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스 나우만 : Dream Passage
5.28 - 10.10 베를린 함부르거반호프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은 소장가 프리드리히 크리스티안 플릭으로부터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 1941- )의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거대한 조각작품 <내 영혼이 부재하는 공간, 그래도 상관없는 공간(1984)>을 2년 전에 기증받았다. 이를 계기로 60년대 중반부터 매우 다양한 매체로 작업 해오는 이 미국작가의 전시를 기획하여 ‘Dream Passage’ 란 타이틀하에 약 30여 점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지난 50여 년간 나우만은 정신, 사고와 더불어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들을 통해 도대체 인간 존재의미를 인지케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떤 것인지를 꾸준히 추구해 오는데, 그 중심에는 인체가 항상 자리하고 있다. 자신의 몸을 이용하여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사진과 비디오 속에 담기 시작, 60년대 말 부터 관객이 지날 수 있는 복도나 공간들을 설치하여 관객참여의 실체험을 통한 사고의 유출을 은근히 유도할 뿐 아니라, 또한 80년대부터 제작된 정치, 사회적, 성적 내용이 함축된 네온, 비디오, 설치 작품들로 당면한 시대상황을 비판, 고발해 왔던 작가의 의도를 명시하는 전시이다.

움직이는 그림들 : 작가와 비디오_필름
5.29 - 10.31 쾰른 루드비히 미술관
‘움직이는 그림들’이란 전시로 루드비히 미술관은 지난 30년간 별도로 소장해온 필름, 비디오 작품들을 전적으로 소개한다. 프랑스 리용의 루미에르 형제가 처음으로 영화, 즉 움직이는 그림들을 제작해 놓은 것은 1895년의 일이었다. 기술의 향상으로 태어난 TV와 비디오카메라는 기존의 예술에 반발하던 백남준과 볼프 포스텔등 60년대의 플럭서스 작가들에게 예술적 표현가능성을 확장해 준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당시의 퍼포먼스, 대지예술 기록차원인 비디오 녹화의 경계를 너머, 70년대 부터는 백남준을 위시한 많은 작가들이 전자기술을 적용한 비디오 예술이란 쟝르에 적극적으로 몰두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컴퓨터의 사용을 더하여 지금까지 근 45년 동안 자유자재로 변천해온 이 움직이는 그림들의 표현양상은 엄청난 포물선을 긋는데, 이러한 비디오 예술의 변천사와 영화가 미친 영향을 전시된 55점의 비디오(설치)작품과 열람실에서 관람 할 수 있는 약 270여 점의 비디오 작품들을 통해서 잘 알아볼 수 있다.

제 6회 베를린 비엔날레
6.11 - 8.8 베를린 시내의 여섯 군데 전시관
지구상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세상과 처한 상황에 부딪혀 살면서 실질적으로 체험하는 세상, 이 두 세상 사이에 놓인 거리감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지금 베를린에서는 ‘동시대미술의 등대역할을 하는’ 베를린 비엔날레가 열리는데, 여기에 그런 노력이 숨어 있다. ‘밖에서 뭐가 기다리고 있는지’란 제목으로 “관객들에게 우리의 현실을 주목하게 하려는 것이 전시의 목표”라고 밝히는 비인 출신의 카트린 롬베륵(Kathrin Rhomberg)은 즐김만을 추구하려는 서구적 시각을 방해하련다는 의도와 함께 45명의 젊은 작가들을 초대해, 그들이 제작한 편하지 않으면서도 심사숙고하게 하는 작품들을 보여준다. 파리 근교의 소외된 청소년들, 언성을 높이는 시카고의 주식업자들, 선동하는 이스라엘의 군인들, 자존심이 있는 터어키 여자들, 코소보 난민의 현실, 콩고의 문제들 등, 즉 소외, 테러공세, 망명, 전쟁, 경제위기, 환경오염위기등 지구상에서 만연하는 지금의 현실들이 주로 도쿠멘타 형식으로 기록된 사진이나 비디오 그리고 설치작업들 속에서 적나라하게 고발된다. 예술인지 아닌지를 분간하는 것보다 “여기에 작가가 창조적인 방법으로 일상속에서 새 역사가 생성될 수 있는 변화를 창출해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기획자 롬베륵은 덧붙인다. 특기할 사실은 이번 전시의 중심이 옛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의 다국문화 혼합지역인 크로이츠베륵으로 옮겨져 비어있던 백화점건물, 낡은 술집, 빈 창고, 작가의 작업실등 실제의 현실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