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오랜만에 화가 이중섭의 유화 작품이 미술시장에 나왔다. 하지만 세계적인 불경기 탓인지 새로운 주인을 찾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에 경매시장에 나온 이중섭의 작품은 그의 짧은 인생 중 마지막 전성기라 할 경남 통영시대에 제작된 작품이었다. 주로 소와 동심어린 아이들과 게, 물고기를 즐겨 그리던 화가가 남긴, 몇 안 되는 풍경화 중 한 점이다.
이중섭은 전쟁을 피해 원산에서 부산으로 내려왔고 사랑하는 아내 남덕과 아이들을 일본으로 보내고 외롭고 어려운 피난살이를 해야만 했다. 난을 피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난왔던 화우(畵友)들은 휴전이 되자 앞다투어 서울로 돌아가고 그만 홀로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그는 유강렬(1920~1976)등의 도움을 받아 통영에 머물기로 했다. 이 시절 그는 통영의 세병관과 남망산 일대를 담은 몇 점의 풍경을 그린 작품을 남겼다.
그 중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종이에 유채, 40.8×28.4 cm,1953년경)이 이번 경매에 나온 것이다. 많은 이들은 서귀포의 이중섭미술관이 이 작품을 소장하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지난 2002년 이중섭미술관은 한국전쟁당시 1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피난살이를 했던 서귀포시에 문을 열었다. 하지만 이중섭의 오리지널 작품은 한 점도 없는채, 인쇄된 복제품만 걸어놓고 개관해 ‘무늬만 이중섭미술관’이란 말이 나왔다. 이중섭을 기리고 아끼던 지인들과 미술인들의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 몇몇 화랑과 소장가들이 나서 그 귀하고 비싸다는 이중섭과 그의 친구들 작품을 기증해 서귀포시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그리고 민간에서 그 정도 기증했으면 이번에는 서귀포시나 제주도가 나서서 제대로 된 작품 한 점쯤은 소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바램이 제기된 것이다. 미술계 원로로 이중섭미술관 명예관장인 오광수씨(전 국립현대미술관장)를 비롯해서 많은 미술인들이 나섰지만 결국은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중섭미술관을 운영하는 서귀포시가 작품 매입을 안 한 까닭을 듣고 나는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경남 통영을 그린 작품을 왜 서귀포시가 돈을 주고 사느냐”는 것이었다.
이중섭은 박수근과 함께 한국근대화단의 양대산맥으로 불리지만 이중섭 작품의 값은 박수근에 비해 훨씬 낮다. 그 이유는 그의 작품 대부분이 이미 주요미술관과 개인소장가들의 수중에 들어있어 작품이 더 이상 시장에 나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중섭미술관이라면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작품을 소장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국내 최고권위의 전문가의 의견은, 미술에 무지하고 용감(?)한 담당공무원의 지역사랑에 의해 여지없이 묵살 당하고 말았다.
최근 이 미술관은 많은 화랑에 공문을 보냈다. 이중섭작품을 구입하고자 하니 자천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구입가격은 미술관측이 선임한 작품선정위원회에서 정하겠다는 토가 달려있었다. 미술관이 정해주는 가격에 팔라는 것으로, 구입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나 진배 없다. 미술관에서 필요한 작품은 전문가들이 발품을 팔아 찾아내고 검증해야할 텐데, 공고해서 외부 인사들에게 심의를 맡기겠다는 것은 미술관으로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 하는 셈이다.
제대로된 전문가를 미술관에 모실 생각은 없이 이중섭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연락하면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이 작품을 보러 출장에 나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일반 행정직 공무원들이 제 아무리 전지전능하다고 해도 미술품 감정까지 하겠다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최근 이중섭미술관을 제주도립미술관에 편입 관리하겠다는 소리까지 들려오면서 기증자들은 작품을 되 찾아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술렁거리고 있다. 한번도 제대로 운영해보지 않은 미술관을 말이다. 하긴 누가 뭐라 해도 그들은 ‘무소의 뿔’처럼 끄떡 않고 갈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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