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정부가 옛 국군기무사령부 터 옆에 있는 국군서울지구병원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함으로써 본격화됐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이 원래 기무사 터에 있었던 옛 종친부(宗親府) 건물의 이전·복원 문제로 다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조선시대 관청들이 있던 기무사 터에 대한 문화재 발굴조사에서 이곳에 있다가 1981년 인근 정독도서관으로 옮겨진 경근당과 옥첩당(서울시 유형문화재 제9호)의 기단(基壇)이 확인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두 건물을 원위치에 돌려놓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술계는 세계적인 규모의 국립현대미술관을 지으려던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된다며 크게 반발했다. 규모가 상당히 줄어드는 것은 물론 현대미술관 속에 전통 건물이 들어서면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난번 국군서울지구병원 이전 문제가 비교적 쉽게 여론이 수렴됐던 것과 달리 이번 종친부 이전 복원 문제는 해결책을 찾기가 간단치 않다. 문화유산의 보존을 주장하는 문화재계와 한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현대미술관이 필요하다는 미술계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기 때문이다. 미술계는 종친부 이전 복원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데 이어 서명운동과 1인 시위를 불사하겠다고 밝혔고, 문화유산 관련 시민단체들도 이에 맞대응하겠다는 태세이다.

기무사 내에 테니스장을 만든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아무 인연이 없는 곳으로 유배 가서 30년 세월을 어색하게 지내야 했던 종친부 건물에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물론 정부가 문화계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 문제를 다루면서 공청회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논의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결정 자체에 잘못이 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미술계는 오랜 숙원이었던 서울 도심 국립현대미술관의 규모가 일부 축소되는 것이 안타깝겠지만 '종친부 건물 이전·복원 철회' 주장이 널리 공감대를 얻기는 힘들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보다는 새로 지어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이전·복원하는 종친부 건물이 공존하면서 조화를 이룰 방안을 찾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다행히도 종친부 건물 자리는 국립현대미술관 부지 중앙이 아니라 뒤쪽 벽에 붙어 있고, 넓이도 약 2000㎡ 정도로 전체 면적 2만7400㎡의 7.3% 정도이다. 설계만 잘하면 미술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정도로 방해되지는 않을 수 있다. 서양식 건물과 한옥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발상을 달리하면 정반대의 이해가 가능하다. 전통시대 중요 관청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른 나라 현대미술관들과 차별화하는 특징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문화재계의 협조가 필요하다. 우선 이전·복원되는 종친부 건물이 국립현대미술관 안에서 이질적인 섬처럼 따로 놀지 않게 전시장이나 세미나장 등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문화유산을 문을 꽁꽁 걸어잠근 채 박제화된 상태로 두지 않고 원형을 보존하는 범위에서 폭넓게 이용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다. 또 하나는 문화유산 보존을 꼭 필요한 부분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기무사 터에서는 최근 조선시대 고종 때 중건(重建)된 경근당과 옥첩당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3곳이 추가로 확인됐다. 그러나 지금 남아 있지 않은 옛 건물 자리까지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 또한 보통 사람들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문화재계와 미술계는 민족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나누어 맡은 '오누이'이다. 서로를 배려하며 한발씩 물러서서 전통이 살아 숨 쉬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만드는 데 지혜를 모을 것을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