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보았는가 하는 것은 거대 조형물에서 탐지할 수도 있지만 미세한 무늬 하나에서도 그것을 감지하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가령 태극 마크에 익숙한 우리가 서양, 그것도 가령 아일랜드의 박물관이나 유적지에서 그와 유사한 패턴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이 일은 세상이 정태적이지 않고 변화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할 것이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그 원인을 어디에서 찾든지간에 예측 불허의 급변하는 속도의 세상이라는 것만은 공감하고 있는 형편이다. 가장 고전적인 제도라 할 뮤지엄조차도 여기서 예외일 수가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우리나라 유일의 국립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에 관심의 초점을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이 미술관의 실체가 바로 국민 모두에게 그만큼 소중한 까닭이다.

정부는 이 격변의 시대에 내몰린 국립현대미술관의 업무를 동태적 시대 상황과 경제논리에 맞게 제도적으로 조치하려는 체제개편작업에 들어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국립현대미술관을 두고 실질적으로 다시 한번 더듬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외래형식으로서 뮤지엄 제도가 도입되어 우리 사회의 토양에 착근된 제도로서 유기적인 성장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 내용에 대한 고려와 방법에 관한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경복궁 어귀에 국전전시장 성격의 국립현대미술관 간판이 최초로 걸리고 개관한 것이 40년 전 일이다. 그리고 3년 전(2006년) 책임운영기관으로 바뀌었고 올해에 다시 법인화 체제로 바뀌려 하고 있다.

이제 인간과 미술행위 전체를 두고 근본에서 새로운 관계 설정을 다시 시도해보아야 할 시기다. 그리고 미술관은 자체의 능력으로 이에 다면적, 다층적으로 대처하여 관람객에게 유익한 소통의 장을 펼쳐야 할 때다. 이 시기에 국립현대미술관의 새로운 틀 문제로 다시 적응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생각해야 한다면 이 점이 오히려 비효율적, 비능률적인 문제점을 야기하는 우를 범하는 꼴이 되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축적 과정의 정신적인 내용 검토 없이 외국 역할 모델의 수용에만 급급해서 다시 과거와 같은 짜깁기 식의 문화제도의 도입이 벌어지는 일이 생긴다면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던 간에 훗날 그 후유증으로 다시 모습을 바꾸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다.

5000년의 문화를 자랑하는 우리가 문화, 예술의 시대라는 오늘을 살면서 창의적인 발상에 의한 연구 결과로서 문화 제도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내놓아야 할 때다.

<박래경 | 한국큐레이터협회 회장>

- 경향신문 2009. 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