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프랑스 전시회(3)

쎄라비(C’est la vie)! :카라바지에서 다미안 허스트까지 공허함의 미학

2.3 - 6.28 마이올 미술관


나이를 먹는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지금처럼 부자연스러웠던 적이 있을까? 현대의 소비사회는 젊음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 대신, 늙는다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든 피하고 싶은 수치가 됐다. 미디어는 영원히 젊음을 유지한 채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하지만 죽음이 지금보다 인간의 삶 속에 이처럼 폭력적으로 산재했던 적은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대형사고, 테러와 전쟁, 그리고 지진이나 쓰나미같은 자연의 가공할 위력은 순식간에 삶의 터전을 죽음의 폐허로 뒤바꿔 놓는다. 죽음은 그만큼 일상적인 것이 돼버렸고, 현대인은 그런 죽음에 무감각해졌다. 미디어는 삶을 팔기위해 죽음의 엄연한 ‘존재’를 관 속에 가두어 ‘부재’하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현대 사회가 상품으로 ‘신성화’한 젊음은 삶의 공허함을 은닉하기 위한 가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대 미술에서 죽음이란 테마는 결코 죽지 않았다. 현대 미술의 ‘앙팡 테리블’로 통하는 다미안 허스트(Damien Hirst)가 다이아몬드로 만든 해골은 바로 21세기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대표적인 아이콘이다. 마이올 미술관은 폼페이의 벽화부터 중세의 ‘죽음의 춤’을 다룬 판화와 17세기 ‘바니티(Vanity)’ 정물화를 거쳐 20세기의 초현실주의와 네오 팝, 그리고 가장 최근의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미술사 전체를 관통했던 멜랑콜리하지만 그래서 가장 매혹적인 테마인 죽음이 미술에서 어떻게 표현돼왔는지 회화, 조각, 사진, 비디오, 보석, 오브제 등 160여 점의 작품들을 통해 조망한다.




에드바르 뭉크의 “안티-스크림”전
2.19 - 7.18 피나코테크 드 파리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하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그림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절규’이다. 하지만 20년 만에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기획된 뭉크의 개인전 타이틀은 아이러니하게도 ‘안티-스크림(Anti-Scream)’이다. 절규는 곧 뭉크라는 등식을 파괴하려는 의도다. 뭉크의 예술 세계는 사실 <절규>라는 작품의 명성에 가려진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번 전시는 이렇게 ‘절규’에 의해 가려지고 왜곡됐던 뭉크 예술의 실체를 전면에 드러내고자 한다.

뭉크는 당대의 그 어떤 예술가들보다 기존에 세워진 미적 규범을 뛰어넘으려 했던 화가다. 1880년대부터 그가 시도했던 아방가르드적인 실험들, 예를 들어 자신의 그림을 비나 눈에 노출시킨다든지, 사진과 무성영화 이미지를 회화로 전환시킨다든지 하는 실험들은 가히 시대를 한참이나 앞선 것들이었다. 그의 작업에서는 이미 판화, 데생, 회화, 조각, 콜라주, 사진, 영화 등의 매체나 기법상의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뭉크의 그림 속에 표현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면 심오한 감정의 분출은 바로 매체와 기법에 대한 뭉크의 실험 정신에서 기인한다. 이번 전시는 터너와 쿠르베를 계승하여 피카소와 브라크, 뒤뷔페와 잭슨폴록 등으로 연결되는 모더니즘 미술의 역사에서 그 연결고리 역할을 했던 뭉크, 그리고 야수파와 표현주의 미술의 선구자이기도 했던 뭉크의 예술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