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미술관을 용인에 설립하겠다는 경기도의 계획은 매우 반가운 소식이긴 하다. 그러나 왜 서울이 아닌가. 경기도의 의욕이나 계획을 폄하해서가 아니라 백남준 미술관이 갖게 될 의미와 수도 서울의 세계적 이미지 때문이다. 한 도시가 그 도시 출신의 뛰어난 예술가를 통해 도시 전체를 예술적 문화적 이미지로 격상시키는 예는 많다. 노르웨이 오슬로를 방문한 여행객들은 누구나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우수와 고뇌의 화가 뭉크의 탄생 100주년을 기
념하여 만든 뭉크 미술관을 찾게 된다. 그리고 노르웨이의 위대한 조각가 비겔란이 평생에 걸쳐 창작한 수많은 조각 작품이 무수하게 펼쳐진 프로그네르 공원에서 예술과 자연의 조화에 경탄한다.<핀란드 헬싱키에도 음악가 시벨리우스를 기념하는 공원이 있다. 또 건축가 알버 알토를 기념하는 많은 건축물이 시내에 산재해 음산해 보이기 쉬운 북구 도시 헬싱키를 예술의 도시로 변모시켜 놓았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는 아예 도시 전체가 예술가의 작품 전시장이다. 화가 미로와 피카소의 작품 그리고 건축가 가우디의 건축물이 가는 데마다 눈에 띈다. 그 외에도 음악의 도시 빈,마티스의 도시 니스 등도 마찬가지다.<이런 의미에서 백남준 미술관은 백남준이 출생한(종로구 서린동) 수도 서울에 자리를 잡아야 마땅하다. 그래야 백남준 미술관이 고국에 세워지는 의미도 있고 또 세계적인 도시 서울의 예술적 이미지를 위해서도 그러하다.
머지않아 한국의 얼굴인 서울을 찾는 외국인이 연간 1000만명을 넘어설 것이다. 그들에게 다른 아시아의 대도시처럼 무수한 상가와 복잡하게 들어선 아파트를 보여줄 것인가? 물론 박물관과 고궁을 통해 우리의 전통을 보여줄 수도 있고 남대문 시장과 인사동을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서양인들도 놀라워할 현대 예술의 거장을 보여줄 문화상품으로 백남준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백남준 미술관을 만든다면 이와 관련하여 몇 가지 제언을 하고 싶다.

첫째, 미술관의 입지는 서울의 변두리 빈 땅을 찾을 것이 아니라 전철역이 바로 연결되는 서울의 중심가 한가운데 자리잡아야 한다. 그래야 서울 지리에 낯선 외국관광객도 손쉽고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다. 서울이든 지방이든 우리나라의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 등 대부분 문화시설들은 접근이 매우 불편한 변두리의 빈 땅을 찾아 만들었다.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대표적인 예고 예술의 전당, 국립극장도 전철역과 바로 연결되지 않아 접근에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 뉴욕의 링컨 센터나 브로드웨이,워싱턴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도심에, 그것도 전철역 출구와 바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구미 각 도시가 도심계획(the central city plan) 개념으로 시민이 가장 많이 모이는 도시 중심지에 공공시설과 문화시설을 설치하는 도시계획상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건물이 밀집해 있는 도심 구역에 어떻게 미술관이 들어설 공간을 만들 수 있겠는지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뉴욕의 링컨 센터나 현대미술관은 기존 주택이나 빌딩을 시가 사들여 공간을 확보한 예다. 특히 도심의 환경이 불량한 지역 전체를 개발하여 미술관을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외국관광객 1000만명의 관광수입을 감안하여 서울시에서 예산을 정책적으로 과감하게 투입하여 부지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둘째, 비디오 예술의 창시자를 기념하는 미술관답게 단순한 미술관 건립보다 그 전시 내용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역사와 세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세계 IT 강국으로 부상하고자 하는 한국의 21세기 이미지를 이와 연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정권 차원에서 1000억원 정도의 예산을 투자해도 좋을 것이다. 프랑스의 드골이나 퐁피두 등 역대 정권들은 파리에 후대를 위한 문화적 기념비를 남겼다.
셋째, 당사자 백남준씨의 조국에 대한 사랑이 보여졌으면 좋겠다. 아직 생존한 예술가이기 때문에 개인미술관에 정부 차원의 투자는 시비가 있을 수 있다. 그의 명성은 세계적이지만 조국에 대해서는 세계인 백남준으로서보다 한국 출신 예술가 백남준으로서 작품 기증이나 헌신적인 제스처가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예술가로 길이 남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에게도 그런 뜻이 있으리라 믿는다.

- 이 글은〈국민일보〉2002년 5월 10일자 오피니언의 여의도포럼에 실린 것을 필자의 양해를 얻어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