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계는 현재 유례없는 변화의 소용돌이를 경험하고 있다. 새로운 타입의 큐레이터 활동, 예술정책/예술행정/예술경영에 대한 새로운 관심, 옥션과 대안공간의 출현, 온라인 전시나 '사이트스페시픽' 전시와 같은 새로운 전시 형태의 등장, 국제전과 해외전의 성행, 젊은 작가들의 활약 및 국제 진출 등 이전과는 다른 현상, 사건들이 미술계 지형을 바꾸며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무엇보다 큐레이터라는 새로운 직종의 부상과 그 역할 확대가 미술 시스템의 변화를 감지케 한다. 큐레이터는 원래 박물관의 유품이나 미술품을 관리하는 '키퍼'를 지칭하였는데, 유럽에서는 대체적으로 소장품을 연구, 보전하는 컨서베이터, 미국에서는 주로 전시를 기획하는 학예사로 통용되어 왔다. 그러나 정보혁명과 네트워크의 시대인 현대에 와서 큐레이터는 단지 미술품을 보수, 연구, 전시하는 미술관 내부 활동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한 시각문화의 능동적 생산자, 창조의 중개자로 그 역할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전세계 작가를 대상으로 전시를 기획, 감독, 연출하는 자유형 독립 큐레이터가 큐레이터십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감정적, 지성적, 사회적 에너지의 교류로 미술과 사회를 결합하고 초국가, 초분야적 활동으로 미술과 세계를 연결하는 이들의 활동을 통해 21세기적 글로벌 비전이 제시된다.<큐레이터십의 변화에 따라 전시 문화도 대폭으로 바뀌고 있다. 미술관 소장품을 보관, 전시하는 상설전보다는 대중과의 소통을 강조하고 교육적이고 공개지향적인 특별 기획전이 선호됨은 물론이고, 근자에는 관람자의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하고 참여 체험을 미술관 밖으로 연장시키는 인터액티브한 전시나 특정 주제 또는 인물을 대상으로 장단기적 연구 결과물을 발표하는 프로젝트 전시가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상호성의 맥락에서 정적이고 고정적인 재래 오브제의 전시보다는 유동적이고 비영구적인 설치, 행위와 과정을 강조하는 퍼포먼스, 특정 공간을 작업화하는 사이트스페시픽 전시의 효율성이 인정되고 있다. 근자에 새로운 추동력으로 부상되고 있는 대안전시나 대안공간 역시 달라진 전시 문화의 한 가지 유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대안공간은 공공 미술관이나 사설 화랑과는 다르게 언더그라운드, 비주류 미술을 다루는 비제도적이고 비영리적인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는데, 서구의 경우는 페미니즘이나 소수인종미술과 같은 타자의 미술을 대변하는데 비해, 한국은 특히 진취적인 젊은 미술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청년미술의 산실로 기능하고 있다.

미술계의 변화를 알리는 또 하나의 예증으로 예술정책, 예술행정, 예술경영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들 수 있다. 순수 창작이나 이론이 아닌 실무적, 행정적 차원에 대한 관심은 예술이 사회제도나 조직으로의 편입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모더니즘 시대의 형식주의 미술이나 자율적 예술과는 달리 현재의 미술은 탈장르, 사회참여, 대중소통을 표방하며 정책, 행정, 경영적 뒷받침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에 직면하여 예술정책은 엘리트 주의와 대중주의,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대립을 타개하기 위한 소통적 노력을 시도하고, 예술의 민주화, 정치화, 산업화 문제를 제기, 그 방안을 모색한다. 예술행정은 이러한 정책을 능률적,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하여 공권력을 행사하며, 예술경영은 예술적 특수성과 경영이라는 보편성을 조화있게 포괄하여 창조성을 고양하고 작품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취지를 갖는다.

한국은 예술정책/행정/경영의 역사가 일천한 가운데에서도 최근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정책 연구와 다양한 프로그램 운용에 주력하고 있으며, 특히 문예진흥원의 후원기금, 서울시 문화기금 등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목마른 미술인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 물론 지원금 분배 원칙이나 방법론에서 아직 미흡한 점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립예술 분야나 대안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청년 작가들에 대한 배려로 동 분야 지원의 비중을 높이고 있는 추세는 여간 고무적인 것이 아니다.

젊은 미술, 20~30대 신세대 작가군의 부상은 새로운 큐레이터십과 대안공간의 출현, 미술지원의 확장 등 미술계 구조 변화의 결과이자 그 동인이라고 볼 수 있다. 경제가 급성장하고 대중소비문화가 정착된 1990년대 초부터 화단의 새로운 세력으로 등장한 신세대 작가군은 실험적, 진취적 작업으로 기성미술에 대한 신선한 자극과 대안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왜곡된 스타의식으로 쉽게 제도권에 합류하거나 자칫 40, 50대를 소외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에서 질타의 대상이 되어온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양면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신세대 미술의 출현과 위상은 한국 미술계의 변화와 발전의 지표가 되고 있다. 시대적 감수성과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지닌 청년작가들이야말로 화단의 체질을 개선할 돌파구를 마련하고 미술문화의 국제 경쟁력을 향상시킬 유망주로서 그들에게 한국 미술의 장래를 걸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이화여자대학교 불문과, 캐나다 몬트리올 Concordia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과정, 홍익대학교 서양미술사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플럭서스 서울 페스티벌』,『팥쥐들이 행진』,『사이트 스페시픽』 등의 전시에 참여하였으며 '서울판화미술제', '97 광주비엔날레' 운영 및 조직위원, '2001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국제커미티 멤버로 활동하였다. 주요 저서로 『새로운세계를 연 백남준』,『백남준ㆍ해프닝ㆍ비디오』,『백남준과 그의 예술』, 『페미니즘ㆍ비디오ㆍ미술』,『InfoART』 등이 있다. 현재 쌈지스페이스 관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교수.

- 이 글은 “공간” 3월호 칼럼에 실린 것을 필자와 공간의 양해를 얻어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