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예술이야기(107)


빌헬름 사스날
9.5 - 2010.1.10 뒤셀도르프 쿤스트 잠믈룽 K21


“회화는 가끔씩 완벽한 듯 하면서도 사고력과 에너지가 결핍된, 의미 없는 손재주를 상기시켜요. 뭘 하던지 난 가능하면 넓은 시각으로 바라 보길 원해서 그것에 거리를 두곤 합니다. 내가 그림을 그릴 땐 아는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가끔은 내가 아닌, 그림이 날 지휘하는 듯 해요”라고 고백하는 빌헬름 사스날(폴란드, 72년생)은 지난 몇 년 사이에 다니엘 리히터와 뤽 토이만에 이어 유성처럼 떠오른 작가이다.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컨셉 없이 그림을 그리고 거의 삼 일에 한 작품을 그려낼 정도로 빨리 그린다는 사스날. 그 속에서 마치 회화의 모든 가능성을 다 추구하는 듯, 사실화에서 삽화, 그리고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그림들을 제작하는데 그는 주로 스냅사진, 기사화보, 만화나 다른 거장들의 조각상이나 작품들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독일에선 처음으로 거대하게 선을 보이는 이 개인전에 사스날은 일상, 소비, 사생활의 아이콘 외에도 자신이 자라면서 격은, 사회체제가 자본주의로 격변하던 과도기의 심상치 않았던 폴란드의 역사, 정치적인 사건들을 매우 민감할 정도로 그러나 암시적으로 표현해 놓아, 고조된 긴장감이 전시의 전체분위기를 아우르게 한다.




토마스 데만드 : 내셔널 갤러리
9.18 - 2010.1.17 베를린 노이에 나치오날갤러리


통독 어언 20년. 안성맞춤 격으로 독일의 역사를 암시적으로 제시하는 전시 ‘내셔널갤러리’가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그것도 옛 서독의 자부심이었던 미스 반데어 로에의 건물 노이에 나치오날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대중매체 보도 사진을 보고 판지나 종이, 가위. 그래픽칼. 풀, 테이프 등으로 등신대의 삼차원적인 모델을 제작한 후에 다시 사진기로 촬영하여 자신의 사진들을 보여주는 토마스 데만드 (독일, 64년생)는 여기서 1945년 이후 독일에서 일어났던 정치, 역사적인 장면이 보도된 사진들에서 선별, 재현한 40점의 작품을 보여준다. 런던의 전시 건축가 Caruso St. John이 극장의 무대로 변형한 노이에 나치오날 갤러리에 데만드는 볼프산체의 히틀러가 떠난 방, 자신이 어렸을 때 썼던 방, 1990년에 습격되어 아수라장이었던 동독 비밀경찰 본부의 사무실, 독일 국회의 좌석모습 등 독일의 역사가 묻혀있는 현장들을 재현해 놓았다. 비록 그의 사진 속에는 보통의 보도자료와는 다르게 등장인물과 사실을 증명해 줄 글씨들이 빠져있지만, 오히려 이렇게 응축된 독일 역사의 회상은 다시금 관객들에게 생생한 사건현장으로 말을 걸어온다.




아이 웨이웨이 : so sorry
10.12 - 2010.1.17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2007년 카셀 도큐멘타에 1001명의 중국인을 카셀로 초대해, 인간의 삶 자체가 예술이라는 사실을 주지하였던 아이 웨이웨이가 이번엔 세계경제의 침체상황에서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반응하는 모습에 대응, 채택한 ‘so sorry’란 제목의 전시를 뮌헨에서 보여준다. 하우스 데어 쿤스트를 위해 제작한 두 개의 거대한 설치작품들과 사진, 영화, 1001명의 기록을 담은 사진자료 등은 아이 웨이웨이가 살고 있는 중국의 사회적인 모습 외에 정치적 모순까지도 적나라하게 고발하면서, 동시에 그는 작가도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에 참여해야 함을 손수 보여준다. 또한 시대격변 속에서 옛 것과 새 것이 만나면서 진행되어야 할 과정 즉, “기존해 있는 것을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시각화하기 위해 그는 중국의 골동품들이나 종교적인 예술품들을 선택, 변형하며 파괴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이번에 그는 미술관 건물 전면에 9000개의 아동배낭으로 100미터가 넘도록,“ 그녀는 7년 동안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았어요” 라고 적어놓았다. 2008년 쓰촨성의 지진으로 죽어간 딸을 기억하면서한 엄마가 남긴 말인데, 이 이란 작품으로 그는 학교 부실공사와 그에 따른 정부의 책임회피를 지적함과 동시에, 생명을 잃어야만 했던 학생들의 영혼을 달래주고 있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