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친척 어르신 가운데 남다른 수집 취미를 갖고 계신 분이 있다. 수집 종목은 성냥갑이다. 그렇다고 별다르게 특이한 성냥갑을 모으는 것은 아니며, 외국 여러 나라의 성냥갑을 모으는 것도 아니다. 생활 주변에서 흔하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성냥갑이 수집 대상인 것이다.
그 분의 성냥갑 수집 이력은 40년이 넘는다. 그 오랜 세월에 걸쳐 모은 다종다양한 성냥갑들 앞에서 차라리 일종의 경외심 같은 것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 분에게 왜 하필 성냥갑이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왜냐고 묻는다면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냥 왠지 마음이 가고 좋더라."
성냥갑은 그래도 점잖은(?) 수집 종목일 듯하다. 필자가 아는 어느 대학 교수는 속칭 광고 '찌라시', 즉 광고 전단을 수집한다. 같은 광고 전단이라고 해도 광고 내용 또는 주제가 무척이나 다양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분의 컬렉션에서 단연 이채로운 것은 유흥가 주변 길바닥이나 자동차 문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요상 야릇한 명함 크기의 광고 전단이다.
그런 전단을 모아두었다가 아내에게 들켜서 오해도 받았다는 그 분에게 왜 하필 광고 전단이냐 물으니 이런 학자풍의 대답이 돌아왔다. "광고 전단,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속된 내용의 전단이야말로 한 시대의 풍속사를 증언하는 사료가 된다."
성냥갑과 광고 전단처럼 어떤 의미에서는 속되고 흔하며 일상적인 수집 종목도 있지만, 본래부터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가치를 깊고 넓게 지닌 수집 종목도 많다.
예컨대 간송 전형필 선생의 우리 문화재 수집에 대한 남다른 뜻과 열정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적 호고(好古) 취미나 수집벽 차원에서 더 나아가 민족적, 역사적 사명의식의 차원까지 포괄하는 수집의 좋은 사례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수집가의 소명의식'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볼 수 있겠다. 조선의 예술 세계에 심취했던 그는 남다른 수집 철학을 지녔던 대표적인 문화예술 컬렉터였다. 그는 수집에 관해 사뭇 엄정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다.
"수집에서도 가치가 떨어지는 물건을 수집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수집하기 전에 그 내용의 객관적인 가치를 따지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기쁨을 함께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또한 그것이 얼마나 자신의 생활을 깊이 있게 하는 것인지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인간은 어리석은 물건을 수집해서는 안 된다. 또 바보같이 수집을 해서도 안 된다. 어느 누구에게나 수집의 자유는 있지만, 그렇다고 무엇이건 다 수집해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야나기 무네요시처럼 엄정한 태도로 수집에 임하건,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 차원에서 흔하고 비루한 것을 수집하는 데 열중하건, 뭔가를 수집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언어표현을 수집하는 사람"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도 새삼 떠오른다. 수집 문화가 다채롭게 활성화되어 있는 사회, 수집 문화의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사회야말로 어쩌면 문화적으로 보다 성숙된 사회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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