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프랑스 전시회(2)

클로비스 트루으이전

2009.11.28 - 3.7 이슬-아담, 자크 앙리 라티그 아트 센터


앙드레 브르통이 ‘무서울 게 없는 거장’이라고 불렀던 프랑스의 화가 클로비스 트루으이(Clovis Trouille 1889-1975).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규범과 제약의 틀을 끝임 없이 파괴하고 그로부터 자유롭기를 갈망했던 아티스트였다. 트루으이를 중심으로 그의 예술적 동반자들이자 그만큼이나 도전적이고 자유분방했던 알프레드 쿠름므(Alfred Courmes), 피에르 몰리니에(Pierre Molinier), 모리스 라팽(Morince Rapin) 등 또 다른 아티스트들이 반항아(Voyous), 예지자(Voyants), 관음증자(Voyeurs)라는 모두 ‘V’자로 시작되는 세 개의 테마 아래 모였다.

1930년 살바도르 달리가 ≪혁명적 작가와 예술가전≫이란 전시회에서 ≪추억(Remembrance)≫라는 제목의 그림을 통해 처음으로 트루으이를 발굴한 이후, 그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지나치게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던 트루으이에게는 초현실주의라는 아방가르드 운동조차도 미적인 이데올로기의 한 형태에 불과했기에 그 운동에 참여해 활동을 한 적은 없었다. 트루으이는 평생 자신의 이름을 건 개인전이라곤 한번밖에 해보지 않은 미술계의 아나키스트였다. 사실 그는 병적으로 갤러리스트와 컬렉터, 비평가, 큐레이터 등 소위 미술제도의 ‘권력자’들을 혐오했었다. 트루으이의 그림들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며 ‘반예술적’으로 보인다. 반교권주의, 에로티즘, 뮤직홀이나 서커스와 같은 환상적이고 스펙터클한 세계, 관음증과 사도마조키즘적 색채가 농후한 음산하고 기괴한 무대장치들에 편집광증 환자처럼 집착해왔다. 예술과 키치 사이를 거침없이 넘나들면서 예술의 전통적 관념과 권위를 한껏 비웃고 그 위선을 폭로한다.



로베르 드와노 사진전
1.13 - 4.18 카르티에-브레송 재단


“나는 나만의 연극을 만들면서 평생을 즐겼다”. 사진가로서 자신의 지난 시간들을 회고하면서 로베르 드와노(Robert Doisneau 1912-1994)가 했던 말이다. 파리 시청 앞에서 한 쌍의 연인이 입맞춤하는 사진 한 장으로 프랑스에서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가장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사진가가 됐다. ‘파리 풍경의 예찬자’라 불릴 만큼 드와노는 파리와 파리 외곽지역의 평범하면서도 예기치 못한 일상의 순간들을 특유의 시적 감수성으로 포착해냈던 사진가로 유명하다. 1912년 파리의 남쪽 접경 도시 장티이(Getilly)에서 태어나 판화가 자격증을 따고 아틀리에 울만(Atelier Ulman)에서 광고 사진가로 일하다가 1932년 ≪엑셀지오르(Excelsior)≫지에 실리게 될 생투앙(Saint Ouen) 벼룩시장의 사진들을 찍으면서 본격적으로 르포타주 사진가가 됐다.

카르티에-브레송 재단이 이번 전시를 위해 드와노가 1930년에서 1966년 사이 찍은 사진들 가운데 선별한 100여 점은 사진가라는 단순한 직업인으로서의 드와노가 어떻게 예술가가 될 수 있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다"라고 했을 만큼 그에게 있어 사진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기 이전에 거부할 수 없는 예술적 소명을 수행하기 위한 미적 표현의 매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