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소영·아트센터 나비 관장 예술가들의'미친 짓'은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고 이 거울 덕분에 우리가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의 일생은 참 묘한 데가 있다. 나의 경우 내가 가장 못하는 분야가 천직이 되어버렸다. 어릴 때 꿈꾸던 내 장래 모습 중에 예술 관련 직종은 없었다. 학창시절 유난히 손재주가 없는 내게 미술시간은 고역 그 자체였다. 100점 만점에 60점을 맞은 적도 있다. 그러다가 미국 유학 중 우연히 미술 전공하는 친구들을 만나 같이 뮤지엄들을 다니며 조형의 세계에 눈이 조금 뜨인 적이 있다. 생전 처음 보는 훌륭한 미술 콜렉션들을 구경하며 예술의 세계는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예술은 머나먼 동경의 세계이지 나의 현실과는 별 상관이 없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을 것이다. 예술이라 하면 한편 고상해 보이고 부럽기도 하지만, 왠지 부담스럽고 우리의 일상사와는 동떨어진, 어느 먼 나라의 이야기 같다. 혹은 일부 부유층들만 전세기 타고 찾아가서 향유하는 사치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어쩌다 큰 맘 먹고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들르면 도무지 알 수 없는 '짓거리'에 그보다 더 알 수 없는 '해설'을 보며 절망에 빠지곤 한다. '역시 예술은 어려워. 내가 놀 곳이 아니야.' 고개를 흔들며 나온다.

80년대 초 화가 친구들과 함께 뉴욕과 워싱턴의 국립 미술관에서 아름다운 페인팅과 조각들에 매료되었던 나는 90년대 초반 다시 찾은 뉴욕의 현대 미술 전시에서 예술에 대한 혐오가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 성(性)에 관한 담론이 한창이었는데 한 전시관은 전체가 남성과 여성의 성기였다. 여성의 월경 피로 범벅이 된 작업은 예사이고 심지어 피에르 만쪼니라는 작가는 본인의 대변을 여러 용기에 담아 보란듯이 진열해 놓았다. (이 '똥' 작업은 실은 작가가 60년대 초에 이미 한 것이었다.) 제프 쿤스라는 현대 미술의 스타 작가는 포르노 배우 출신 부인과의 정사를 찍은 사진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고 있었다. 이런 유의 작품들을 대하면서 내게 떠오른 질문은, "왜 우리가 이들을 후원해야 하는 거지? 예술이 뭐기에?"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의 사기꾼 조직―미술관, 작가, 평론가 및 큐레이터―에 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이후 나는 예술이 뭔가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수년 전 예술 관계자들이 모인 한 국제회의에서 예술이 무어냐는 질문을 내가 던지자 갑자기 분위기가 쏴 해졌다. 그래서 나만 모르는가 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다. 나중에 한 친구가 내게 와서 친절히 일러 주는 말이,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 질문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양은 그 답을 찾기를 포기한 듯하다. "이것은 예술이다. 왜냐하면 미술관 안에 있으므로"라는 뒤샹의 일갈이 전해주듯 서구 현대 예술은 언제부터인지 자기지시적이 되어 버렸다. 대신 예술 시장은 활발하다. 돈이나 벌자는 이야긴가?


▲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예술이 필요한가? 더구나 사회적으로 왜 예술을 후원해야 하는가? 대중의 정서 함양을 위해서? 현대 예술을 보면 정서적 고양은커녕 어지럽고 불쾌해지기 십상이다. 요즘 잘 팔리는 '창의성'을 위해서? 말은 좋으나 실제로 순수예술을 들여다보면 대략 '미친 짓'과 구분이 잘 안 간다. 하이델베르크 정신병원의 한 의사가 환자들의 그림을 수집한 컬렉션을 본 적이 있다. 프린츠호른이라는 이름의 1930년대 콜렉션인데 놀라운 것은 현대 미술 거장들의 그림들이 거기에 다 있는 것이었다! 뒤부페, 프랜시스 베이컨, 조안 미첼, 바스키아 등등 이들 거장들이 환자들의 그림을 몰래 베낀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예술에 대한 의심과 회의가 많았던 내가 운명의 장난(?)처럼 미술관장이 되었다. 이젠 제대로 알고 하든지, 아니면 관두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할 위치에 있게 되었다. 천만다행으로 좋은 선생님과 선배들이 내 길을 밝혀주었다. 다양한 전공의 선배들로부터 왜 20세기 미술이 나치 독일 치하 정신병자들의 그림과 유사할 수밖에 없는가도 배우게 되었다.

(서구의) 현대 예술은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반응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표현한 것들이다. 근대 혁명과 계몽 시대에 탄생한 서양의 휴머니즘은 1, 2차 세계대전과 인종학살을 겪으며 벽에 부딪힌다. 아버지가 아들을 떼죽음의 현장으로 내몬 양대 전쟁을 거치며, 과학발전이 가져온 대량살상의 현장을 보며, 서양의 지성은 미궁에 빠져 버린다. 인간이 만든 어떤 관념도, 도덕도 선도 아름다움도 믿을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런 것들보단 차라리 내 똥이 낫다는 만쪼니의 도발에는 이런 유럽인들의 역사와 사연이 있다. 또한 인간 이성에 대한 불신은 '결국 내 몸밖에 믿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몸, 그중에서도 성적인 몸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한때 신과도 맞닿아 있던 인간이 한없이 쪼그라들어 각각의 성기로 귀착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듯 예술은 감각과 지각의 확장인 동시에 시대의 성찰임을 배웠다. 예술가들의 '미친 짓'들은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이고 이 거울 덕분에 우리가 좀더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는 일반에게 알려 주지 않는 예술업계의 비밀이었다!) 성찰과 반성이 없는 문명은 끔찍하다. 그러기에 예술은 여유나 사치가 아니고 문명의 필수임을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예술은 세계의 인간화인 동시에 인간성의 초월을 꿈꾼다. 이러한 예술을 좀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데 내 인생이 사용되어지니 참 행복하다.

- 조선일보 2009. 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