터의 연장 전시 덕분에 시기적으로 중첩되어 백남준 예술세계를 두 배로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2월 5일부터 일 년 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백남준의 TV 설치작품 <다다익선> 을 둘러 싼 외벽에 3인치짜리 작은 화면으로 작업하는 작가 강익중의 작품 <삼라만상>이 전시된, 이른바 백남준, 강익준 2인전 형식을 빌린 <멀티플 다이얼로그 무한다>전이 그것이다. 말하자면 기존에 있던 백남준 작품과 새롭게 전시되는 강익중 작품이 공간적으로 한자리에서 만나 서로 소통하는 모양새다. 여기서 두 작가의 작품이 만난다는 사실은 매우 다중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며 다라서 전시회 성격도 그만큼 다의적이라 할 수 있다.

멀티플 다이얼로그 ∞

강익중의 이번 전시는 일차적으로 1994년 미국 코네티컷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렸던 백남준과 함께 한 2인전 <멀티플 다이얼로그>의 후속 전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조언자였던 백남준의 3주기를 맞이하여 그를 기리는 헌정의 의미가 더욱 짙은 이번 전시에서 작가 강익중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자신의 그간의 작품을 정리해서 그 의미를 더욱 크게 뒷받침 하고 있다. 만곡의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는 벽면에 한글과 도형, 편린의 자연 그림, 생활 속의 작은 오브제, 부처상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근래의 달 항아리 형태 등이 화사하고도 그윽한 색채감과 함께 그의 <삼라만상>을 이루는 중앙을 관통해 새 소리, 물소리, 풍경소리를 들으면서 떨어지는 폭포를 지나 올라 가다 보면 관람자 스스로가 어느새 탑돌이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눈앞의 다다익선을 다시 내려보게 된다. 백남준이 그렇게 자랑스럽게 생각한 한국의 자연, 그 자연으로 둘러싸인 고향 한국을 그리워했던 그가 이 전시를 보았으면 얼마나 좋아 했을까.
여기서의 대화는 마치 곱셈으로 증폭되어 무한으로 이어질 것 같은 다면적인 대화로 확대 된다. 또 두 작가가 세대의 차이, 매체의 차이, 속도 차이, 형식 차이 등과 같이 많은 차이를 보이면서도 그들의 작품을 통해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가능하게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 관람객의 참여로서 그 대화는 더욱 늘어만 갈 것이다.
물리적 시간성속에 무한대의 시간과 만나는 소통과 대화의 공간으로서 전시 현장이 바뀌게 된다는 사실에 이번 전시회의 특성과 매력이 있다. 작가 강익중이 미국 전시 때의 첫 대면에서 백남준이 한 이야기를 생생히 기억하고 잇다.
“익중씨, 천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는 당장 대답을 못했다고 한다. 나중 집에 가서 생각해 보니 바로 이 말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렇지, 무당인데, 낮에도 별을 보는 무당 아닌가.”
2006년 74세로 이 세상을 떠난 백남준이 그때 이미 30세기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Arts & Culture 200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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