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주궁(主宮)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광화문(光化門)은 지난 100년 우리 역사의 영욕(榮辱)을 따라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왔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고종 즉위 직후인 1865년 중건하면서 만들어진 지금의 광화문은 1926년 일제가 경복궁 안에 조선총독부를 지으면서 헐릴 위기에 놓였다. 광화문은 일본인까지 가세한 거센 반대 여론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경복궁 동북쪽으로 옮겨졌다가 6·25전쟁으로 불타버렸다. 지금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광화문은 1968년 본래의 위치인 경복궁 남쪽에 복원한 것이다.
없어졌던 광화문이 다시 세워진 것은 다행이었지만, 이때 광화문은 원래의 모습을 크게 잃었다. 문의 진짜 주인인 경복궁이 아니라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에 맞추는 바람에 원래 자리에서 북쪽으로 11.2m, 동쪽으로 13.5m 옮겨졌고, 방향도 경복궁 중심축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3.75도 틀어졌다. 또 당초 나무로 만들었던 것을 철근 콘크리트로 건립했다. 그러므로 1990년 경복궁 복원이 시작되고 1995년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면서 광화문을 경복궁의 전체 구조에 맞게 원위치에 다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 결과 2006년 12월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선포식이 열렸고, 이듬해 5월 철근 콘크리트 광화문이 철거되면서 목조 광화문을 다시 세우는 공사가 시작됐다.
3년여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오는 8월 15일 공개되는 광화문의 문루(門樓)에 오르면 광화문이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다는 것이 실감난다. 뒤로는 근정전을 비롯한 경복궁의 전각(殿閣)들,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 복원된 흥례문(興禮門) 등과 일직선을 이루게 됐다. 앞으로는 일제의 조선신궁이 있던 남산이 아니라 원래 방향인 관악산을 바라보고 있다. 또 광화문 좌우의 궁장(宮墻)과 용성문, 협생문, 동·서 수문장청 등 부속 건물들도 원형대로 다시 들어섰다.
광화문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은 물론 반가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광화문이 겪은 우여곡절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와 전쟁을 지나며 광화문이 치러야 했던 수난은 이미 역사가 됐다. 광화문을 없애려 하고 지키고 불타고 허물고 다시 세운 이야기는 한국이 고난 속에서 이룩한 성공의 역사를 보여주는 단면의 하나다. 그런데 지난 정부에서 수립한 광화문 복원 계획에는 그런 부분이 빠져 있었다. 일부에서는 철근 콘크리트 광화문을 다른 곳으로 옮겨 보존하자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역사는 지워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 당시 집권층의 의식이 반영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이제는 그런 단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새로 세워진 광화문 옆에 광화문이 오늘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어떨까. 철거된 철근 콘크리트 광화문의 주요 부재(部材)는 국립고궁박물관 뜰에 놓여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로 쓴 현판은 고궁박물관 수장고에 있다. 이 것들을 옮겨오고, 사진 자료 등을 활용하면 훌륭한 전시장을 만들 수 있다. 건물을 추가로 짓지 않아도 이번에 복원된 부속 건물들과 주변 공간을 활용하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광화문을 찾는 국내외 관람객들은 광화문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서 지난 세기 한국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역사는 어떤 경우라도 지우고 잊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대상이다.
-조선일보 20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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