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너와 그의 화가들
2.24 - 5.24 그랑 팔레 국립 갤러리
형식주의 모더니즘 미학을 옹호했던 미술 평론가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윌리암 터너(J.M.W. Turner 1775-1851)를 미술사에서 수 세기에 걸쳐 지속돼왔던 명암이란 회화적인 인습을 최초로 파괴했던 화가라고 했다. 명암이나 원근, 혹은 내러티브 따위가 만들어내는 환영의 공간이 아닌, 매체의 순수성에 천착하게 될 때 도달하게 되는 추상미술, 터너가 그 시작인 셈이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미술사에서 한 획을 긋게 될 그의 독창적인 예술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했는지를,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다른 화가들과의 관계를 통해 조명하고 있다.
젊은 화가 터너는 클로드 로랭(Claude Lorrain)의 그림 앞에서 그만큼 그림을 잘 그릴 수 없는 자신의 한계에 절망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개인 소장가들의 집을 방문하면서까지 다른 화가들의 그림들을 연구했다. 터너는 풍경화가로 대중에게 알려져있지만, 환상적인 장면을 다룬 그림이나 장르화, 역사화까지 훨씬 넓은 작업의 폭을 보여준다. 이런 다양한 카테고리의 작품들은 터너의 회화적 열정과 욕심을 반증하고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은 그의 대표작들과 함께 소개되고 있는 렘브란트와 푸생, 티티안, 왓토, 콘스타블 등 다른 화가들의 작품들에서 터너가 지속적으로 그들과 가졌던 회화적 대화를 엿들을 수 있고, 그 대화를 통해 전통과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독창성을 끄집어낼 수 있었던 그의 회화적 비밀을 엿볼 수 있다. 작년 9월 23일 런던의 테이트 뮤지엄에 이어 그랑 팔레에서 현재 개최되고 있는 이 전시는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6월부터 9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죄와 벌
3.15 - 6.27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된지 벌써 30년이 됐지만, 1791년 정치인이자 법률가였던 플르티에 드 생-파르조(Peletier de Saint-Fargeau)가 처음으로 그 제도의 폐지를 주창한 이후 2세기라는 기나긴 논쟁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인간의 죄에 대해 벌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신이냐 혹은 인간 자신에 귀속된 것이냐라는 문제는, 사드, 보들레르, 도스토옙스키, 카뮈 등 수많은 근대 문학가들의 작품들에서 다양한 범죄자들의 유형을 만들어냈다.
살인과 강간, 폭행, 사기, 절도 등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끔찍하면서도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범죄는 미술에서도 문학만큼이나 중요한 테마였다. 신문 지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하는 실제 사건들과 함께, 신화와 소설, 연극, 그리고 차후 영화와 텔레비전에 등장하게 될 픽션들로부터, 미술은 인간의 죄와 벌에 관련된 이야기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프루동(Prud’hon)에서 다비드(David), 제리코(Gericault), 들라크루아(Delacroix), 고야(Goya)를 거쳐 도미에(Daumier), 로트렉(Lautrec), 드가(Degas), 뭉크(Munch), 피카소(Picasso), 워홀(Warhol) 등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화가들의 작품에서 죄를 짓고 벌을 받는 인간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윤리와 직결된, 사회학적이면서도 동시에 존재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이기도 한 죄와 벌이란 테마를 다룬 작품들을 통해 ‘폭력의 미학’ 혹은 ‘미학의 폭력’을 제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